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어떻게 위험한 종교에서 벗어날 것인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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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6-22 09:00:00
10. 기독교는 어떻게 위험한 종교에서 벗어날 것인가?


성서의 종교는 피안적인 종교가 아니라 현실적인 종교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인간을 비롯한 만물들이 더불어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만드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영혼구원의 선결조건은 구조적 불의와 같은 시대적인 근본 모순을 극복하여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사회구조를 만드는 과제에 있다. 즉 노예생활과 왕의 억압, 부자들의 착취와 독점, 제국들의 정복과 포로생활, 율법에 근거한 사제들의 차별과 같은 현실적 모순을 극복하는 과제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뜻이었다. 예언자들이 예배와 찬양과 경건을 비판한 것은 그런 종교의식들이 정말로 중요한 사회적 불의를 은폐하는 기분 좋은 안전의식과 허위의식을 주입할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과제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정신을 미혹시키는 마약의 역할을 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회적인 모순들은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득권층은 현상유지를 통해 이익을 얻기 때문에 체제변혁적인 운동에 대해 끈질기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혼구원을 심리적인 차원, 혹은 내세적인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은 현실도피적인 마약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심지어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조차 제국의 질서(정복과 착취, 종교적 정당화)와 정반대되는 하나님의 질서(섬김과 나눔, 거짓신학에 대한 도전)에 근거하여 대안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예수의 필생의 과제였다.


오늘날처럼 재벌들이 정부와 매스컴을 통제하는 “시장전체주의” 상태에서 대다수 시민들은 무력감과 냉소주의, 수동성에 사로잡힌 채 소비주의와 오락에 몰입해 있다. 그러나 조만간 재정적자나 무역적자만이 아니라 오히려 “지구적자”(Earth Deficit)라는 궁극적인 적자로 인해 경제상황이 더욱 악화될수록 계급갈등과 국제적인 분쟁과 충돌이 더욱 격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안정에 대한 욕구는 막강한 공권력을 행사할 파시즘과 같은 “고전적 전체주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즉 상황이 조금만 악화되면, 기독교 우파들의 “타자들에 대한 증오심” 발산과 폭력이 가장 우려된다. 특히 적을 악마화(惡魔化) 하여 자기 정체성을 찾는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만큼 “우리”와 “타자들”을 분명하게 구별하며, 타자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품고 있는 집단도 드물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반부터 세계의 환경파괴 문제와 씨름해왔던 미국의 대표적인 신학자 존 캅(John B. Cobb Jr.) 교수가 8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애끓는 심정으로 호소한 책 󰡔영적인 파산: 행동을 향한 예언자적 외침󰡕에서 탄식하는 것처럼, 인류는 자기파멸의 길로 달려가는 “미친 종자”이다. 종교인들이 그 광기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특히 기독교는 가장 근본적인 “4영리 교리”만이 아니라 “성공과 번영의 복음”을 통해 그런 집단최면을 적극 조장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다음 세대의 생존권과 생태계를 위해 매우 위험한 종교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오늘날과 같은 전 지구적인 죽임의 시대에 우리가 죽기까지 순종해야 하는 것은 토마스 머튼의 말처럼, “모든 피조물을 위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며, “자연과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인식해야” 한다.


성서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세상 권세들의 지배 앞에서 “회복의 기회”(second chance)를 선포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지질학적으로 신생대가 빠르게 끝나가는 시대의 과학자들은 “인류 멸절 아니면 생존” 앞에서 목숨을 걸고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늘날의 자기파멸적인 세계 현실 역시 우상숭배의 결과이며, 오늘날의 우상은 돈, 시장, 이윤, 세계화, 자유무역 등이다.


따라서 오늘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돈과 재벌중심의 지배체제와 문화에 불순종하고 저항하는 것이다. 기득권자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거짓 신학과 지배문화에 편승한 타락한 기독교를 극복하는 과제만이 아니라, 기독교의 인간중심주의, 내세중심주의, 개인의 영혼구원과 심리적인 평안에 대한 집착, 전능하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 개입(메시아 도래, 재림 등)에 대한 믿음 등, 예수가 거부했던 낡은 신앙 전통을 시급히 폐기하고, 예수가 가르친 복음을 통해 현실세계에 대한 전적인 책임성을 회복하지 않고는 인류의 희망을 찾기 어렵다. 종교적 계율과 예배(제사)와 경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무차별적이며 무조건적인 이웃사랑이라고 가르친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구체적인 대안공동체를 통해 이루는 일에 헌신했기 때문이다.


생태계가 파괴되어 대멸종 사태로 인해 신생대의 마지막 단계를 살고 있는 지금, 모든 종교는 이제 생명의 종교로 나아가고 있다. 참된 종교의 판단 기준은 지구의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살리는 실천적 종교인가, 아니면 개인주의적이며, 내면중심적이며, 초자연주의적인 교리 중심의 생명 파괴의 종교인가에 달려 있다. 생명의 종교의 출발점은 토마스 머튼이 표현한 것처럼, 만물이 더없이 신성한 것이며 아름다운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만물은 하나님 자신의 창조적인 지혜에 의해 하나님께 성별된 것들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들이다. 특히나 꽃들과 나무, 강과 산은 온종일 하나님만을 앙망하는 성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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