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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는 신인가? 사람인가?
관리자
- 2182
- 2012-07-04 03:54:37
천사는 영혼만 있고 육체는 없는 영적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천사는 한순간만이라도 사람들처럼 육체를 지니고 살아보기를 원하고 부러워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처럼 육체를 지니고 마음껏 땀도 흘리면서 일하며 일한 것에 보람도 가져보고, 뜨겁게 사랑과 정도 나눠보고 싶어서 사람들을 매우 부러워 한다는 것이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박수를 치면서 마음껏 기뻐하고 즐겁게 웃기도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눈물을 평평 쏟으며 실컷 울어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소중하고 아름다운 육체를 입고도 육체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죄악을 물마시듯 마시고 죄지으며 감사한지도 모르고 스스로 자학하고 불평하며 사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들은 육체를 입고 사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보람된 삶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하려고도 하지 않고 이기적인 욕심과 쾌락만을 위해서 사는 것을 보며 탄식하는 것이다.
할 수만 있으면 사람들의 육체를 자신들이 단 하루나, 단 몇 시간만이라도 빌릴 수 있다면 그 육체를 입고 하나님을 마음껏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하며 선한 일들을 많이 하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고 기쁘시게 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삶인지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안타깝고 어리석게만 여겨질 뿐이다.
그런데 화가들은 천사를 그림으로 표현할 때 백조의 날개를 달고 영공을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육체가 없는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사람들을 도와주고 시중들어 준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짐승들은 육체는 지니고 있으나 영혼이 없다.
영혼이 없고 육체만 지니고 살고 있기에 육체적인 본능만 가지고 행동하며 육체의 배만을 채우기 위해서 먹고, 자고 싶은 대로 자며 윤리와 도덕은 없고 가치관이나 체면이나 부끄러움도 모르는 채 살다가 죽는 것이다. 그러기에 짐승들은 배를 채우는 것이 최상의 목적이요 자신보다 약한 동물들을 사정없이 물고 찢어 죽여 잡아먹어 배불리면 되고 다른 짐승의 고통이나 남의 사정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눈치나 체면을 보는 일도 없으며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는다.
그래도 짐승들은 아무에게서나 제재를 받거나 통제를 받는 법도 없다.
강자가 통치하고 지배하며 힘 있는 짐승이 본능대로 행동하며 배를 채울 뿐이다.
짐승들은 영혼이 없기에 미래나 내세도 없고 희망이나 꿈도 가지지 않는다.
현재 자신의 배만 부르면 만족하고 몸뚱이만 편하게 살다가 강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생애를 마감할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도 체면도 양심도 부끄러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짐승 같다고 욕을 하는 것이다. 사람의 너울을 입고서도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사람 노릇을 하지 못하고 짐승들처럼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짐승들은 짐승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체념하지만 사람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천사가 부러워하는 육체도 지녔고 짐승들이 가지지 못한 영혼도 소유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육체를 주셨고, 짐승들이 부러워하는 영혼도 주신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들은 천하보다 귀하고 만물보다 소중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들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나 구스타프 도래 같은 유명한 화가들은 성화를 그릴 때 창조주 하나님께서 무한의 영공에서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운행하시면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물인 사람들은 영혼이 있고 육체가 있기에 인간의 도리와 활동도 하고, 양심이 있고 생각이 있기에 윤리와 도덕과 체면도 갖추고 선악을 분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영혼이 있기에 이성과 감정도 있고 인격과 품위도 갖추며 정신과 생각이 있기에 감사와 기쁨과 슬픔도 알며 만족과 불평불만도 구분하고 장점과 단점도 알며 삶의 기준도 갖는다.
영혼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기를 원하고, 양심과 정신은 선악을 분별하여 해야 할 일을 장려하거나 하지 못할 일들을 제재하기도하며 법과 도덕성을 가려서 규제도하고 체면도 차려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가 있기에 장래를 위해 연구하고 설계하며 땀도 흘리며 노력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감각과 정서도 느낄 줄 알고,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문화와 유산들을 남겨주기도 한다.
인간은 육체가 있기에 자신의 생활환경과 삶의 주변을 정화하고 개선하며 건설한다.
인격이 있기에 육체만을 위해 살기보다 절제하며 본능으로 행동하지 않고 품위를 지킨다.
영혼과 생각이 있기에 현실만을 위해서 살지 않고 장래에 가게 될 영원한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영생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도 사람이기에 행동함에 있어서 밝은 면이 있고 어두운 면도 있는 것이다.
목회자들도 육체를 덧입고 살기에 미적인 감정도 있고 감각과 느낌이 있어서 선과 악과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하며, 먹지 않으면 배고픈 줄 알고 슬픈 일을 보면 눈물도 흘리며 추우면 옷을 입고 더우면 벗는 것이다.
감정이 있기에 즐거움이나 쾌락도 가지며 미움이나 분노도 느낀다. 그래서 자신이 행한 일들에 대해 장점과 단점도 분별하고 반성하며 잘한 일이나 잘못한 일들도 가려서 분별하는 것이다. 그런데 목회자라고 해서 신이나 천사가 된 것처럼 무례히 행동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요 실수를 범하는 잘못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목회자들에게도 천사들처럼 백조의 날개를 달아주시지 않았기에 천만 다행이지 만약에 천사들처럼 날개를 달아 주셔서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게 했더라면 아주 가관이었을 것이다. 제각각 높은 감투나 쓰려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날아 영공까지 차지하려고 정치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력에 의해 땅에 발을 디디고 살면서도 서로 높아지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날개를 달았더라면 오죽이나 했을까?
목회자는 영적인 지도자요 인도하는 사명자이기에 일반 평신도들보다 생각이 좀더 낳아야 하고 말과 행동에서 모범되어야 하며, 세상 사람들처럼 마구 행동하거나 짐승들처럼 본능적으로 살아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육체를 무시하고 살 수도 없다.
육체가 있기에 땅에 발을 디디고 살며 그림자를 끌고 살며 실수와 잘못하는 일들도 많이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신도 아니요 영만 있는 천사도 아니기에 육적인 허물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목회자들은 스스로 인식하고 겸손히 자숙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땅에서 살지만 영과 혼이 있기에 하늘을 우러러 보며 영혼을 위해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해도 안 되지만 지나친 과대망상에 빠져도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