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법, 세상법을 넘어야 산다.

이재신
  • 2049
  • 2012-07-12 02:25:38
교회법, 세상법을 넘어야 산다.

기득권 유지?(보는 이에 따라서 그런 해석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람)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도 문제지만, 그 반대로 오직 투쟁과 비판으로 일관하는 것도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4년 파행의 곡절이 어느 한 쪽의 책임만이랴?
개구리가 움츠리는 것은 더 멀리 뛰기 위함이라던가?
오직 한 자리?만을 놓고 집중한 탓에 더 멀리 뛰기 위한 에너지마저 소진되는 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지...
지금 부흥은 커녕 곳곳에서 마이너스 성장에 몸살을 앓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이제 겪을 만큼 겪은 진통에 걸맞도록 새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방법이 바로 법에서의 해방일 것이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고전6:2

탈무드의 교훈 한 대목이다.
부부가 싸우고서 화가 나서 랍비를 찾아가서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아내가 먼저 찾아가서 하소연을 했더니 랍비가 아내의 말을 다 듣고서 아내를 위로하며 편을 들어 주었다고.
얼마 후에 남편이 랍비를 찾아 갔더니 바로 그 랍비가 이번에는 남편 편을 들어 주었다는 야기다
부부는 서로 랍비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편을 들었다고 주장하다가 그마저 합의가 안 되니 이번에는 둘이 다 랍비를 찾아갔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둘 다 옳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평범한 이야기의 교훈이 뭐 그리 대수라고 그 수천 년 지혜의 책에 기록되었을까?
그것은 따지고 싸우는 당사자(부부)에 비해서 랍비는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지혜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너그러움, 수용, 용서, 인내, 자비, 은혜,  사랑 등 등)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랍비라는 특정한 ‘직책’ 때문에 지혜롭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집단 누구에게나 그런 일(싸움과 분쟁)이 있을 수 있고, 그 때에 필요한 것이 랍비 수준의 덕과 지혜라는 것이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갖고서 박 터지게 싸우는 것은 아직도 그 수준에 있어서 일정한 정도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매일같이 은혜로운 설교에, 기도에, 상담에 젖어 사는 분들?이 어찌 이리 타협(희생은 더 말할 것도 없고)조차 이루지 못하는지...

건방진 야길는지 모르지만 이제 감리회도 싸우는 부부의 수준에서, 의연하고 너그럽게 포용할 줄 아는 랍비의 수준으로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 싸우다가 감리회 전체가 돌이길 수 없는 패배의 늪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때가 아닐까?
승자는 없고 패자만 양산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하루빨리 끊어내는 것이야말로 그나마 기울어져가는 교회의 장래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키는 급선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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