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후회 - 선관위원장을 생각한다

이경남
  • 2114
  • 2012-08-03 09:00:00
우리 나라 말에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관공서나 기업에서 사람 쓰는 일의 중요함을 가르치는 말이다.
이 말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듯 인사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정작 우리에게 사람 보는 눈이 없어 늘 실패한다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하나님도 실패하고 예수님도 실패하는게 인사이다.
내가 사울을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분명 자신이 택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변절을 예축하지 못하였고 결국 자기의 결정을 후회하며 철회한 것이 하나님이셨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이다.
열두 제자를 택하실 때 밤새 기도하시며 신중하게 택하신다.
그러나 그 중에서 유다같은 배신자가 나오고 만다.

동일한 일이 지금도 반복된다.
4년전 감독회장 문제로 혼란에  빠진 감리교가 총회 특별재판 위원회를 가동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자격이 안되는 이에게 자격을 부여한 선관위의 결정에 대하여 판결해 달라는 요구 때문이었다.
그 때 신 감독회장은 이 문제를 다룰 위원장을 선발하였는데 이것이 인사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 우리 지방의 목회자들은 유럽의 종교 사적지 여행 중이었는데 지방의 전직 감독이 감독회장의 부탁을 받고 이 일을 맡는다.
아마 재판을 통해서 장정 법규 상 부자격한 이에게 자격을 부여한 일이 잘못이라는....
굳이 사람이 아까우면 선거법 개졍을 통해 기회를 주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을 내렸다면 자격 시비로 불거진 문제는 가라 앉으며 감리교는 쉬이 정상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태는 그렇게 풀려가지 않는다.

선관위의 결정이 잘못이라는 이들이 7명 괞챦다는 이들이 4명이었다.
특별재판위원회의 결정이 나려면 2/3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한 사람이 부족한 형편이었다.
아직 의견 피력을 하지 않는 이는 재판 위원장 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고 다음부터 잘 합시다.....

결국 판결은 8:4가 아니라 7:5가 되었고 부적합한 자격자에게 자격을 부여한 선관위의 판결은 면죄부를 받고 살아나게 되었다.
아마 신 감독회장이 멀리 해외에 나가있는 이에게 전화를 걸어 이 직임을 부탁한 것은 그가 이 일을 공정히 처리할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정 반대였고 그로 말미암아 감리교는 세상 법정으로 나가며 깊은 나락에 빠진다.
사람 하나 잘못보고 쓴 댓가가 너무 큰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또 반복되고 있다.
지난 총회를 통해 행정을 복원한 감리교는 교리와 장정에 따라 감독회장 선거를 시작하며 이를 주관할 선관위원장을 세운다.
어느 편에서 편파적으로 일할 사람이 아니라 법에 따라 공정하게 일할 사람을 찾겠다는 것이 임시 감독회장의 말이었다.
그리고 세운 이가 감신도 아니요 목원도 아닌 협성이요 전 충북 연회 감독인 김모 목사이다.
그런데 일이 참 우습게 되어 간다.
부담금 납입 기한의 문제를 법규대로 적용하여 하자가 있는 이들을 거부한 것....이해 할수 있는 일이다.
미안하고 안타깝더라도 법을 업격하게 집행해야 법의 권위를 지키고 혼란을 막을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현직 감독들이 자기 직무를 포기하고 회장 자리를 탐하는걸 막은 것도 충분히 수긍이 간다.
지난 총선에서 시도의원직을 내놓고 국회의원 선거에 츌마한 자치 단체 의원들의 무책임한 행태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심판을 받은 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감리교 선관위는 다른 사안에 대하여도 이런 정직성과 엄격함을 지켜줘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정작 가장 핵심적인 문제에 대하여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한다.
교회법과 사회법에 의하여 처벌 받은 전력이 없는 이라는 감독 후보 자격에 관한 법규에 대해  실효된 형은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편파적인 입장으로 특정인에게  다시금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아니 그렇다면 부담금 납입의 기한을 문제 삼아 아까운 사람들의 자격을 재한하던 권세나 현 직무를 내 팽개치고 더 큰 권력을 구하는 현직 감독의 출마를 막던 정의로움은 어디로 간 것인가?
결국 이 모든 것이  문제의  특정인을 향한 충성이란 말인가?
낮짝이 두꺼워 부끄러운 일을 해도 부끄러워할줄 모르는 것을 후안무치라고 하는데 후안무치도 이런 후안무치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사람을 선관위원장으로 세운 것은 지난번 특별 재판 위원장의 경우 처럼 무분별한  인사의 또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사울로 인해 당신의 인사에 대해 뼈져린 경험을 한 하나님이 후임자를 택하면서는 매우 현명해 지신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 보느니라....
학습 효과를 톡톡히 보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학연과 이익의 줄어 얽혀 어리석기 그지없다.

선관위가 저지르는 이런 불법은 결국 위원장의 책임인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반복하는 집단과 그 책임자는 도대체 어떤 수준의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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