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증과 지성과 사랑(도스토예프스키는 왜 지성을 경멸했는가)

이재신
  • 1751
  • 2012-07-26 09:00:00
관음증과 지성과 영성(도스토예프스키는 왜 지성을 경멸했는가)

관음증이란 무엇을 궁금히 여겨 남의 동태를 살피는 행위(성 도착증 중 하나)라고 하겠다.
심심찮게 뉴스에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나는 것을 본다.
화장실에서 남의 볼일 보는 것을 촬영하다가 걸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어디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결정된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가?
기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가?
세상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가?
성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가?
법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가?
은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가?

용호상박의 법리 싸움과 정치 싸움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감리회는 지금 정상적인가 하는 물음을 묻지 앟을 수 없다.
왜 선교정책을 두고 경쟁할 수 없으며, 기도의 생활을 두고 경쟁할 수 없으며, 희생을 두고 그 범위와 근거를 정하기 위해 경쟁할 수 없을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지성보다 감정과 사랑에 의해서 유지되는 세상을 꿈꿨다고 한다.
저 말년의 위대한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아버지와 아들들의 관계를 통해서 지성의 한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모든 경쟁이 끝난 후(아버지의 살해 후) 맏아들 드미트리가 막내 아들 알료샤(열 아홉 살 신학생)에게 한 고백은 지성과 사랑(용서)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잘못을 용서해 주는 그곳이 천국인 줄로 안다”고(사실 아버지를 죽인 살해범은 사생아인 스메르자코프)
아주 오래전에 하도 재밌어서 단 며칠에 다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새로 구입한 상하권을 언제 다시 읽을까 하고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이다)
특히 카테리나라는 작부를 두고 아버지(표도르)와 아들(드미트리)의 불꽃 경쟁은 인간의 기저에 있는 더러운 탐욕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탐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왜 도스토예프스키는 지성을 경멸했을까?
지성(Intelligence)은 포장과 달리 내용은 아주 교활하다.
지성은 치사하고 유치한 생존경쟁이다.
법리 싸움은 사랑의 경쟁이 아닌 지성의 범주 안에서 벌이는 힘겨루기이다.
그러니 이현령 비현령인 것이다.
당연히 끝없는 심연인 것을 두고 아무리 논쟁해도 끝은 없고 곤하다.?
법의 생리구조가 그렇게 되어 먹었다.
법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사람이 해석하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법의 해석과 적용을 두고 이제 끝나는가 싶더니 또 다시 불꽃을 태우는가 보다.
그렇게 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이번이 마지막 불꽃놀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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