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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자가 되라
관리자
- 2367
- 2012-07-05 09:00:00
신명기 8:1-10, 골로새서 3:12-17.
430년간 애급 땅에서 노예로 고통당하며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셔서 애급에서 구출하시고, 아름답고 소산물이 많은 기름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은, 기름지고 소산물이 풍부하며, 산에는 보화가 많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Kitto, Stanley, Wilson, Thoman 등이, 그의 작품들을 통해 증거 해주고 있으며, 그 외에서도 수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모세가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하는 말을 할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갈 것을 기대했지만, 아직은 도착도하지 못하였던 때였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모세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좋은 땅으로 인도해주실 것에 대한 감사의 찬송을 부르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그 은혜에 감사할 조건과 이유들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장중 안에서 자연은 움직이며, 그 자연 속에서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내려주신 하사품들은, 크고 위대할 많 큼 많으며, 우리 인간들은 그 하사품들을 공짜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양, 빛, 공기, 물, 식물, 꽃, 열매, 동물, 곤충, 물고기, 또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자녀들, 그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하사품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또 하나님이 주신 옥토 위에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을 가진 것이 무엇인가?” “땅이 기초를 놓을 때에,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볼 때, 감사해야 할 조건들을 발견하고 겸허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길”입니다.
이사야는, “소는 구유를 알고 나귀는 임자를 알건마는 내 백성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도다.”하고 탄식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감사하는 자며 감사하는 마음은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인격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합니까?
① 우리가 감사 할 때, 입술로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에서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시 28:7)고 하는 말은, 입술로 아름다운 시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을 할 수 있는 입술을 주신 것은, 보다 열심히 찬송하며 감사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으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입술을 통해 찬송과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로마서 10:5-10,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 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요한계시록 19장에도 보면 24 장로와 네 생물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합니다. 그때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계 19:9-10)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입술로,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고, 감사드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②감사의 제물과 물질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요제와 번제는 감사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첫 곡식이나 가축의 첫 새기나 과일의 첫 열매로 감사의 번제와 요제를 드렸습니다.
물질로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께 유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 50:13-14,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일은, 자신의 영적인 삶을 풍성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백성들에게 성막을 짓도록 지시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이 같은 지시대로 성막을 지을 때, 필요한 물질들을 자원해 가져왔는데 성막을 짓고도 남을 정도로 넘치도록 가져 왔습니다.
성막 짓는 책임 맡은, 오홀리압과 브사렐은 오히려 모세에게, “이제는 쓰고도 남을 정도이니 백성들에게 명하여 그만 가져오게 하소서”라고 금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드려진 것들로 성막을 지을 때, 그 성막 지성소 안 법궤에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의 두 돌 판과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넣어두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이 주신 양식과 하나님의 생명을 상징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에게 축복의 언약을 맺어 하나님이 양식을 주시고 생명을 지켜주신다는 뜻을 상기시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은혜와 축복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③모든 이웃과 더불어서함께 즐거움과 감사의 기쁨을 나눠야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되, 그 기쁨과 감사의 즐거움을 모든 이웃과 백성들로 하여금 함께 나눠야합니다.
시편 33:1-3,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종교의 핍박을 피해서 미국 신대륙으로 건너가서 그들이 첫 해에 한 일은 추수감사제였습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릴 때, 인디언 원주민들을 초청하고 축제로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제일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미국인들은 오늘날 세계적인 일등국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은 “은혜의 보답”이며 “축복 받는 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감사하는 사람은 더 많이 받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있던 것들까지 다 빼앗기게 된다는 것을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감사하지 않고 불평불만만 하는 행위는, 배은망덕한 행동입니다.
감사할 줄을 아는 사람에게는 더 많이 주고 싶어지며, 감사할 줄 아는 마음에는 더 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B시의 어떤 큰 교회에서 미 자립교회들을 보조하는 교회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감사하다는 편지와 영수증을 보내며, 계속연락을 하는 교회들에게는 계속해서 도와주지만, 1년 동안 한 번도 감사의 편지도 하지 않고 인사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교회는 보조를 끊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오래도록 사랑을 받게 됩니다.
대동아 전쟁당시 남양군도의 어느 섬에서 미국비행기들이 퍼붓는 폭격을 피해서, 일본 군인들이 토굴에 들어가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어느 군인은, 전쟁이 이미 끝난 줄도 모르고 그 섬의 토굴에 숨어서 30년을 외롭게 살았습니다. 종전 30년이 지난 후, 그 군인은 원주민들에게 발견되어서 일본에 알려졌고, 일본정부에서는 그를 설득하여 본국으로 데려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번영하고 발전된 조국을 바라보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왜?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을 했느냐? 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발전하고 번영한 국력으로 미국과 싸우면 얼마든지 이겼을 것인데, 항복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불평과 불만을 가지면서 그에게는 웃음이 사라지고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았으며 밤에 잠도 못 자게 되었습니다.
그의 몸은 이상하게 아프기 시작하고, 온 몸에 고통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몸이 마비가 되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기조차 싫어졌습니다. 점점 더 병색이 짙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며느리가 손녀를 데리고 병원에 왔습니다.
어린 손녀는 침대에 다가가서 “할아버지 이거 먹어”하며 자기가 먹던 과자를 환자의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는 너무 귀여운 손녀의 행동에 행복의 미소가 어리며 “그래 고맙다”하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굳어져있던 그의 몸과 마음이 봄눈 녹듯이 풀려지면서 건강을 되찾았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불평불만만 하던 그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부터 얼굴에 미소를 짓는 순간 그의 굳어있었던 근육들이 풀려지고 몸과 마음이 녹아지면서 치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고 기뻐할 때, 영육이 건강해 지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자신에게 스스로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현재의 위치에서도 스스로 만족을 줍니다.
시험과 환난을 당해도, 범사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시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하십니다.
마음의 여유를 갖기를 원하십니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평안을 갖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깊이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되지만 마음이 조급하면 실수가 많게 됩니다.
사도행전 16:16-34,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계집종을 통해, 점을 치게 하며 돈을 버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바울사도는 그 계집아이에게 들어가 있는 귀신을 책망하여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그 계집아이의 주인은 돈벌이가 없어지게 되자 몹시 화를 내고 사람들을 충동하여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하며 사람들을 끌고 와서 바울과 실라를 심하게 때리고 감옥에 가둬버렸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잘못한 죄도 없이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를 드리고 밤새도록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지진이 나고 감옥이 흔들리면서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을 묶었던 쇠줄수갑과 착고들이 모두 풀렸습니다.
고난 중에도 감사 찬송을 부르며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난 증거입니다.
“범사에 감사” 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난 기적이었습니다.
우리가 불평불만만하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자연은 모두 살기 힘들고 어려운 조건만 보입니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하면 우리를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는 것들로 가득하게 차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감사하고 찬송하면 모든 어려움과 고난들이 해결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도 인류를 위한 희생의 죽음을 기쁘게 받았습니다. 수치와 고통과 죽음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기에 모두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두려워서 한 곳에 모여 문을 걸고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안 할 지어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평안을 모든 사람들이 소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편지하기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고, 골로새교회에게는 “감사하는 자가 되어 지혜로운 자가 되고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권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처음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 고민하고 걱정하던 그 때를 생각한다면 지금도 정신이 없습니다. 짐을 풀 곳도 없고 잠을 잘 집 한간 방 한간도 없으니, 아이들은 어떻게 학교에 보내고 생활은 어떻게 합니까?
교회는 뜯기고 예배처소를 잃어버렸으니 어디에서 예배를 드립니까?
예배처소를 마련하려고 건물들을 알아보고 다녔으나, 건물을 빌려준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렇다고 교회는 돈이 한 푼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저는 남모르게 눈물 많이 흘리며, 서울거리를 정신없이 헤매고 다녔습니다. 걱정으로 밤에 잠을 못 잤습니다.
머리는 뻐개지는 것만 같았고, 다리는 힘이 없어서 비틀거렸습니다.
제 머리는 이상하게 출렁이는 것만 같고, 흔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머리가 돌 것만 같고, 정신착란증이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럴 때 저는, 내가 만약 잘못된다면 가족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니 더 큰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고난을 주신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기로 결심을 하고, “하나님 내게 고난을 주시니 감사합니다.”하고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저에게 함께 하셨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감사하는 저의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누가복음 17:11-19, 열 명의 문둥병자들이,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애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제사장들에게 달려가다가 자신들 몸이 고침 받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기뻐하며 자기들의 갈 곳으로 모두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이, 다시 돌아와서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잇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업느냐”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구원하였느니라.”하고 축복하셨습니다.
그 사마리아 사람은, 고침 받은 은혜를 감사드릴 때, 영혼의 구원까지 약속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불평하고 불만만하는 사람은 자신의 정신 건강에도 피해를 받지만,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적인 건강에도 유익하고, 보는 이들에게도 평안을 줍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십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성도들의 생활규범입니다.
성도들의 생활덕목이 사랑이라면 감사하는 마음은 성도들의 생활자체이며 규범입니다. 모든 가축들도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을 보면, 극히 평범하고도 당연한 일이라고 보여 집니다.
심지어는 미물의 짐승들 중에 까마귀도, 어미를 1년간 섬긴다고 합니다.
하물며 감사할 줄 아는 성도들의 삶은, 신앙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유대인의 생활 가운데, 가끔 찬미와 노래를 부르며 밤을 지새우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로마 황제에게 그리스도인의 활동을 보고하는 사항중에, 총독 플리니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찬미하고 노래 부르며 밤이 새도록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하고 보고를 했다고 합니다.
찬미와 감사의 노래는, 성도들의 마땅한 도리이며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성도의 신앙을 시험하는 최상의 테스트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성경은 권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행동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의지하며, 하나님 안에서 행동을 합니까?
모든 성도들의 삶은 감사할 줄 아는 데서부터 믿음이 성장합니다.
감사가 메마른 생활은, 믿음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불평불만의 생각이 자라게 됩니다.
감사하며 주님을 의지할 때, 그 생활은 더 풍성할 것입니다.
감사는 성도들의 믿음의 열매입니다.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와 성도들에게 많은 편지들을 써서 보냈습니다.
바울이 보낸 편지 13권들은 신약성경에 포함이 되어 우리 성도들에게 많은 은혜를 끼쳐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옥중서신들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쓴 편지들입니다. 그 중에 특히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사하고 기뻐하라고 하는 말씀을 많이 쓴 책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자유인들에게 “감사하라 기뻐하라”고 권하는 내용들로 가득한 책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자유인이 감옥에 갇힌 사람에게 위로하고 격려를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 빌립보서는 그와 반대로 감옥에 갇힌 바울이 자유인들에게 “감사하라 기뻐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참 평안과 기쁨을 맛보아서 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의 폭정 밑에서 많은 핍박과 환난을 당하여도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짐승들에게 찢김을 당하고 불에 태워짐을 당하고 노리개 감으로 살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담대하게 죽음을 향해 나아가 순교 당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죽음 앞에서도 감사하며 순교 당하였거든 하물며, 우리도 감사하려고 한다면 모두 다 감사를 드릴 일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 맑은 하늘, 그리고 푸른 숲, 인정 많고 마음씨 고운 이웃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반깁니다. “성령의 열매”처럼 “믿음의 열매” 중에 감사가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을 효자로 키우고 싶습니까?
그러면, 자녀들을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을 가르치십시오.
하나님께 감사를 모르면, 부모님께도 감사 할 줄도 모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녀가 부모님께도 감사할 줄을 아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감사하고 나라와 민족 앞에도 감사할 줄 알게 해야 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성도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축복도 받고 인간미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정성껏 아름다운 향기와 제물로 하나님께 감사해서 크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주실 것에도 감사 드렸습니다.
이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은 가나안 땅을 소유하지 못했을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감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아직 받지 않았으나 받은 줄로 믿고 감사를 드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과 바라는 소망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것은 이미 거둘 것을 믿고 씨를 뿌리고 심는 것입니다. 어부가 바다에 거물을 내리는 것은, 고기를 잡을 것이라고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사꾼이 명절 대목을 앞두고 상품을 많이 들여놓는 것은, 장사를 잘하여서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믿음이 있기에 행동합니다. 하물며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실 줄로 믿고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비록 주시지는 않았어도 감사하는 것은 성도들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히브리서 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것은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어도 이미 받은 줄로 믿고 하나님을 따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이런 믿음의 확신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도 유전되어지기를 하나님은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에게도 이런 확신의 믿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가나안땅을 눈앞에 바라보며 받은 줄로 믿고 감사를 드리는 것은, 가나안 땅을 이미 소유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여리고를 점령하면서부터 실현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제사장들이 메고 백성들의 앞장을 서서 백성들은 침묵을 한 채 매일 여리고성을 주인의 자세로 날마다 한 바퀴씩 돌고 있을 때, 여리고 성의 사람들은 이미 간담이 녹았고 두려워서 문마다 걸어 잠그고 숨소리도 죽이고 있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여리고성이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함락 될 것으로 알고, 두려워서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여리고 성은 원주민들의 성이 아니었습니다.
주실 것으로 믿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성이었습니다. 제 칠 일째 되는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을 7바퀴 돌며 일제히 함성을 지르자, 여리고성은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기뻐할 때,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무너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평안을 소유하고 감사를 하는 사람에게 굳게 닫혔던 여리고 성도, 이렇게 맥없이 무너져 내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무기는 감사와 순종과 찬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예비하신 축복을 소유하시는 삶이 다되시기를 바랍니다.
작은 것으로 감사할 때, 큰 것으로 주시며 적은 것에도 감사할 때, 많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