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낭비의 책임이 한 사람 때문?(완전한 원인-결과분석의 한계)

이재신
  • 2104
  • 2012-07-20 09:00:00
4년 낭비의 책임이 한 사람 때문?(완전한 원인-결과분석의 한계)

장 아무개 목사님이 종종 현 감리교 사태를 두고 설명하시는 것을 보면 쉽게 아무개 때문이라고 원망하는 것을 접한다. (요 밑의 양 기모 목사님의 860번 글의 댓글에서도)
하지만 그건 아니다.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일부>와 <전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니 오해없어야 함)
거기엔 감리교의 총체적 무능과 태만, 불의한 사슬이 연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대세이리라.

이스라엘은 모세라고 하는 출중한 지도자를 두고도 그렇게 오랫동안 광야에서 방황해야 했다.
우상 숭배와 불신, 원망과 불평 등 복합적인 많은 잘못들이 이스라엘의 광야체류를 부채질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바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변화에 대해서 한 번에 일어난 변화로 볼 것이냐 아니면 나름의 긴 고뇌의 과정을 거쳐서 일어난 변화이냐를 두고 설왕설래 할 수 있다.
그러나 심리적인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바울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초대교회의 많은 사건들을 보고서 나름의 심경적인 변화를 거쳤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313년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공인도 마찬가지다.
형식상으로는 312년 가을 밀비안 다리에서 막센티우스가 마술력에 의존해서 공격해 온다는 소문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정오의 태양에 십자가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 때 “이 표지로 정복하라”\\'(In hoc signo vinces; Conquer by this)는 사인을 보았다고.
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313년 밀란에서 기독교의 공인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른다.
종종 어떤 중요한 사건에는 기적같은 설화들이 있게 마련이니 그 신빙성을 의심받는 것이다.
당시의 교회가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어도 이미 대세로 자리를 잡았기에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루터의 개혁은 어떤가?
루터를 가리켜서 “성냥불을 그어 댄 사람”이라고 한다.
당시 개혁적인 분위기가 넓게 퍼져 있었으므로 무심코 던진 성냥불에 온 유럽이 타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주 개혁을 외치는 대자보-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붙인 95개조의 반박문-를 붙였는데, 유독 그 때의 반응이 강하게 일어나게 됨)

흔히 무슨 일이 나면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가를 두고 주먹구구식으로 지목해서 그를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할 때가 많다.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마녀 사냥이고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경제학자 막스 베버는 <하나의 결과>는 <수많은 원인>으로 생겨난다고 했다.
예를 들면 a b c d...의 원인으로 하나의 일(결과)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중에 중요한 몇 가지를 뽑아서 설명한다는 것.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인(가까운 원인)과 원인(먼 원인)을 따져서 보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루돌프 불트만은 <학문과 실존>의 앞쪽에서 다의성과 다면성에 대해서 설명한다.
같은 주먹을 두고도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 설명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시각으로 어떤 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결론은 천차만별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씀.

장황하게 흘렀지만 결론은 이렇다.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으며 그래서 모두가 대오각성하고 니느웨 백성들같이 재에 앉아 울며불며 통회하고 기도해야 하리라.
애들같이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한다면 일의 수습보다는 또 다른 불화의 원인만을 제공하는 꼴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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