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은 희년의 원칙에 위배된다. (불공정 거래?)

이재신
  • 1819
  • 2012-07-28 03:27:46
세습은 희년의 원칙에 위배된다. (불공정 거래?)

칠 일째 되는 날은 안식일이요, 칠 년째 되는 해는 안식년이요, 오십 년째 되는 해는 희년이다.
안식일에는 모든 일을 쉰다.
주인이 쉬니 종도 가축도 함께 쉰다
안식년에는 토지도 쉰다.
자연으로 난 것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가 먹는다.
희년에는 모든 사람에게 자유가 주어진다.
모든 속박에서 자유한다는 뜻이다.
돈 없어서 팔려온 노예를 풀어주고 빚은 면제해 준다.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사회 평등법이며 경제원칙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원점에서부터 뭔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회는 그야말로 꿈같은 사회가 아닐까?
그런 사회에서 무슨 불평과 원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적어도 시간이 지나면 동등해진다는 여유는 오늘의 어떤 고난이라도 능히 이기게 하는 최고의 에너지로 작용할 것이다.
누구든지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한다면 무슨 불만이나 불평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출발선이 다르다면 문제가 생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빨리 뛴다 하더라도 따라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명시하여 못 박아 놓은 것이다.

세습은 바로 이 점에서 불공정한 거래이고 부당한 거래이다.
교회는 세상에서 말하는 공정을 넘어서도록 가르치는 곳이다.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주고, 왼 뺨을 때리면 오른 뺨도 대주도록 가르치는 교육장소인 것이다.
세l상에 그런 희생의 원칙을 가르치는 곳이 교회 말고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헌데 그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정면으로 배반하고 나선다면 안 될 일이다.

중국을 가리켜서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라고 한다.
사실 중국은 아직도 형식적으로는 공산주의다.
하지만 실상 공산주의는 말뿐이지 부정과 부패, 불편과 부당(자본주의의 병폐들)이 온 사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등소평의 개혁 개방 슬로건 가운데 “검은 고양이든 휜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경제제일의 원칙이 발전에는 기여했겠지만 분배에는 실패한 것이 아닐까?

국가는 그나마 강력한 정책을 통해서 나름 법을 만들고. 제도를 고치고, 경제 운용의 묘를 살려서 정책을 쓰기도 하고, 완급을 조절하기도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국민의 불평등을 해소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교회는 국가 권력 같은 강제성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세상보다 더한 불공평과 불합리가 상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희생의 모범을 보이고 그 원칙을 준행할 때 세상은 교회를 필요한 존재로 인식할 것이다.
허나 그 반대라면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조차 심각한 분열과 경쟁으로 인해 오늘의 이전투구를 만들어 내는 흉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약육강식이 성행하고 적자생존의 살벌함이 지배하는 집단이 교회라면 사람들이 그런 교회를 어떻게 보겠는가?
아무리 영혼구원이라고 하는 대의명분을 가졌다 해도 그 자신 평화와 안식을 생산?하지 못하는 공동체라면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공멸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공생의 길로 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길목에서 세습이라고 하는 교회의 기업화 내지 사유화의 암초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걸림돌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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