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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는 사탄 마귀를 어떻게 대처할까?
관리자
- 1923
- 2012-08-10 09:00:00
사탄 마귀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다스리게 하실 때부터 있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에덴동산에 거하며 살게 하셨을 때 사탄은 뱀으로 나타나 하와를 꼬여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범죄한 인간들은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로도 사탄의 계략에 속아서 무수히 죄를 지으며 농락을 당하였고 하나님을 거역하였다.
사탄의 간교한 계략은 아주 달콤하고 짜릿한 전율의 쾌락을 느끼게 하면서 사람들을 유혹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하고 반대하며 저항하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행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일들을 그르치고 저항하며 죄를 범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예수님에게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거역하고 반대하도록 시험하는 자로 나타나 유혹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수제자 베드로 속에 들어가 예수님을 부인하게 하였고 가룟인 유다의 속에 들어가 비판과 불평을 늘어놓게 하더니 끝내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기는 죄를 저지르고 스스로 음부에 떨어져 죽게 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탄의 역사는 저항하는 무리들의 마음속에 틈타고 들어와서 언제나 목회자들을 괴롭히고 마음 아프게 하는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목회자가 저항하는 무리와 직접적으로 대항하기도 어렵고 잘못하다가는 더 큰 어려움을 당하기도 쉬운 것이다.
사탄 마귀는 때로는 뱀과같이 소리 없이 접근해 오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굶주린 사자와 같이 덤벼들기도 한다.
그 수단과 방법이 어찌나 교묘하고 간교한지 감히 상상하지 못하도록 주변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통하여 접근하기도 하고 물질들을 통하여 유혹 받게도 한다. 그러므로 저항하고 반대하는 자의 권모와 술수를 대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탄 마귀를 일시적으로 제압하고 이겼을지라도 또 다시 새로운 방법과 수단으로 다시 접전해 오기 때문이다.
고대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래스는 자기 자신의 자식들을 죽인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12가지의 과제를 부여 받았다. 그 두 번째는 이태리 남부 레르나(Lerna) 호수로 가서 지나가는 무고한 사람들을 공격하는 히드라(Hydra)라는 머리가 9개이고 여러 개의 다리를 가진 뱀을 죽이는 것이었다.
헤라클래스는 조카이자 제자인 아이올라우스를 데리고 그 호수를 찾아가 히드라가 살고 있는 굴을 발견하고 그 괴물을 끌어내기 위해 불화살을 쏘고 정면으로 달려들어 히드라의 머리를 하나씩 잘랐는데 그때마다 그 자리에서 두개의 머리가 다시 자라나는 것이었다.
위기에 처한 헤라클래스는 아이올라우스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아이올라우스는 삼춘을 도와서 헤라클래스가 자른 머리 부분을 불붙인 나뭇가지로 태워버렸다. 그래서 헤라클래스는 히드라를 제압하기에 이르러 히드라의 머리 하나만 남게 되었다.
헤라클래스는 마지막 남은 히드라의 머리를 잘랐으나 그 괴물의 머리는 여전히 그를 쳐다보면서 쉬쉬 소리를 지르며 쳐다보고 있었다.
헤라클래스는 그 불사의 머리를 거대한 바위 밑으로 묻어 버렸다.
그러면 헤라클래스는 저항자를 완전히 제압하였는가?
아니다 히드라의 응집된 에너지를 지배하는 힘을 가진 불사의 머리는 여전히 바위 밑에서 꿈틀대고 있으며 상황이 허락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되 살아 날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항하는 자를 힘으로 물리친다 할지라도 또 다른 저항하는 자가 나타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저항하는 자들을 인간의 힘과 재주로 아무리 제압할지라도 근원을 완전히 소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를 이기면 오히려 배가하여 저항하는 무리가 더 많이 나타나지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가 존재 하는 한 사탄마귀의 계교는 끝이 없고 저항자의 반대의 무리는 계속되어지는 것이다.
창세 이후로 사탄의 역사는 끝이지 않고 많은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종들을 괴롭혔고 모함 하였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도록 권모술수를 발휘하여 원수들에게 넘겨주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저항자를 인간의 힘으로 이기고 물리쳐서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설혹 이길지라도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저항하는 무리들을 내편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 지혜로운 처세라고 할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다.
간디는 영국 관리가 그를 방문하여 영국의 염세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인 거리행진을 중지하지 않으면 감옥에 보내겠다는 협박을 하였다. 간디의 보좌관들은 간디에게 길에다가 못을 놓아 그 관리의 차를 펑크 내어 버리자고 건의 하였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에게 차를 대접할 것입니다.”하고 간디는 말했다.
간디의 부하 크래스트필랜(Crestfallen)은 그 명령에 따라 순종하였다.
마침내 그 관리가 도착하여 거만하게 간디에게 말을 걸었다.
“간디 선생. 소위 소금행진이라는 것을 즉시 중단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체포하겠소” 간디는 말했다. “자 먼저 차 한 잔부터 하시죠”
그 관리는 마지못하여 차 잔을 들어 마시고 다시 강력하게 말했다.
“자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그 행진을........”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은 아닌 것 같은데요 차와 비스킷을 좀 더 드시면서 더 중요한 문제들을 의논해 보도록 하시지요”
시간은 흘러서 그 영국 관리는 간디의 말에 점점 더 빠져들어 가 찻잔을 여러 번 비우고 많은 비스킷을 먹으며 그의 공식적인 업무를 아예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오히려 간디의 주장에 감화를 받아서 동조자가 되고 말았다.
간디는 이렇게 싸우지 않고 적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비폭력의 혁명에 기여 하였다.
만약 사탄 마귀가 형체를 지니고 나타나서 접전해 온다면 어떻게 작전이라도 세울 수 있겠으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이용해서 시험하거나 접근해 온다면 사탄 마귀와 싸운다는 것이 결국은 사람과의 싸움으로 번지게 되고 인명과 재산에 손상만을 입힐 것이며, 사탄 마귀는 깔깔대고 조롱하며 떠나가서 또 다른 사람이나 다른 수단과 방법으로 나타나 다시 유혹하고 넘어뜨리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통하여 시험하고 유혹하는 사탄 마귀와의 접전을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과 인권은 사랑하고 사탄 마귀만을 물리쳐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사람들이 배척하자 자신이 고향을 조용하게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셨으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원수들을 이끌고 온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입맞춤으로 팔아넘기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칼을 휘둘러 말고의 귀를 잘랐으나 예수님은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시며 말고의 귀를 도루 낮게 해 주셨다.
가룟 유다나 베드로는 다 같이 예수님을 배반한 죄를 저질렀다. 다만 50보 100보의 차이였을 뿐이다. 그러나 후에 베드로는 자신의 지은 죄를 아파하며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았으나 가룟인 유다는 자신의 지은 죄를 뉘우치기는 하였으나 회개하지 않았고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해서 지옥 음부에 떨어져 멸망하고 말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가 잃었던 그의 사도직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사명을 부여하셨다. 베드로는 그 이후 다시는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았고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하기까지 복음의 전파에 심혈을 기울이며 충성하였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탄 마귀를 이기는 비결과 모범을 이렇게 보여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