유일한 구원 방도

최세창
  • 1529
  • 2023-04-14 20:24:04
https://youtu.be/9Lnyn3of6Ts

<빌립보서 3:4-9>

4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1. 시작하는 말

‘백문이 불여일견’은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으로, 무엇이든지 실지로 경험해야 확실히 안다는 말입니다. 특히, 영원한 구원과 멸망이 좌우되는 종교에 중요한 것은 관념이 아니라, 실천적 체험입니다. 관념적인 교리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행함으로써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7:17을 보면 주 예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마태복음 7:21은, 구원받을 믿음에는 믿음의 행위가 따르는 것임을 밝힌 것입니다.

2. 유일무이한 구원 방도인 주 예수를 믿는 믿음

설교의 성경 본문인 빌립보서 3:4-9은, 바울 사도가 영적 체험을 통해 깨달은 구원의 진리입니다. 바울이 깨달은 구원의 진리는, 매우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이유는, 한때 바울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종교들과 철학에 정통하고, 율법에 철저한 유대교 지도자로서 예수님을 혹세무민하는 주 곧 메시아 사칭 죄인으로 여겨 철저히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사울 곧 바울이 서구의 이 대 주류인 헬라 사상과 히브리 사상에 정통한 채, 그리스도인들을 철저하게 핍박한 이유가 있습니다. 구원 방도는 선민 이스라엘로 출생해서 율법을 좇아 할례를 받고, 율법을 행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의 경우에는, 할례를 받은 ‘의의 개종자’만 유대교인으로 인정받았고, 할례를 받지 않은 ‘문의 개종자’는 유대교인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의의 개종자인 이방인도, 율법을 행해야만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9:1 이하에,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전하는 제자들을 핍박하던 사울 곧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머나먼 다메섹까지 간 사실이 기록되었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그런데 사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갑자기 하늘로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충격으로 땅에 엎드러진 사울에게 부활의 주 예수님의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 “주여 뉘시오니이까”라고 하자, 주 예수님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사울 곧 바울은 부활의 주 예수님을 만나는 참으로 놀라운 체험을 통해 깨닫고, 주 예수님을 유일한 구세주로 믿고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순교하기까지 순교자적인 선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나 종교 행위가 아니라, 대속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죄 사함과 칭의와 신생,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 그리고 영생의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는 복음이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모든 것이 구원받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체득하게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 은혜를 깨달은 바울 사도는, 여전히 헛된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 동족들을 깨우치려고 동족들처럼 자랑스럽게 신뢰하던 인간적 조건들ㅡ동족들보다 훨씬 더 좋은 자신의 인간적 조건들ㅡ을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셨고, 나중에 율법에 기록된 대로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13세에 할례를 받은 이스마엘족과 다르고, 또한 유대교로 개종할 때에 할례를 받는 이방인과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순수한 선민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의 족속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굴복함으로써 자기를 이기고, 맞아죽을 위기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입니다. 개역 한글판 성경에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특별한 조상의 후예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셋째, 베냐민 지파라는 것입니다. 초대 왕인 사울이 베냐민 지파이었습니다. 왕조가 남북으로 분단될 때에 열 지파가 여로보암을 추종했지만, 끝까지 다윗 왕조에 충성을 다한 유일한 지파는 베냐민 지파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용맹하기로 정평이 난 지파이었습니다.

넷째, 히브리인 중 히브리인이라는 것입니다. 각국에 흩어져 살면서 모국어를 잊어버린 다른 유대인들과 달리, 모국의 언어와 관습을 잊지 않고 지키는 주체성이 확고한 유대인이라는 뜻입니다. 실상, 그는 유대 정통파인 바리새파에 입문하여,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선생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기도 했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자신의 인간적인 업적에 대해서 밝히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는 것입니다. 율법대로 산다는 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뜻입니다. 율법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유대교를 신봉하고 수호하는 열심으로 말할 것 같으면, 대조되는 구원관을 가진 교회를 핍박하고 그리스도인을 죽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율법 행위로 의로워진다는 점에서는, 흠이 있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의 주장은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 종교적인 의식 준수나 교리 이해 등 인간의 노력이나 힘에 의해 구원받는다면, 그 점에서는 자기를 따를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자기는 선민 중 선민이요, 구원받은 자 중 구원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 모든 것이 구원 방도가 아니고, 그 어느 것도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핍박자에서 사도가 된 바울 사도의 획기적인 변화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러 가던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만나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인내와 놀라운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 영적 체험인 만남은, 그때까지의 바울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의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고, 그의 운명이 바뀌었고, 그의 영원한 멸망의 길이 영원한 생명의 길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 즉 이전의 신뢰할 만한 인간적인 자랑거리들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계속해서 해로 여기며 사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그리스도 예수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것은 없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경배하는 것보다 더 숭배하는 인간이나, 돈이나, 권력이나, 지식이나, 이념이나, 이단 사설 같은 것은 없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가르쳐 주는, 성경 지식보다 더 고상하게 여기는 지식은 없습니까?

교계 지도자들이나 교인들 중에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인 성경은 경홀히 여기고, 십인십색인 인간의 이성의 작업인 신학은 대단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실은, 그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외국 신학자들은 성경의 일부를 가지고 씨름한 것입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요 목사요 순회 설교가로 이름을 떨치면서도 매우 많은 책을 썼고, 박학다식한 요한 웨슬리는, ‘단 한 권의 사람’이라는 별명을 들었습니다. 단 한 성경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이성적으로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시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기도와 말씀 착념과 말씀 순종을 통해 그리스도와 신령한 교제를 나눔으로써 체득하는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무진장한 영적 지혜와 영적 지식 그리고 사단을 제압하는 영력의 보고이신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모습으로 드러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얻은 현재와 임종 때와 최후 심판의 때와 내세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싶어했습니다.

요한 웨슬리도 임종 때에, “가장 큰 복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이 늘 함께해 주시기를 원합니까? 말로는 원하면서도, 실제로 함께해 주실까 봐 염려하는 것은 아닙니까? 화풀이하러 가야 하는데, 이해관계가 걸렸는데, 좀 부정을 행해야 하는데, 누군가를 괴롭혀야 하는데, 주님이 함께해 주신다고 하면 얼마나 곤란하겠습니까? 우리는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유일하신 주로 확신합니까?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나, 종교 행위나, 도덕 행위는 구원 방도가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선과 악,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가 다르기도 하고, 상반되기도 하는 것이므로 구원의 방도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 세상에 구원 방도가 있다면, 주 곧 메시아가 오실 리도 없고, 구원자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신다는 약속도 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멸망의 길을 가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고, 천국의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설교 동영상 : 유튜브)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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