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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길이 참으심
관리자
- 1852
- 2012-08-16 19:12:27
로마서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이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시니라”
죄를 없이하는 길은 피를 흘려야 합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가 사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죄를 사하시기위하여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피 흘리는 것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피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사람의 죄를 씻고 죽을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를 죽여서 피를 흘리고 대신 죽게 함으로 대속의 제물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로써 죄인을 깨끗하게 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천천의 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으로 예물이 되게 하여도 죄인들의 죄를 사하고 씻을 수는 없으며 죄로 인한 죽음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제물로 내어 주신 것입니다.
자기의 몸을 십자가에 제물로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는 죄와 심판과 멸망을 해결 받게 된 것입니다.
피를 흘리는 일이 없이는 죄가 사해지지 않기에 짐승의 피가 아닌 자신의 몸에서 흘리는 보혈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으며, 자신의 죽음이 아니고는 인간의 죽음을 해결할 수 없기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죽음을 해결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9:25-28,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였다는 것을 성경이 가리켜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의 존귀함을 성경이 가르쳐 주는 것 이상은 우리는 아무도 알지를 못합니다.
로마서 5:9,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했는데,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가 사하여 질 때까지 보혈을 흘리셨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 깜짝 놀랄만한 좋은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명예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진노가 진정되고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진노는 죄에 대한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속죄가 없이는 죄에 대한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속죄가 먼저 이루어지고 화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마땅한 절차입니다.
인간의 죄가 말소되어야 하고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진정한 관계에서 하나님과 화목해져야 할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불화하게 하고 담을 쌓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이라 하지 않고 화목제물이라고 하는 것은 속죄와 더불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 멀리하게 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였고 가까이 나아가게 하였으니 죄의 담은 이미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 화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죽으심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변화시키거나 설득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께 애원하여 죄인들을 사랑하게 하셨다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의 아들 안에 함께 계셨고 아들의 피로 말미암아 화목 제물이 되도록 제사하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터뜨리시고 죄인이 구원받도록 길을 열어 놓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 졌다는 것은 누군가 공격을 당하고 누군가 손해를 끼쳤으며 누군가 상해를 입혔으며 누군가 필요에 대한 충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 함께 기대함과 목적이 다 함께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예수로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일이나 피 흘리게 하신 일이나 화목 제물이 되게 하신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예수의 보혈로 화목을 이루시는 것이 뜻일진대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이 하나님의 뜻에 충만하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충족할 만한 화해의 제물이 아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제물로 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도 남을 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하나님이 오래 참으심과 인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조급함처럼 인간들이 죄를 범했을 때, 즉각 심판과 형벌을 내리시는 분이 아니라 오래도록 참으십니다.
그렇다고 죄에 대한 용서를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동안 사람들은 지은 죄악들을 죄인들이 스스로 알고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하시는 것도 있습니다. 참으신다는 말은 징계의 시간을 미루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의 죄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과 언행 심사를 모두 헤아리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손을 대지 않고 참고 계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참지 않으시고 즉각적으로 징계를 내리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악들 가운데 그 어느 것 한 가지 만이라도 우리를 걸리게 하고 넘어지게 하여 우리를 죽고 멸망을 당하게 하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시고 계시며 빛난 주석 같은 발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조금도 심판에 그릇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참고계십니다. 그러나 참으시는 때가 끝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참으시고 참으신 기간이 끝나면 결국 심판을 받는 자와 구원을 받는 자로 이룩하실 것입니다.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은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자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대로 처형할 것이냐? 아니냐? 하고 따지며 돌로 쳐 죽일 기세로 덤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죄를 정죄하거나 책망하시지 않았습니다. 여자를 데려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잘 알고 잘 지킨다고 칭찬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침묵으로 일관한 채 땅에다 글을 쓰셨습니다.
율법의 정죄를 독촉하는 그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땅에 엎드려 글을 쓰셨습니다. 그 때에 그 무리들이 모두 돌을 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자만 혼자 남았을 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초청을 받았을 때, 죄 많은 여자가 와서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리고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아드렸을 때 그 여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의 행적도 전파하여질 것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를 깊이 보시지 않았습니다.
여기 죄를 “간과”하신다는 말씀은 “지나쳐 버린다.” “미루어 둔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용서하신다는 뜻은 아니고 사하심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때까지 미루어 두시겠다는 뜻일 뿐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비판과 정죄가 앞서지만 하나님은 참으시고 뒤로 미루어 두십니다. 그러나 죄가 도에 차게 되면 노아 홍수처럼, 소돔 성이 불로 멸망을 받은 것처럼 무서운 형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칭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역사 중에서 전 세계를 향하여 자신의 의를 공포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계획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채택하신 방식이나 경륜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진실”이나 “거룩”이나 “선”이나 “본질적인 공의”나 “하나님의 계획”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는 십자가의 절정으로 시간과 공간의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까지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수 없이 많은 죄와 진노를 자처했으나 하나님은 너무 오래 참으시고 의로우시고 공정하실 정도로 참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 이후로 모든 인류의 죄를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처벌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지금까지의 모든 죄를 홀로 담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고통의 몸부림과 울부짖음은 인류의 고통과 괴로움을 모두 담당하신 아픔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