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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관리자
- 2160
- 2012-07-05 21:05:29
성경을 읽을 때 소설을 읽듯이 다독하는 형식으로 많이 여러 번 읽을 수도 있겠으나 성경이 기록되어진 글들은 히브리어나 헬라어로서 기록하였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단어 하나하나에 깊은 뜻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단어 하나만 뜻을 달리 해석하여도 성경의 내용과 의도가 달라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 한다면, 다독하는 형식으로 읽는 방법도 좋겠으나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깊이 생각하며 읽는 방법도 많은 은혜를 받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경제적인 여건이나 생활환경 등을 염두에 두고 읽는 것도 이해가 빠를 것이다. 자칫 오늘의 우리의 생활환경을 염두에 두고 연관 시키려면 오해를 할 수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너무 오늘의 상황과 다른 부분을 염두에 두라는 말은 아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 무리들이 옹위하고 따랐다’는 구절을 속독으로 읽으면 소설을 읽듯이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사람들이 옹위했다면 몇 명이나 어떻게 따랐으며, 그들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고 따르면서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들은 따르면서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그들이 따르면서 무슨 대화를 했을까?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나는 어찌 했을까? 깊이 생각해보면 받는 은혜가 또한 다를 것이다.
그것은 마치 현미경으로 조직들을 세밀하게 살펴보고 분석해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와 반대로 성경 한 장 한 장을 한 묶음으로 보며 읽는 방법도 있다.
예로 든다면, 마가복음 5:21절 이하에서 회당장 야이로가 12살 먹은 딸의 병을 고쳐 달라고 사람을 보낸 기사가 있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실 때 혈루 병으로 12년을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아 고침을 받은 내용이 있고 이어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셔서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려 준 내용이 있다.
이 구절을 흔히 따로 보는 이들이 있으나 하나의 묶음으로 보면 더 은혜가 있다.
마치 계란의 흰자위와 노른자위를 따로 나누어 보려는 사람과 하나의 계란으로 묶어서 보는 사람의 차이라고 할까? 백부장 야이로도 믿음이 좋은 칭찬 받을 사람으로 계란의 흰자위와 같은 귀한 믿음이지만 혈루 병든 여인은 계란의 노른자위와 같이 더 칭찬을 받을 만한 믿음 중에 믿음의 사람임을 보게 된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초청하여 딸을 고쳐 달라는 믿음의 사람이고 혈루 병든 여인은 아픈 몸을 이끌고 사람들에게 부정하다는 비난과 멸시를 받는 것도 무릅쓰고 직접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결사적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은 뛰어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백부장의 믿음은 개펄에 조개와 같은 귀한 믿음이지만 혈루 병든 여인은 조개 속에 들어 있는 진주와 같은 믿음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성경을 세밀하게 보는 경우도 있지만 넓게 한 맥으로 생각해 보는 방법도 좋은 것이다.
요한복음 14장에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신 말씀도, 헬라어 성경이나 영어 성경에서는 있으나 우리말 성경에는 빠진 단어가 있다. 그것은 우리말 성경에서는 문맥구조상 들어 있기가 어려운 단어이다. 그것은 ‘길’이라는 단어 앞에 정관사(定冠詞)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원어 성경에서는 ‘헤이 오도스’로 되어 있는 것이다.
영어 성경에서도 역시 ‘더 웨이’(the way)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길’은 우리가 일상으로 생각하는 보통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는 ‘길’은 ‘유일한 길’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활동하는 ‘길’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가실 수 있는 하나밖에 없는 ‘길’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 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말씀이다.
오직 예수님 밖에는 다른 진리도 없고 소망도 없으며 구원의 방법도 없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1장에서도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말씀이 있는데 ‘말씀’ 즉 ‘로고스’앞에 정관사(定冠詞)가 있는 것이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호 로고스’이고 영어 성경에서는 ‘the word\\'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은 유일의 말씀이요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너무도 중요하고 귀한 말씀이기에 복수(複數)로도 쓸 수 없는 단어이다.
이렇게 원어 성경과 대조하여 읽음으로 더 한층 은혜가 있고 깊은 뜻을 알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