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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양 목사님과 박운양 전도사의 관계에 대한 해명
관리자
- 2516
- 2012-08-08 23:50:48
2. 저는 박경양 목사님을 알고 있습니다. 종종 감신이나 서대문 지역에 뵈면,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아드님이 감신재학시절 총학임원이였을 때, 종종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3. 감신 종교철학과 이경재 교수같은 분은 바로 이 박경양 목사님과 같은 역할을 저에게 기대하는 듯한 의견을 피력하시기도 했습니다.
4.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텔레비전에서 적지않게 <참교육학부모회?>등등의 경력을 제시하시고 토론 프로그램 패널로 참가하시는 모습을 지켜 보았습니다.
5. 그러나, 여기까지가 제가 박경양 목사 이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단 한번도 차한 잔 식사 한번 한적이 없으며, 제가 박씨 성을 가지고 있지만, 드문 성씨에 해당되어서, 먼 친척 관계도 아닐 듯 합니다. 저는 박혁거세 66대손이라고 하는 데, 밀양박씨 충주박씩 해서 엮으려면 연결은 되겠지만, 정리해서 말쓰드리자면 저와 일상적인 소통이 연결된 분이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6. 이제부터는 저 자신의 개인적인 평가를 박경양 목사 이분을 향해서 언급하고자 합니다. 만일에 노동귀족이 존재해서 대한민국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심연을 조장하고, 결국은 계속해서 정규직이 수혜를 받고 있는 위치에 있다면, 이것은 노동계에 해당되는 입장이겠지만, 저는 시민운동계에도 이런 접근이 가능하다고 본다면, 박경양 목사님은 고통을 초래하는 공익적 사안의 문제를 확성기를 틀면서 터뜨리고 볼륨을 높이는 역할을 해오신 지점은 높게(?)평가해 드릴 수 있지만, 작금의 감리교단에서 7,80년대 운동권으로 주름을 잡고 이름을 날린 분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감신이든 목원이든 해괴한 작태들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공론적인 어설픈 입장을 밝히고 있는 처참한 현실태에 준해서 볼 때, 박경양 목사 이분이 시민운동 쟝르에서 활동하셨기에, 개신교단 내의 사회선교운동 조직들과 차별점이 있다고는 할 수 있지만, 저는 별로 다를 바 없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7. 감게에 글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갑지가 6,7월 경 나타나서 일련의 소송단을 모집하고 화들짝 활개를 칠 수 있는 판이 형성된 것처럼, 자의식을 드러내시는 모습도 솔직히 불편합니다.
8. 지난 5년동안 어디서 뭐하고 계시다가, 이제 나타나셔서 이런 판을 형성해 나가려고 하시는 지, 솔직히 신뢰하기 힘듭니다.
9. 감리교단에는 두개의 암적 세력이 분포되어져 있습니다.
ㄱ. 하나는 세습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교권을 획득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수적인 우세를 밀어 붙여서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초월적 권력의 정점의 자기장에서 곁불이라도 쬐어 오면서 혜택받은 이들이 여기에 해당 될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는 고수철 감독회장 몇달 시기에 행정기획실장이라고 떵떵 거리면서 완장을 찼기에 기고만장하셨던 J목사라는 분도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 진행되는 수순에 불연속의 심연을 드리운 S목사가 그토록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감정의 찌꺼기를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차원으로 접어들었지요. KD진영에서 행정기획실장으로 임명한 전 박영천 기독교 타임즈 편집국장같은 사례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조만간, 한달 내로 구속될 것이라는 평이 대세라고 봅니다. 미국에서 평생 유배생활하는 것보다는, 한국에 와서 몇달 구속되고 나서 집행유예받고서 재기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입장도 개진되는 마당에 말이지요.
ㄴ. 또다른 기감에 분포된 암적세력은 1970,80,90년대를 주름 잡았던 운동권 세력들입니다. 작금의 목원 삼인방이라고 일컷는 NCCK총무와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그리고 H목사 이들은 이제 임기가 마감하는 감신의 김홍기 총장 형 김동완 목사의 영향력 아래서 성장했던 이들입니다. 목원대의 척박한 현실이 계속해서 난마처럼 얽혀가고 있는 중심에는 이 세명의 고약한 작태들이 적지 않게 개입되어져 있다는 것을 목원 민주동문회 분들도 부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감신이라도 나을 까요? 감신은 더 처참합니다. 운동권 경력을 팔수 있으면 팔고 싶었던 노무현정권시절에는 무책임하게 인공기부터 시작해서 대단히 진보적인 양, 행세하다가 개교회 장로그룹이나 지방회나 연회에서의 비판적인 여론 앞에서는 스스로 담임목회자로서 책임지지 아니하고, 부목의 위치만을 휘발시켜서 자신의 책임을 비켜가려는 서대문지방의 A감리교회의 현실이 그대로 반증합니다.
이들이 20대 신학도시절 30대 목회자시절 민중교회 목회도 마다하지 않은 치열했던 과거는 평가해 줄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 독재와 싸우면서 아주 못된 습성을 역설적인 지점에서 내면화시킨 이들이 태반입니다.
이들이 벌리는 행사에 참석해 보면, 그 교만한 아집이 극에 달해도, 그들을 향해서 비판할 수 있는 이들이 자리에 없다는 것으로 기고만장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들은 독재와 싸웠지만 더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목사들로 계속해서 적이었던 독재의 포지셔닝을 닮는 것으로 선택의 여지를 좁혔습니다. 또한 이들은 운동권의 경험으로 조직을 구성하고 그 조직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개떼가 먹이를 향해서 달려들 듯이 이들이 타켓을 정했을 때 달려드는 속도감은 가히 경의롭습니다.
지난 기감사태 5년을 뒤돌아 보면서, <전감목의 현실>이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봅니다. 전감목이 관성적인 빤짝해야만 존재감이 인정된다는 그 고약한 습성을 이겨낼 수 있는 패러다임을 안착시킬 수 있었다면, 2009년 여름 종교교회 이후, 전감목의 영향력은 꾸준하게 역기능도 있을 수 있었겠지만, 순기능을 메인 스트림으로 기감개혁의 대안으로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장의 효과만을 보고서 전감목의 조직을 흔들어 보려고 했던 이들의 망상때문이였습니다. 그리고, 전감목 조직의 적지 않은 선배 목회자들은 유신과 5,6공 독재를 치열하게 싸웠던 이들도 엄연하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싸우고 나서의 지평은? 정말 제대로 싸운 이들은 그 다음 지평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조급증과 성과주의와 편가르기의 떡고물들을 챙기고 싶었던 그들은 이를 무력화시켰습니다. 한마디로 진보세력의 아킬레스건인 보수는 부패때문에 망한다지만, 진보는 분열때문에 망한다는 공식에 그대로 대응됩니다.
10. 저는 박경양 목사님 이분을 보면서 흥행사나 뚜쟁이적 성격에 대한 뉘앙스와 거품을 부인하기 힘듭니다. 또한 소송단을 함께 하기로 하신 분들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지만, 도저히 젊은 목회자들 그룹에서 어찌 저런 이가 소송단에 이름을 걸고 있는가? 싶은 분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11. 저는 박경양목사님의 역할과 달란트는 이제 한국사회 특히 시민운동계에서 진보적 운동계에서 유효시효가 이미 지났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성추행 사건에 대한 전교조 세력의 대응을 톱아 보면 그대로 그러납니다. 앞으로, 주도면밀하게 감리교 자유게시판이든 당당뉴스든 활동하시는 것을 지켜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분을 적지 않게 기회주의적 처신을 한 이력의 상당히 신뢰하기 힘든 어설프게 다양한 경험을 한 분으로 봅니다.
12. 그런 경험도 자산이고 공공성에 다시 기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제 개인적입장은 박경양 목사 이 분에 대해서 그런 입장입니다.
13. 따라서, 앞으로 이름 세자 중에서 두자가 앞 뒤로 같다고 해서, 박경양목사 이분과 저를 오해하시는 분들이 없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