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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장로도 살펴보았으니
함창석
- 1702
- 2023-04-24 20:00:01
함창석
신학: 종교개혁 이후에 발생한 서방교회 종교개혁 사상인 '개선주의'와 '재건주의'적 전통으로 구분하면, 서방교회 개선주의인 개신교 공교회주의 전통을 지닌 루터주의와 구별되는 서방교회 재건주의인 개혁주의, 즉 칼뱅주의를 뜻한다. 장로교회와 개혁교회(Reformed Church)에서 따르는 신학노선이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및 대/소요리로 불리는 고유의 신조(Creed)를 갖고 있다.
개혁적 사회주의: 사회주의 운동 중에서 기존의 단체나 체계들을 점진적으로 교체하다 보면, 결국에는 정치적, 경제적 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개념으로 앨러스터 매킨타이어 등이 주장하였다. 이 운동은 주로 자본주의 체제를 교체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세우기 위한 활동을 의미한다.
중도개혁주의: 주로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정치 용어이다.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 국내의 정통교단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개혁주의 성향을 띄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산하 신학교는 체계적인 신학 교육을 하지 않고 수도원처럼 운영하고 있기에[7], 일부 교계에서는 예장총공회가 개혁주의에서 벗어났다고 보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및 파생교단 및 출옥성도파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및 파생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및 파생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 교단 신학인 '생명신학'을 언급할 때 꼬박꼬박 개혁주의의 분파라는 것을 언급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및 파생교단의 보수파: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개혁주의 장로회 진영의 마지노선이라고 여겨진다.
한국기독교장로회: 흔히들 후기 자유주의 노선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여기도 은사주의를 혐오하는 개혁주의 성향이 없잖아 있다.
타 개신교 주류 교파의 개혁주의 성향 목회자 및 신학자: 자신의 교단 내부의 다른 성향의 목회자들을 의식하기에 장로회만큼 선명하진 않다. 애초에 개혁주의를 선명하게 주장하고 싶었다면 진작에 장로회로 건너왔을 것이고. 특수 침례회: 개혁주의를 따르는 침례교. 역사상 침례교는 개혁주의를 따르는 특수침례교, 알미니우스주의를 따르는 일반침례교로 구분되고 있으나, 대부분 개혁주의인 특수침례교회가 주류를 이루었다. 일례로 개혁주의가 주류인 미국 남침례회를 들 수 있다. 한국 장로교 신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박형룡 박사를 비롯 국내 상당수의 장로회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미국 남침례회 신학교에서 유학하여 개혁주의 신학을 배웠고 배우고 있다. 초교파 독립교단(KAICAM, WAIC 등)의 개혁주의자 : 장로회가 절대적 우세를 점한 국내 개신교 환경 상 초교파 교단에서도 이들의 목소리가 꽤 크다.
복음주의
함창석
복음주의(福音主義, 독일어: evangelikalismus, 영어: evangelicalism)는 개신교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의 핵심 사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현재도 모든 개신교 교단은 복음주의를 지향한다.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도 기독교의 핵심용어이다. 그러나 서방교회의 개혁을 주장한 16세기 종교개혁의 찬성파인 전통적인 종교개혁 세력을 지칭하는 용어에서 활용되어, 16세기 종교개혁 운동가들과 참여 교회들은 이 용어를 수용하였다. 개신교는 복음주의 교회로, 개신교 신자는 복음주의자로 종교개혁 시기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복음주의는 초기 종교개혁 시절부터 현재까지 개신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개신교 내부의 진보, 중도, 보수 및 극좌 극우 성향 교단 모두 복음주의를 주장하므로 그 의미 폭이 넓은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보편교회를 따르는 기독교 교단은 모두 복음, 복음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므로 복음을 표현한다고 해서 반드시 개신교회만 의미하지 않는다. 동방정교회도 천주교회도 스스로 복음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누가 복음주의자인가?
복음주의자의 정체성을 판단하려는 시도로 영국 복음주의 역사가 데이비드 베빙턴(David Bebbington)은 다음 분류를 사용했다.
성경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 또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자 문자적으로 단어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말씀" 이라는데 어느 정도 동의하면 복음주의라라고 간주된다.
회심
"나는 내 삶을 그리스도께 헌신하며, 내가 회심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구절에 강력하게 동의하면 복음주의자로 인정받는다.
행동주의
"비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이 될 수 있게 돕는 것이 중요하다" 는 명제에 동의 또는 강력히 동의한다면 복음주의자로 간주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에 강하게 동의하면 복음주의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분류는 복음주의자들의 정체성은 드러내지만, 객관적 의미에서 누가 복음주의자인지를 드러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ㄱ. 성경의 진리성 ㄴ. 회심의 중요성 ㄷ. 선교의 절박성 3가지에 동의하지 않는 개신교 교단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예 개신교조차 아닌 가톨릭의 경우도 근대적 성서주석학은 수용했으되 성경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진리라는 명제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1] 전통이 성경보다 위에 있다는 주장도 하지 않는다. 단지 가톨릭 전통이 성경과 충돌하지 않거나 혹은 명시적으로든 암시적으로든 성경에 근거한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자유주의 개신교 역시도 그들 나름대로는 성경의 '진짜' 의미를 추구하며, 퀴어 신학 등 외부인의 눈에는 정말 막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신학 조류들도 나름대로는 성경 구절들과 그리스도의 행적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교단들의 차이는 성경 해석의 차이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성경이 A라고 말해도 우리는 B를 믿겠다"고 말하는 교단은 그리스도교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실제론 자기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는 정체성으로 인식하면, 그냥 '복음주의자'라고 불러주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여기엔 대체로 '성공회 고교회주의와 가톨릭 신학, 자유주의 신학 등은 성경과 충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몰려있기에, 누가 자기를 '복음주의자'라고 여긴다면 이런 신학 조류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사람에 따라서는, 여기서 은사주의[2] 와 근본주의 등을 제외하기도 한다. 철저히 미국의 용례에 맞춰서 말하자면, 실질적으론 개신교 교단 중 메인라인 속하지 않는 교단을 싸잡아 말할 때 '복음주의'라 칭한다.
근대의 복음주의 운동
전통적 복음주의 부흥 운동과 신학운동의 뿌리는 18세기 미국에서의 대각성 운동과 영국에서의 감리교 운동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의 회심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교제 기독교 정신에 따른, 엄밀하게 말하면 기독교 인도주의에 따른 사회 정의 실천 등을 강조했다는 특징이 있다.
존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
18세기 영국에서는 감리교 창시자이자 잉글랜드 성공회 사제인 존 웨슬리[3](Reverend John Wesley)가 민중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는 감리교 운동을 하였는데, 감리교 운동(Methodist Movement)은 영국에 큰 사회적 영향을 미쳤다. 당시 영국사회에서는 자본가들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아동노동, 노예제도등의 많은 사회구조악이 있었는데, 존 웨슬리는 기독교인의 사회참여를 강조함으로써 영국사회와 교회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도 신앙을 사회적으로 이해한 존 웨슬리의 신학은 공교회(보편교회) 전통에 따른 예배와 기도, 성서묵상, 성만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기독교의 정통적 복음주의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었으며, 공교회적 사상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렇듯 근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예배와 성례전에 기반을 둔 영성과 신학을 근거로 하여 활발한 사회참여를 함으로써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나, 사회복음주의 등의 활동을 배경으로 하는 신학적 입장도 함께 지녔다.
가브리엘 패커의 분류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의 복음주의 신학자인 가브리엘 패커는 복음주의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4][5] 근본주의: 성서무오설이 ‘신앙적 신실성의 표준이며, 모든 종교적, 세속적 근본주의를 특징짓는 논쟁적이고 분리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근본주의 운동은 일반적으로 비정치적이지만, 우익의 정치적 대의와 연합할 수도 있다. (한국과 미국의 보수적 복음주의가 이에 해당함.) 舊복음주의: 종교적 감성이 강조되는 복음주의.‘개인적인 중생의 체험과 대중적 복음전도 운동을 통한 회심의 표현’이 강조된다. 新복음주의: ‘신앙의 사회적 의의와 변증적 설득력’에 대한 강조.칼 헨리가 여기에 해당함. 정의와 평화 복음주의: 성서와 기독교 전통에 근거한 사회참여와 변혁을 강조하는 진보적 기독교 사상이다. 로널드 사이더, 짐 월리스, 고 대천덕 성공회 사제, 존 스토트 사제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그리스도 교인들의 사회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내세지향적인 신앙, 복음주의 전통에서의 이탈이라고 비평하고 그리스도 신앙의 사회적 실천을 중요하게 여긴다. 은사적 복음주의: 성령에 의한 ‘방언, 치유, 축제적인 예배’등을 강조한다. 에큐메니컬 복음주의: 복음주의가 ‘좀 더 넓은 기독교 공동체와 관련을 맺도록 하는 데’ 관심이 있다. 특별히 중요한 점은 ‘공통된 사회적 관심사에 있어서 주류 교단들과 협력한다.’는 점이다. 세계교회협의회에서 활동한 에큐메니컬 운동가레슬리 뉴비긴 르네 빠딜라가 이에 해당한다.
목창균의 해석
서울신학대학교 목창균 교수는 복음주의의 경향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6] 고전적 복음주의: 종교개혁전통에 충실한 복음주의. 흔히 '죽어가는 교회'라고 편견을 갖고 보기 쉬운 유럽의 개신교회가 고전적 복음주의에 해당한다. 그 근거로 서울신학대학교 이신건 교수는 독일의 개신교 신자들은 성서와 종교개혁 전통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고지식한 신앙생활을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성서와 전통에 근거한 신앙생활보다는 주관적 종교경험에 의존하는 한국의 개신교회를 논박한다.[7] 경건주의적 복음주의: 종교개혁 전통에 경건주의, 청교도운동 그리고 18세기의 대 각성운동의 경험적 강조점을 결합시킨다. 경건주의적 복음주의자는 성령의 변화시키는 능력과 회심 및 거룩한 삶을 강조함으로써 부흥, 사회개혁, 고상한 삶을 촉진한다. 18세기 영국에서 활발하였던 감리교의 복음주의 운동이 이에 해당한다.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진보적 기독교인들과 투쟁하면서 형성된 복음주의. 근본주의자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출현한 신복음주의자가 여기에 속한다. 진보적 복음주의: 현대적 의식을 가지면서도 기독교의 전통에 충실하다. 짐 윌리스, 로널드 사이더처럼 성서의 사회적 정의사상을 실천하는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비판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자인 마이클 호턴은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Made in America?,김재영 옮김,나침반)에서 미국 복음주의를 이렇게 비판한다. 미국 복음주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 복음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주관적 신앙: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근거한 신앙이 아닌 개인의 주관적 경험에 근거한 신앙. 개인주의: 사회에서의 소수자들과 약자들에 대한 교회의 배려가 없음. 종교적 감성만 중요하게 여길 뿐이지, 교리와 신학을 하찮게 여긴다. 소비자 신앙: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의 욕구에 맞는 종교서비스를 제공한다. 현대에 복음주의는 대부분 진화를 비롯한 명백한 과학적 사실들을 인정하는 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이지만, 근본주의에 관계된 일부 교회들과 이에 영향을 받은 일부 한국교회는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고 창조과학 같은 사이비 과학을 지지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만을 나열하자면 현실 부정: 진화와 같은 명백한 현상들을 부정한다. 유사 과학: 제칠일 안식교와 통일교에서 기반한 유사과학인 창조과학을 비롯, 다양한 사이비 과학들을 전파한다. 물론 유신진화론이 보급된 다수의 복음주의 교회는 위의 문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각주
1. "성서 저자가 비록 물질계의 사물에 대해 언급할 때라도 오류가 없다 ... 어떤 사람들은 거룩한 저자들이 사실을 기록하는 데 있어서 역사적 오류나 부정확함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이 경우 좀더 자세히 조사해보면 저자의 이런 약점은 당시의 사회 생활에서 늘 사용하던, 그리고 실제로 통상적인 것으로 고정되어버린 고대인들의 일반적 표현양식과 그들 고유의 설화 구사법에 기인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교황 비오 12세 〈성경의 영감〉)
2. 오순절교회가 제일 강하게 이 은사주의의 영향을 받은 교파이다. 그러나 넓게 생각해서 하느님께서 현재도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방법으로 역사하신다는 주장은 보편교회주의자·복음주의자·자유주의자 할 것 없이 모두 긍정하는 바이다. 물론 은사중지론까지 말하는 정말 깐깐한 칼뱅주의자들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이쪽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쪽이 오순절교회와 같은 은사주의 교단이라 할 수 있다.
3. 잉글랜드 성공회의 성직자이자 신학자다. 감리교 운동을 이끌었고, 잉글랜드 성공회의 사제로서 관점을 유지하며, 잉글랜드 성직자로서 활동했다.
4. G. Fackre, Ecumenical Faith in Evangelical Perspective, Eerdmans, 1993. pp. 22-23
5. 앨리스터 맥그래스 성공회 사제,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한국장로교출판사
6.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7. 이신건 교수의 누리집
자유주의
함창석
1644년 존 밀턴의 《Areopagitica》는 언론의 자유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자유주의(自由主義, 영어: liberalism)는 개인의 인격의 존엄성을 인정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인의 경제적, 사회적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정치적 사상이다. 자유를 최상의 정치·사회적 가치로 삼는 사회철학적 이념이다. 자유주의는 서구의 계몽주의 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용어는 시대와 지역마다,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교회와 왕권이 독점력을 갖고 있던 입법 권력을 시민의 대표자로 구성된 의회에 귀속시키는 운동을 통해 처음 발현되었다. 역사적으로 자유주의는 자유를 보장하는 수단으로서 의회·행정부의 권력 분립을 점진적으로 도입·발전시키면서 민주주의를 채택했고, 권력 분립을 통한 자유의 지속적 신장을 목표로 하는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다만 미국 정치에 있어서 자유주의(liberalism)이라는 용어는 사회자유주의 및 이와 연관된 사상만을 특칭하는 용어로 쓰이는 경우가 많으며[1], 이 경우 고전적 자유주의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라는 표현으로 구분하기도 한다.[2]
특징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강조한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인권, 성문법에 의하지 않고는 자유를 제한받지 않을 법의 지배, 견제와 균형이라는 권력분립을 통한 권력통제,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되는 시장경제 등을 특징으로 한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법에 의한 모든 시민들의 동등한 권리와 기회가 보장되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며 오늘날 민주주의가 도입된 상당한 나라에서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과거의 정부이론에서 핵심이었던 왕권신수설, 세습적 지위, 국교화 된 종교 등의 가정을 부정한다. 기본적 인권을 주창하며 이는 인간의 생명과 자유,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포함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을 기초로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지키려고 사회와 각종 제도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전적 자유주의 입장에 따르면 시장에서의 독과점 상태를 두고 시장에서 해소될 수 있는 것으로 인지하며 완전히 평등하고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경제체제를 목표로 한다. 이러한 경제체제 안에서 추가적인 정부의 간섭을 부정하고 기업가의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개인의 재산권을 강조하며 경제를 자유로운 시장질서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사회적 자유주의 입장에 따르면 적극적 우대 조치, 공공서비스, 대중교육, 고율의 누진세제 등으로 정부가 시장에 상당한 개입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정부가 실업자에게는 실업수당을, 무주거자들에게는 주택을, 아픈 사람들에게는 의료적 혜택을 주는 방식 등으로 충분한 복지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북유럽 복지국가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하였다.[3] 한편 정부실패와 복지국가가 갖는 큰 정부로서의 비효율성을 비판하는 신자유주의 입장에 따르면 고전적 자유주의 입장과는 달리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시장에 더 큰 역할을 맡길 것을 주장한다. 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맥락 속에서 더 널리 사용되는데, 이 단어의 의미상 정부의 권한은 일부 제한되고 시민의 권리는 법적으로 분명히 규정하는 민주주의를 가리킨다. 이것은 거의 대부분 서구의 민주주의에 적용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 정당에만 관계를 맺고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거의 대부분 서구의 민주주의에 적용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 정당으로부터 폭넓게 확산되어 가는 개념이다.
자유주의의 구분
자유주의 영역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해왔으며, 자유주의들마다 초점을 맞추는 영역에 차이가 있어 왔다.
포괄적 자유주의의 구분
정치적 자유주의는 개인이 사회의 기초가 된다는 사상으로 사회제도는 개인들을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고 규정된다. 1215년 마그나 카르타는 국왕의 권리보다도 개인의 자유가 우선한다고 선언한 문서로, 정치적 자유주의가 발현된 대표적 사례이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시민들이 직접 만들고 동의한 법을 바탕으로 한 사회계약을 강조한다. 이는 개인들에게 최선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아는 자는 바로 개인 그 자신이라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성별, 인종, 경제적 지위와 무관하게 모든 시민에게 참정권을 주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법의 지배와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적극 지지, 옹호하는 입장이다.
문화적 자유주의는 자신의 양심과 생활방식에 따라 살아가는 개인의 권리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성적인 자유, 종교의 자유, 사상의 자유, 정부로부터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을 자유 등이 그 예이다. 문화적 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문학, 예술, 학문, 도박, 성, 성매매, 동성애, 낙태, 피임, 술, 마약, 안락사, 담배 등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반대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다음과 같이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 - 개인이든 집단이든 -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원복 교수는 먼나라 이웃나라 네덜란드 이야기에서 네덜란드를 문화적 자유주의의 예로 들었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개인이 갖는 재산권과 계약의 자유를 강조한다. 무역의 장벽을 철폐하고 정부의 보조금 지원과 독점사업이 인정되지 않는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지지한다.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에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이들은 독점과 카르텔의 형성 원인은 정부활동에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자유경쟁의 결과로 인한 결과의 불평등을 인정한다. 오늘날 세계화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한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미래통합당 등 보수 정당에서 나타난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19세기 말에 생겨난 사상으로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사회주의의 일부 성과를 수용하여 정부가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권한을 사용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존 듀이나 모티머 아들러 등의 설명에 의하면, 개인은 사회의 근본이므로 모든 개인은 교육, 경제적 기회, 거시적 위험으로부터의 보호와 같은 기본적인 인프라를 제공받아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보장을 개인의 권리로 파악하는 것으로, 고전적 자유주의의 소극적 자유와 구별하여 적극적 자유로 파악한다. 학교,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은 정부의 세금에 의하여 지원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은 최저임금제, 반독점법 등과 같이, 시장에서의 경쟁 완화를 조금 인정한다. 또한 정부가 기본적인 복지를 시민들에게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주창한다.[4]대한민국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등 민주당계 정당에서 나타난다.
신학적 자유주의로 자유주의 신학(自由主義神學, liberal theology, liberal christianity)은 현대의 지식, 과학, 윤리학을 통해 기독교를 해석하는 신학운동을 의미한다. 18세기 계몽주의, 경건주의 그리고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등장하였다. 처음에는 무신론적 합리주의에 대한 대안이자, 성경과 전승 등 이성 외적인 권위에 기반한 정통 신학에 대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졌다.[5][6][7] 자유주의 신학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를 바탕으로 나타났다. 성경을 인간의 이성, 감정, 경험으로 이해하였고, 또한 도덕적이며,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관점에서 신학을 이해하였다. 진보주의, 역사주의, 인본주의를 강조하며,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을 이성과 자연의 원리, 과학, 심리학 등으로 해석하려고 하였다.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다윈주의와 성서비평학, 사회복음주의를 수용한 신학으로 널리 알려졌다.[8] 자유주의 신학은 독일의 슐라이에르마허에 의해서 시작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의 야만성이 드러나면서 의문이 제기되었고 결국 1930년대에 카를 바르트의 주도 하에 루돌프 불트만, 에밀 브루너, 폴 틸리히, 에두아르트 트루나이젠 등과 함께 신정통주의가 등장하고, 1960년대에 해방 신학이 등장함에 따라 약화되었다. 사신신학이 여기 포함된다.[9] 정치적 자유주의와는 무관하며, 진보 기독교와도 구분될 필요가 있다. 기독교 모더니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10]
자유주의의 한계와 비판
학계에서 지적하는 자유주의의 가장 큰 단점은, 자유주의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과 인간 사회는 본질적으로 비자유 사회라는 점이다.[11] 먼저 자유주의는 더 완전해질수록 자유주의의 모순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공정성을 증진하고, 문화와 신념의 다원성을 옹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자유를 확대하겠다던 정치철학이 실제로는 자유경제체제와 능력주의의 결과로 불평등과 속박을 낳고, 여러 문화와 신념이 비판을 받으면서 균일성과 균질성을 강요하고, 문화적 신념적 터부와 책임감이 사라지면서 물질적 · 정신적 퇴폐를 조장하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의 힘이 비대해지면서 자유를 침해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또한 모두가 평등하게 자유롭고 각자의 이익과 행복을 추구해야한다고 한 결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발생하여 오히려 손해와 불행이 발생하는 모순이 생겨난다.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추구한 결과, 능력주의의 심화로 인한 부와 권력의 세습이 나타나 과거 봉건영주-농노의 관계와 다름없는 사회로 회귀하고 만다. 심지어 독재자는 자신의 정치적 자유를 극단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나머지 구성원들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 존재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실패를 예견한 패트릭 J. 드닌은 이런 자유주의의 모순에 대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스스로가 자유를 어느 정도 제약할 수 있어야만 모순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각주
1. Pease, Donald E.; Wiegman, Robyn (eds.) (2002). The Futures of American Studies. Duke University Press. p. 518.
2. Tomasi, John Free Market Fairness, PUP, 2012
3. 박동천《정치학특강》52쪽
4. 박동천《정치학특강》모티브북, 53쪽
5. Dorrien (2001, xiii, xxiii쪽): "Liberal Christian theology is a tradition that derives from the late-eighteenth- and early-nineteenth-century Protestant attempt to reconceptualize the meaning of traditional Christian teaching in the light of modern knowledge and modern ethical values. It is not revolutionary but reformist in spirit and substance. Fundamentally it is the idea of a genuine Christianity not based on external authority. Liberal theology seeks to reinterpret the symbols of traditional Christianity in a way that creates a progressive religious alternative to atheistic rationalism and to theologies based on external authority."
6. "Theological Liberalism": "Theological liberalism, a form of religious thought that establishes religious inquiry on the basis of a norm other than the authority of tradition. It was an important influence in Protestantism from about the mid-17th century through the 1920s."
7. McGrath (2013, 196쪽): "Liberalism’s program required a significant degree of flexibility in relation to traditional Christian theology. Its leading writers argued that reconstruction of belief was essential if Christianity were to remain a serious intellectual option in the modern world. For this reason, they demanded a degree of freedom in relation to the doctrinal inheritance of Christianity on the one hand, and traditional methods of biblical interpretation on the other. Where traditional ways of interpreting Scripture, or traditional beliefs, seemed to be compromised by developments in human knowledge, it was imperative that they should be discarded or reinterpreted to bring them into line with what was now known about the world."
8. Dorrien 2001, xviii쪽.
9. Dorrien 2001, xv쪽.
10. Gurrentz, Benjamin T. “Christian Modernism”. 《thearda.com》. Association of Religion Data Archives. 2019년 7월 3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1.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에게 복종해야 함을 배우고, 사회화는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이 자유를 제약당하는 것의 다른 말'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로, 해당 지역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아니면 써먹기가 힘들다.
로잔대회와 WCC
함창석
자유주의와 세속화에 맞서 복음주의 선교 위해 시작/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 목표/ 복음 전파와 사회적 책임 통합하는 총체적 선교 제시/ 미전도종족 전도와 비즈니스 선교 등 패러다임 전환도/ 마이클 오 총재 “수천 명 지도자 모아 협력·행동할 것”/ 이재훈 목사 “로잔운동에 한국교회 동참, 시대적 소명”(2024년 9월 인천 송도컨벤시아서… 조직위원장은 이재훈 목사)
제4차 로잔대회
세계 복음화를 위한 로잔대회 50주년을 기념한 제4차 로잔대회가 2024년 9월 한국에서 개최된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제3차 대회가 개최된 지 14년 만이다. 국제로잔위원회는 4일 인천 온누리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발표했다. 로잔운동은 1960년대 자유주의 신학이 지배하는 서구사회의 세속화로 인해 서구 기독교가 쇠퇴하고 선교의 위기에 직면하던 시기에 태동했다. 영국과 미국의 복음주의자인 존 스토트 목사와 빌리 그래함 목사는 복음주의 선교의 동력을 찾고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을 재발견하기 위해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대회를 개최했다.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 로잔운동은 이를 위해 지구촌의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성과 유일성 중심으로 교제하고 기도하며 당면한 선교의 의제들을 발굴해, 성경적 기독교와 총체적 복음을 목회와 선교현장에 적용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의 제2차 대회와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의 제3차 대회를 통해 로잔의 비전과 신학은 더 견고히 구축됐고, 로잔언약, 마닐라 선언문, 케이프타운 서약이라는 로잔 문서들을 통해 복음 전파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통합하는 총체적 선교가 제시됐다. 로잔운동 총재이자 CEO인 마이클 오는 인천 온누리교회에서 2일부터 진행된 아시아 지역 리더들과의 모임 마지막 날인 4일, 한국에서의 대회 개최 계획을 발표했다. 제4차 대회 조직위원장은 한국로잔위원회 의장 이재훈 목사(온누리교회)가 맡았다. 날짜는 2024년 9월 22~29일이며 장소는 인천 송도컨벤시아다. 한국로잔 이사회는 이재훈 목사 외에 김정석 목사(광림교회), 최성은 목사(지구촌교회), 박상은 장로(안양샘병원), 최형근 교수(서울신대),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한기채 목사(중앙성결교회), 이규현 목사(수영로교회), 한철호 목사(미션파트너스), 정대서 장로(온누리교회), 전재중 변호사(법무법인 소명, 감사), 조용중 목사(KWMA), 황성수 목사(한사랑교회, 감사)로 구성돼 있다. 마이클 오 총재는 “세계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모든 민족과 장소에서 제자 삼는 교회들을 세우며, 모든 교회와 사회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리더를 세우고, 사회 모든 영역에 하나님 나라의 영향을 보기 위한 비전을 성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 세계 교회가 연합과 증거를 함께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에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제4차 로잔대회는 전 세계 모든 민족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천 명의 핵심 선교 지도자들을 모을 것”이라며 “여기에는 다양한 맥락 가운데 전 세계 교회와 기관들, 하나님의 선교를 하는 남성들과 여성들이 포함될 것이다. 다양한 경청과 모임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위해 함께 협력하여 행동할 것을 전 세계 교회에 요청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훈 목사는 “세계교회와 흐름에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 온 한국교회는 세계교회가 직면한 종교다원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의 위기에 동일하게 직면해 있다”며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로잔운동에 한국교회가 함께 참여하게 되는 것은 시대적 소명이다. 교회가 복음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선교적 소명을 다하게 되는 것을 추구하는 로잔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교회와 사역자들을 환영한다.”고 전했다. 이번 대회는 한국에서 개최되지만 아시아가 공동으로 개최한다는 의미도 크다. 이재훈 목사는 “한국에서의 개최는 한국사회 혹은 교회의 이슈 때문만은 아니다. 시대적으로 모여야 할 상황이고, 서로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측면에서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며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의 하나됨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로잔운동은 선언문 발표로 끝나지 않고 항상 액션 플랜을 발표하며, 그로 인해 미전도종족 전도, 비즈니스 애즈 미션(BAM) 등 여러 가지 생각지 못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났다”며 “한국교회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시각, 목회와 선교의 새로운 물꼬를 트는 흐름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철호 선교사는 제2차 로잔 목회자 콘퍼런스에서 “로잔운동의 역사는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사대회로 거슬러 올라가고, 에든버러는 19세기 세계복음화 소망을 가진 이들의 연합(1846년 WEA)에 대한 열망에 의해 잉태됐다”며 “오늘날 우리가 왜 ‘다시 로잔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이 시대 직면한 과제에 대한 해답이 복음에 있음을 증명해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전했다.(로잔운동 50주년 기념한 제4차 로잔대회, 한국서 열린다, 송경호 기자, 7twins@naver.com,)
에큐메니칼 계열
국제선교협의회 IMC(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1921)
-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1927) : 세계 교회를 연합하기 위한 목적
- 삶과 사역(Life and Work) :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관심을 격려
세계교회협의회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암스테르담, 1948) - 348교단, 5억명
1961년 IMC 통합
역대 WCC 대회와 주제들........................
1차 WCC(1948년 네델란드 암스텔담) -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
2차 WCC(1954년 미국 에반스톤) - 그리스도는 세계의 평화
3차 WCC(1961년 인도 뉴델리) -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빛
4차 WCC(1968년 스웨덴 웁살라) -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5차 WCC(1975년 케냐 나이로비) - 오늘의 구원에 관한 좋은 소식
6차 WCC(1983년 캐나다 벤쿠버) -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생명
7차 WCC(1991년 호주 캔바라) -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
8차 WCC(1998년 짐바브웨 하라레) - 하나님께 돌아오라, 희망 중에 기뻐하라
9차 WCC(2006년 브라질 포르트 알레그레) - 하나님 당신의 은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
10차 WCC(2013년 한국, 부산) -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의 길로 인도하소서
11차 WCC(2021년 예정, 독일, 카를수르에) -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을 화해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