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는 저항하는 무리의 정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관리자
  • 1755
  • 2012-08-16 21:30:47
목회자가 저항하는 무리의 정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목회자도 사람인지라 혈기가 있고 분노가 있고 저항하는 무리의 부당한 처사에 혈기가 나서 순간적으로 보복을 하거나 분풀이를 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여 더 큰 화를 불러 낼 수도 있고 화를 내고 분풀이를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화를 내어 보복하고 제지한다고 저항하는 자들을 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불씨는 남아서 언제 다시 그 불씨가 번지게 될는지 모른다.
참으로 저항하는 무리들을 이기는 방법은 그들을 내편으로 끌어들이고 받아들여 주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며 최선의 방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속에서 저항하는 것은 사탄 마귀의 계교이고 수단이지 그 사람의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유혹자와 저항하는 자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목회자들에게 대항하고 시험을 하며 작은 실수와 잘못이라도 생트집을 잡고 대항하려고 한다.
그러면 저항하고 거부하는 무리를 어떻게 이기고 제압할 수가 있을까?
그것은 먼저 저항하고 거부하는 사람의 속에서 역사하는 사탄 마귀의 정체와 요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나타나게 되었고? 이유와 조건은 무엇인가를 파악하여 대처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손자의 병법에도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한다고 하였다.

목회자들을 괴롭히고 괴로움을 주는 무리를 사탄의 역사라고 하는데 사탄의 역사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까지 불순종하고 거역하였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가 있으시면서 어찌해서 사탄을 단번에 멸하시고 인류로 하여금 시험당하고 유혹당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시지 않으시는 것일까?
사탄 마귀가 수많은 인류들에게 죄를 범하게 하고 지옥으로 가게 하는데도 그냥 방관하고 계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탄 마귀보다 권능이나 힘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사탄 마귀의 악행을 모르셔서 방관하고 계시는 것일까?

그런데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자연현상이나 삶의 현장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온실에서 자란 식물과 비바람이 몰아치고 폭풍우가 거센 지역에서 자란 식물의 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온실에서 곱게만 자란 식물들은 무성하게 자라지만 매우 연약하여 작은 어려움이 있어도 부러지고 상처를 당하는데, 야산에서 비바람과 폭풍우를 맞으며 자란 식물들은 아주 튼튼하고 뿌리가 깊어서 여간 어려운 폭풍우와 고난을 당하여도 잘 견디어 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유한 가정에서 부족한 것이 없이 사랑만 받으며 자란 사람과 가난에 쪼들리며 고생하고 성장한 사람들의 생활능력이나 자립정신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고생이 무엇인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자란 사람들은 어떤 작은 고난을 당해도 극복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당황하는데 많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며 자란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이나 고난을 당할지라도 당황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태연하고 의연하게 고난의 돌파구를 잘 헤쳐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사탄 마귀를 단번에 멸망시키시지 않고 방심해 두시는 것은 인류들에게 사탄 마귀에게 시험과 환란을 통하여 연단을 받아 더욱 강한 믿음과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가 되도록 훈련하시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과장된 생각일까?
아니면 인류로 하여금 사탄 마귀의 시험과 환란을 겪어 봄으로 사탄 마귀의 정체와 계교를 알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함으로 인류가 스스로 취사선택하게 해서 지옥이냐? 천국이냐?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게 하시려는 것일 것이라는 속단도 어색한 핑계이며 주장일까?
선과 악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탄 마귀의 유혹과 시험을 통하여 체험함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영혼이 없는 동물들은 선과 악의 기준이 없고 장점이 무엇인지 단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욕구와 욕망대로 살며 행동할 뿐인 것이다.
지성이나 인격이 없기 때문에 판단력도 없으며 체면이나 위신도 모르는 채 살고 행동을 한다. 배고프면 아무 약한 짐승이나 죽이고 잡아먹으며 누가 보든지 말든지 자신의 욕구와 본능대로 행동을 하고 활동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혼과 정신이 있기에 인격과 체면도 차릴 줄 알고 선과 악의 판단력도 있어서 취사선택해서 행동을 하고 인내 할 줄도 아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사탄 마귀의 유혹과 시험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사랑과 은혜의 법을 통해 질서를 지키며 양심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사탄 마귀를 단번에 멸망시키지 않고 인류로 하여금 스스로 질서를 지키며 선의 삶으로 살아가도록 연단을 받게 하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탄 마귀의 권모술수를 알고 잘 대처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 사탄 마귀의 역사는 때로는 친구와 가족과 이웃들을 통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해치고 보복하는 것은 사탄 마귀의 계교에 속는 행동이며 그의 바라는 짓이다. 왜냐하면 사탄 마귀는 사람의 속에서 조종하다가 그 사람의 육체가 해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면 깔깔거리고 만족 해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가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이 사탄 마귀와 싸우고 대항한다는 것은 조종당하는 사람들과의 싸움이요 보복을 하는 것이다. 마치 달걀의 겉모습이 둥근 것이 싫다고 모나게 만들려고 두드리다가 껍질만 깨뜨리고 공연히 죄 없는 알만 상하게 하는 꼴이 되고 마는 일인 것이다.

복음서 중에 거라사지방에서 귀신들린 자들이 예수님께 자기들을 돼지 떼들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여 허락하였더니 모두 내리달아 물에 빠져서 몰사함으로 결국 손해를 본 것은 돼지들을 치는 주인의 피해였으며, 마귀들의 행패는 여전히 지금까지도 사람들을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 사탄 마귀는 이렇게 간사하고 간교하게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괴교를 부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 마귀와 대적하여 싸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내게 굴복하게  달래고 얼러서 소멸시키는 방법이 최선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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