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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인생
관리자
- 2417
- 2012-07-03 09:00:00
열왕기상 10:1-10, 요한복음 1:43-50.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많은 사람들과 만남으로, 교제를 나누고, 친분을 나눔으로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의 한 생애를 살펴보면, 수 없이 많은 사건들을 접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교제를 나누고 친분관계를 이어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하룻길을 가다보면 중도 보고 소도 본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길에는 수많은 만남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수많은 만남에서 지식과 지혜를 얻고, 교제를 통하여 인격이 성숙해져 간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인지상정으로, 그 사람의 운명과 생애를 바꾸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건을 접하게 되고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하는데 따라서 그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의 길에서 어떤 만남이 있어야 합니까?
1. 부모님을 잘 만나야 합니다.
사람이 제일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은 양친 부모님입니다.
부모님은 자녀를 낳아서 기르고 교육을 시킴으로, 자녀의 운명을 결정지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뼈와, 살과, 피를 물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먹여주고 입혀주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좋은 부모를 만나게 됨은, 가장 큰 행운의 기초가 됩니다.
좋은 부모를 만나게 된 자녀들은,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으며, 일생을 좌우하는 인격의 함양과 교육으로 덕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좋은 두뇌와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밖에 살게 되어, 재능과 소질을 가꾸어 보지도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상과 종교와 신앙인격과 지혜와 덕은, 자녀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흔히 보면, 많은 자녀들이 부모의 직업과 전통을 이어가는 것을 가끔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영향이 자녀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성경에서 좋은 부모를 선택하라면, 단연코 아브라함이라고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인격과 신앙의 덕은 참으로 훌륭하였다고 여겨집니다.
아브라함의 신앙교육은 100세나 되어서 낳은 외아들 이삭을 어떻게 잘 길렀는지, 늙은 아버지가 밧줄로 묶어서 제단 위에 뉘어놓고, 칼로 찔러 각을 떠 죽이려하는데도, 불평도 원망도 없고, 도망을 치려고도 하지 않고, 말없이 아버지에게 순종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잘 순종하는 것을 본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아브라함을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셨고, 축복의 조상이 되게 하셨을 것입니다.
또 다른 부모님을 말 한다면, 모세의 부모님을 말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과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애급의 노예로 있으면서 아론과 모세를 낳았습니다. 사내아이를 낳으면, 나일 강에 던져 넣어 죽이라고 엄한 바로왕의 명령이 내려진 상항에서도, 아론과 모세를 낳았습니다.
모세는 나일 강에 던져졌다가, 애급 왕 바로의 공주에게 건짐을 받았고, 바로의 궁에서 자라게 됩니다.
모친 요게벳이 모세의 유모로 발탁이 되어 모세를 길렀는데, 얼마나 잘 기르고 교육을 잘 하였는지, 장차 바로의 뒤를 이어 애급의 왕이 될 지경에서도, 모세는 애국심을 발휘하여, 애급 사람에게 고난 받는 동족을 위해 모든 부귀와 공명을 포기하고 희생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430년간의 애급의 종으로, 노예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동족을 구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많은 이적과 기적을 행하여 하나님이 지키시고 돌보심을 증거 하였고,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하였고, 성막을 지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규례와 법도를 세우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신약시대에 훌륭한 부모를 말 한다면, 디모데 목사의 조모 루이스와, 모친 유니게 일 것입니다. 디모데 목사의 어머니 유니게는, 외조모 루이스에게서 훌륭한 신앙과 가정교육을 받았고, 이런 좋은 가정의 전통은 어머니를 통하여 디모데 목사에게까지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부모는 자녀들에게 평생을 좌우하는 중대한 역할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부모를 만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2. 부부가 잘 만나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의 조건의 첫째가, 좋은 배우자를 만남으로 결정되어진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서로 다른 환경과 처지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남남끼리 서로 만나 가정을 이루며 살게 된 부부들이, 서로 이해와 용서와 화목함으로 사랑하며 사는 조건은,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가정 안에서 두 사람이 먼저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남편의 몸에서 갈비뼈를 꺼내어 아내인 여자를 만들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는 근본이 한 몸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고통을 받는다든지 아내가 고통을 받으면, 두 사람이 다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배우자와 한 몸과 마음으로 뜻이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혼자 외롭게 사는 것만 못하고, 아무리 재산이 많고 호의호식하며 산다 해도, 다투고 산다면, 가난한 가운데 채소만 먹으며 혼자 사는 것만 못하다고 합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범죄 한 것은, 하와가 뱀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에게 줌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사 삼손이 힘이 장사였고, 나실 인으로 선택을 받은 사람이었으나, 불레셋의 드릴라에게 장가들어 배우자를 삼은 때부터, 파란 만장한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내 들릴라는 남편 삼손에게 어디에서 그런 힘이 생기느냐고 날마다 눈물로 물어 삼손을 보채더니, 삼손의 힘이 나오는 근원인 머리털을 자르고, 불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남편 삼손은 불레셋 사람들에게, 두 눈이 뽑히고, 연자 맷돌을 갈며 조롱을 받아야했고, 결국 불레셋의 신전 기둥을 무너뜨리며 함께 죽습니다.
반면에 부부가 행복하게 산 가정도 있습니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남편 엘가나와 아내 한나의 부부사랑은 믿음으로 맺어진 가정입니다. 아내 된 한나의 간절한 서원의 기도는 사무엘 선지자를 낳았고, 평생을 하나님께 바쳐서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살았습니다.
그와 반대로, 신약시대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둘 다 똑같은 죄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양심이 살았고 신앙이 철저했더라면 그들은 베드로 사도에게 저주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땅을 팔아 모두 연보 하겠다고 서원을 하고서도 땅 판 돈에서 얼마를 떼어서 감추어두고 성령을 속였다가 그 죄로 저주를 받아 죽었습니다. 차라리 땅 판 돈의 일부만 바치겠다고 정직하게 말을 했더라면, 저주를 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배우자는 일순간만 사는 것도 아니요, 한계절만 사는 것도 아니며 평생을 밤낮으로 함께 대하며 살아가는 동반자입니다.
일생을 함께 살아야 할, 동반자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하나가되어 화목하지 않고 산다면 그 일생은 사뭇 불행한 삶이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믿고 믿을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은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었고, 지금 사는 남편도 자기의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뭇 남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았어도, 그 여인은 오히려 삶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 속에 살았습니다. 남편을 여러 번 바꾸며 살았어도, 인생의 목마름과 영적인 갈증은 영혼 깊숙이 느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에 자기의 상처받은 마음을 의지하고 위로를 받았든 것은, 마음속으로부터 심한 갈증과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 친구를 잘 만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친구는 그 사람의 일생을 도와주는 반려자로서 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친구로 인해 좋은 습관과 인생의 경험과 철학을 습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 에 따라서 그 사람됨이 나타나고, 그의 장래도 좌우되는 것입니다.
술주정꾼 친구를 사귀면 술주정밖에 배울 것이 없고, 도박꾼 친구를 사귀면 도박밖에 배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진 친구를 사귀면 어진 것을 배우고, 선한 친구를 사귀면 선함을 배우게 됩니다.
우정이 깊은 친구는 생명을 같이 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로 인해 타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친구의 도움으로 인해 훌륭한 업적을 남기는 귀한 인물들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친구를 사귀고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좋은 친구를 사귐으로 얻는 것과, 나쁜 친구를 사귐으로 잃는 것이 많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3-51, 나다나엘은 빌립이라는 좋은 친구를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께 인도함 받습니다. 빌립의 좋은 충고는 나다나엘을 예수님께로 인도했을 뿐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하게 합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 소이다”
사무엘상에 보면, 다윗과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은, 뜨거운 우정으로 맺은 친구사이였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요나단은 오히려 다윗을 보호하고 변론을 합니다. 그와 같은 뜨거운 우정은 후에, 다윗이 임금이 되고나서 요나단과의 우정을 잊지 않고, 그의 아들 절뚝발이 므비보셋에게 자비를 베풀었고 많은 배려를 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좋은 친구는 아름다운 우정을 남기는 것입니다.
영국의 수상 처칠은 어렸을 때 강에서 목욕을 하다가 수영 미숙으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구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 그곳을 지나가던 청년 프랭클린이 처칠을 구해주었습니다.
처칠의 할아버지는 그 청년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의학을 공부하는 데는 많은 돈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처칠의 가문에서는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처칠의 할아버지는 그 청년을 의학공부를 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청년은 의학을 공부하고 연구하여 페니실린이라는 약을 발견하여, 노벨상까지 받았는데, 그가 바로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입니다.
처칠은 2차 대전에 출정하여 아프리카에서 싸우는 중에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을 프랭클린은 즉시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까지 날아가 페니실린을 주사하여 처칠은 다시 살렸습니다.
이렇게 좋은 친구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좋은 만남을 맺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친구는, 일생을 좋은 우정을 나누며 함께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4. 스승을 잘 만나야 합니다.
장래를 위한 삶의 지식과 지혜를 배우게 되는 좋은 스승과 만남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불의 선지자로 많은 능력과 이적을 행한 선지자입니다.
엘리야가 기도하면 하늘이 닫혀 3년 6개월 동안 가뭄이 들었고, 엘리야가 다시 기도할 때, 닫혔던 하늘이 열리고 비가 내렸습니다.
그 뿐 아니라 갈멜 산에 제단을 쌓고 불의 응답을 위해 기도를 하였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을 사르고 태우는 응답이 일어났습니다.
그 엘리야는 인생의 마감을 죽음이 아닌 산채로, 하늘에서 내려온 불 병거와 불 말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이런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엘리사도, 훌륭한 선지자로 활약하였습니다. 엘리사의 기도는 사마리아 도단 성을 외워 싼 아람 군사들보다도 더 많은 불 병거와 불 말들이 사마리아 도단성을 지키게 하였고, 시종 계하시의 영적인 눈을 열어서 신령한 세계를 보는 눈을 열어 보게 했으며, 엘리사의 기도로 사마리아 도단 성을 외워 싼 아람 사람들을 물러가게 했고, 아람 군대장관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주었으며, 죽은 아이를 살려 내기도 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라는 위대한 스승을 만남으로 갑절의 영감을 발휘하는 선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핍박 자, 사울은 이스라엘의 족속에서 베냐민 지파의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고, 바리새인이며 가말리엘이라는 훌륭한 선생을 만나 당시 최고의 학문을 사사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사울은 외골수로, 비판적이고 냉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유대교를 벗어난다는 것은 이해하지도 못하는 일이고, 생각지도 못하는 전통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는데 앞장을 섰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고 체포영장을 받아들고 다메섹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환상 가운데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꾸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핍박 자가 아니라 사도 바울로 다시 거듭나서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가말리엘의 학문은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열왕기상 10:1-10, 보면 시바의 여왕은 좋은 스승을 찾아서 먼-길을 찾아 온 것을 봅니다. 그녀는 솔로몬에게서 지혜의 말을 듣고 배우는 시종들이 가장 복 있는 사람들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복 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 되도다 당신의 이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 이로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 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 하사 이스라엘 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영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을 삼아 공과 의를 행하게 하셨도다.”라고 찬사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여류 문필가요, 사회사업가인 헬렌켈러는 2살 때, 성홀 열로 벙어리요, 귀머거리요, 소경이 되었으나, 설리번이라는 좋은 여선생을 만나 말하는 방법을 배우고, 학문의 길도 열리게 되었습니다.
1904년 래드클리프 대학을 졸업하고 유럽, 아시아 등지를 순회하며 강연도하였고, 맹인 교육 사회시설개선을 위한 기금을 모았습니다.
1937년에 우리나라에도 온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스승을 만남은 장래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하는 귀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5.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앙의 대상을 잘 만나야 합니다.
부모를 잘 만나야 하지만 부모는 자녀의 육체를 낳아주지만, 자녀의 건강이나 우수한 두뇌나 생명은 낳아 주지 못합니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 하여도 자녀들의 아픔을 부모님들이 대신하지 못하며 자녀들의 생명을 부모님들이 대신하지 못합니다.
자녀의 죽음을 대신하여 죽어 줄 부모가 있습니까? 자녀들의 생리적인 문제들도 대신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어떻게 자녀들의 생명을 대신하겠습니까?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육신을 낳아준 부모가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 3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 외에 우리의 생명을 지배하실 수 있는 분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 인간의 생사와 화복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 평생을 함께 살아간다 할지라도, 내심 깊숙이 숨어있는 허전함은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은 남편을 여러 번 바꾸어보아도 마음의 평안과 안정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뭇 남성의 사랑을 받아 보았으나 생의 고독함과 목마름은 여전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기조차 두려웠고 얼굴들을 대하기조차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밝은 대낮에 3km나 되는 곳까지 물을 길으러 갔던 것입니다.
그 샘에서 그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의 생애를 모두 아시고 고독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해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그 여인은 속에서 솟아나는 생수와 같은 시원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 여인은 사람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동리에 찾아 들어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치유하시는 능력의 메시야를 만났다고 증거 합니다. 이 여인은 신앙의 대상을 바로 만나고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이는 결혼을 서약할 때, 100년을 약속하고도 서약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 약속의 절반에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헤어지고 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여인은 기뻐하고 즐거운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쁨과 희망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 함께 붕우의 정을 가진다 할지라도 언제나 친구의 마음이 맞는 것은 아닙니다.
시저도 부루터스라는 친구의 배신으로 원로원에서 칼에 찔려 암살을 당했습니다. 시저의 아내는 지난밤에 꿈이 좋지 않아 속에 갑옷을 입고 나가라고 권하였으나, 시저는 원로원에서 부르는 일이니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원로원에 들어갔을 때, 원로들이 칼을 가지고 달려들었습니다.
시저는 펜대 하나로 암살자들의 칼을 받아 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도 믿었던 친구 부루터스의 배반임을 알았을 때, “부루터스여 너도 배반하느냐?” 하고는 배반자들의 칼에 32군데나 찔려서 죽었습니다.
예수님도 33년 동안 동행하며 배우고 훈련받은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종교의 지도자들에게 은 30에 팔리는 몸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셨고, 용서하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 달려죽으심으로 사랑해 주셨고, 우리의 죽을 인생을 영원히 살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인생의 지혜와 지성을 다 깨우쳐주는 좋은 스승도, 영혼의 문제까지 깨우쳐주는 좋은 길의 안내자가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위대한 스승 가말리엘을 만나 최고의 학문과 지식을 배웠으나 죄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고 영혼의 문제는 깨닫지 못했으며 영혼의 구원은 얻지 못했습니다. 마음의 변화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의 인생은 바뀌었고 그의 삶은 바울로 변하였으며, 인생관이 달라졌습니다. 삶의 방향이 바뀌어 졌고 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자신만을 위한 삶이 이제부터는 남을 위한 봉사와 희생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육체를 위한 삶이 영혼을 위한 삶으로 바뀌어 졌습니다.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는 권세를 지녔고, 여리고의 세리 장 삭개오도 많은 재물을 가져보았으나, 그들은 모두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인생의 갈증을 느끼고 목이 마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인생의 변화를 갖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서부터 재창조를 받으면서부터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 문제의 해결 자이시고, 영혼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외에는 구원받을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바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사람들이 만들고 지어낸 신을 믿고, 자연계의 일종을 신으로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신을 숭배하며 섬기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이 제조한 신상을 섬기며 절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 인간의 죄의 문제와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모두 헛된 신이며, 우상이며, 사신입니다.
이런 것들을 믿고 섬기는 것은 자신의 일생과 영혼까지 망치는 것입니다. 평생을 헛된 우상과 사신을 믿으며, 섬기며, 수련을 하여도 영생은커녕 멸망을 받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부터 모든 문제들을 해결 받았습니다.
마음의 번민과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 육체의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죄의 문제들을 해결 받았습니다. 죽음의 문제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가정의 문제가 해결 받았습니다. 인간의 변화를 얻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이 우리 인생의 이생과 내세에서 변화를 받고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깡패가 목사가 되고, 악인이 선한 사람이 되었으며, 도적이 자비의 사람이 되고, 살인자가 성자로 바뀌어졌습니다. 죽을 죄인이 생명을 얻어 살고, 저주받을 운명이 바뀌어져서 자유인이 되고 구원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 여러분은 세상의 헛된 우상사신을 버리고 살아계시는 주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만나시어 영생을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