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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율법과 증거"
관리자
- 1946
- 2012-07-24 09:00:00
로마서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오랜 장마가 지루하게 퍼부을 때, 기다려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빛나는 태양입니다. 구름이 한 점도 없이 대지위에 가득하게 쏟아지는 태양열이 그렇게도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오랜만에 태양열이 대지위에 가득히 쏟아지면 옷가지와 가재도구들을 밖에다 널어놓고 방문마다 열어서 태양열이 실어오는 바람을 쏘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랜 습기와 냄새들을 날려 보내는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로마서 3:21절은, 마치 지루하던 율법의 장마 비에 오랜만에 하나님의 의로운 태양이 떠오르듯이, 우리의 가슴 가득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자! 우리 모두 가슴을 활짝 열고 심호흡을 하면서 하나님의 의를 가득하게 우리의 마음과 가슴속에 채우도록 하십시다.
이제는
이 말은 시간적인 개념의 말이 아니라, 논리적인 개념의 말입니다.
율법이 사람을 의롭다고 하지 못하고 죄를 알게 해주는 것일 뿐인데, 이제는 율법과 선지자들의 증거를 받은 의롭고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의가 나타났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위로도 구원받지 못하고 죄 씻음을 받을 길이 없으며, 율법으로도 불가능한 의와 구원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희생과 죽음이 구원을 이룩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도리는 결코 멀리 있는 것도 아니요, 우리 중에 지금도 역사하시는 능력인데, 다른 공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물과 보혈을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음으로 이룩하게 된 것입니다.
오직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의 것이나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있으며 우리와 너무도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율법 외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자들이나 율법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율법이 사람을 경건하게하고 구원을 이루는 것으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주위에서도 많은 유대인들은 율법적 행위에만 강조하였고,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면 모두 정죄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이나 인간 윤리가 주는 어떤 법칙이거나 율법을 떠나서는 구원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율법의 의가 아니고서는 그 어느 것이든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인간들의 어떤 의든지 율법과만 연관을 지어야 했습니다.
율법적인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바울도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율법적인 것에만 치우쳐 있었습니다.
예를 든다고 하면, 할례를 받는 일에서부터 구원을 받는 모든 일에 율법적인 행위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믿음을 가진 뒤에는, 그의 그 같은 생각과 주장들은 모두 완전히 바뀌어졌습니다.
율법주의로 살았던 그는,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주장하고 연관시키는 사람으로 바뀌어 진 것입니다.
율법주의로 살았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을 몽학 선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라는 것입니다.
율법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모든 유대인들이 이해하듯이 모세의 5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비록 그것들이 십계명이나 율법으로 불리어지는 교훈들 속에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도 바울은 모세의 책들 가운데서도 이러한 교훈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의 생활에서 벗어나, 광야를 지날 때의 상태는 하나님에 대한 것은 관념적인 신앙뿐이었고, 실제의 신앙 상태에서는 전혀 신앙적인 모습의 삶이란 찾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놓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신앙의 첫 단계인 율법을 주심으로 율법으로 신앙의 접근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의 준수를 통하여 신앙적인 초보단계에 이르게 되어 성숙해짐으로써, 더 적극적이고 성숙한 신앙으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성숙한 신앙으로 향하게 하는 율법의 몽학 선생일 뿐이지 구원으로 인도하는 능력이나 길이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인간들은 흔히 의라는 것을, 일종의 율법과 연관되어진 것으로 “율법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율법이 죄인들에게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란, “죄의 인식” 다시 말해서 모든 육체, 모든 인간들이 저주를 받아 올 데 갈 데가 없다는 확신뿐입니다.
하나님의 한 의
하나님의 한 의라고 하는 것은, 인간을 의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말합니다. 죄인들에게 돌아가야 할 형벌을 면제하고 은혜를 베푸시려는 계획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의를 위한 인간의 계획 즉 그 자신의 행위를 통하여 의롭게 되려는 인간의 계획과 대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행하신 방법이 복음 안에서 계시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목적은, 인간을 마치 의로운 자들처럼 취급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성취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믿음을 통하여 칭의에 도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계획과 하나님의 경륜은 서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성경은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믿음에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면, 벌써 하나님의 의는 진노도 율법도 아니고, 이 새로운 의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라는 의미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구주라고 하는 뜻이기에, 예수님은 구원의 주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의 참된 의미를 알고 살거든, 주 예수가 구원의 주시라는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구주시라는 것을 믿는 신앙으로 말미암아 얻어진 하나님의 의는 벌써 하나님의 의라고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선지자들에게
성경에는 많은 선지자들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지자들이란, 일반적으로 모세 5경을 제외한 나머지의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은 구약성경의 전체를 포함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선지자 속에 복음이 예언되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모세의 5경을 비롯하여 이사야, 예레미야, 등등 모든 책에는, 하나님의 예언들로 가득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에는 이미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의가 아닙니다. 행위의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의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의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신뢰의 조건으로 주는 의는,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에 새로운 원리로써 이 세상에 임한 것입니다.
증거를 받은 것이라
여기서 주는 증거란 새로운 교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르침 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증거들을 특히 유대인들과 관련하여 관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새로운 사실을 선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거룩한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충분한 사실들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도 이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들을 알았고 믿었습니다. 다만 그 믿음의 대상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부터 바울은 구약성경이 주시는 예언들이 누구를 위한 것이고, 누구를 위하는 것인지를 바로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 증거들을 분명하게알고 깨달았을 때에, 평생을 결혼도 하지 않고 죽음의 위기에서나 많은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와 박해 속에서도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는데 생명을 걸고 외쳤습니다.
많은 학문과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자비량으로 천막을 만들며 고난과 수고를 하면서 3차에 이르러 복음을 증거 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바울과 같이 분명하고도 확실한 복음의 증거를 믿고 담대하게 증거 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