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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중심잡기가 힘든일이지만~~
관리자
- 1906
- 2012-07-21 20:08:28
중용의 겉모습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우유부단과는 다릅니다
중용은 상황에 맞는 길이고
우유부단은 상황을 모르고 결정하지 못하는 망설임입니다
...
우유부단이 중용이 될 수 있지도 않습니까?
우유부단은 중용이 될 수가 없습니다
중용은 상황을 알고 상황에 조화로운 길이고
우유부단은 상황을 모르고 결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용과 우유부단의 마지노선은 무엇일까요?
상황을 알고, 모르는 차이입니다
중용과 우유부단은 겉보기에는 비슷할 수 있어도,
태도에서 결정적으로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중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택된 행동입니다.
\"나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 사이를 선택하겠어\"라고 그 사람이 주체적으로 행동한 것입니다.
반면에 우유부단은 \\'선택을 미루는 행동\\'입니다.
\"나는 이것도 선택하지 못하겠고 저것도 선택하지 못하겠어\"라고 자신의 행동을 계속해서 연기하는 것입니다.
결과가 말해줍니다.
중용이란 어떤 행동이나 생각을 함에 있어서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즉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적절한 수준에서
양쪽의 장점만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다이어트를 할 때에도
\"나는 음식을 아예 안 먹겠다.\"라고 하거나
\"나는 음식을 지금처럼 먹겠다.\"라고 할 때,
\"나는 음식을 지금보다 조금 먹겠다.\"는 선에서
타협을 보면 중용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결정을 할때
흑이냐 백이냐를 선포하는 시점이라면
양쪽을 잘 설득해서 중간점을 찾는것이 중용이지요.
물론 이것은 예를 든 것이고,
중용은 도덕적인 선과 관련되어 자주 사용됩니다.
이처럼 중용을 지켰을 때
그것이 아름답다고 하여
중용의 미학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욕망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자칫 욕망이 지나쳐
자신의 그릇에 담아내지 못할 정도의
과욕을 부리다가 다툼이 일어나고,
결국 화를 부르는 것입니다.
문득, 어떤 일이든
극과 극을 피하고 중용의 길을 지켜나가는 것이
무리 없이 모두가 편안하게 살아가는 길임을 일러주신
옛 성현들의 말이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용에서 \\'중(中)\\'이라함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도리에 알맞은 것을 말하고,
평상적이고 변함없이 바른 것을 \\'용(庸)\\'이라 합니다.
즉, 인간 행위의 가장 참되고 불변하는 원리를 말합니다.
이는 동서양이 같은 이치입니다.
플라톤은 절제·용기·지혜·정의를
인간행위의 네 가지 덕으로 꼽고 있는데
이 덕 또한 균형과 조화라는 사상이 바탕되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중요한 덕목 역시
올바른 이성의 명령으로 과불급이 없는
중도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고 총명하다 해도 하늘의 섭리를 버릴수는 없는 것이지요.
\\'順天者(순천자)는 存(존)하고,
逆天者(역천자)는 亡(망)하니라\\' 했습니다.
이는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사람은 살고,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사람은 망한다는 말입니다.
잡다한 세상사 잠시 뒤로하고 하늘을 한번 올려다봅시다.
그분이 뭐라 말씀하실지~~~
* 첨부된 사진은 서핑중 다운 받은 것입니다.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