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식 목사님, 도대체 무엇이 진실입니까? 두번째 공개질의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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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21 06:45:38
<b>김충식 목사님, 도대체 무엇이 진실입니다?</b>

김충식 목사님, 감독회장 선거에 바쁘신 것인지 답이 없으시군요. 김목사님의 무응답이 제가 드리는 질의에 답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자격에 문제가 없다면 이런 기회에 그 오해를 말끔히 씻을 수 있을 터인데 아쉽습니다. 하지만 감독회장 선거운동이 계속되는 만큼 목사님의 답변을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 답변을 듣지 못한 채 두 번째 공개질의를 드립니다.

•목사님이 광문고등공민학교 교목으로 사역한 것은 사실입니까?
첫 번째 질의에서 밝혔듯이 감리회 서울연회 회의록과 연회주소록 등에 따르면 목사님은 1981년에 강남대학교 교목으로 파송되셨다가 그해 10월 파송이 취소되고, 1년여를 미파상태로 있다가 1983년부터 1989년까지 금란교회에 소속을 둔채 광문고등공민학교 교목으로 파송되어 사역하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1988년부터 1989년까지 광문고등공민학교에서 성경교사로 일하며 실질적인 교목의 역할을 한 분이 현재 감리회에서 목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그 분과 그 분으로부터 당시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당시 광문고등공민학교에서 교목으로 근무하셨다는 목사님을 뵌 적도 없고 목사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고 증언하고 있음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이 문제에 대한 목사님의 답은 차후에 듣기로 하고 서울연합교회와 관련하여 질문 드립니다.

•목사님은 도대체 광문고등공민학교 교목이었습니까? 서울연합교회 담임목사였습니까?
목사님께서 2004년 감독선거 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이력서에 의하면 목사님은 1981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연합교회 담임목사로 재직하고 계십니다. 서울연합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연혁을 확인한 결과 서울연합교회는 1977년 11월에 창립되어 그 해에 이충원 장로가 취임하고, 1978년 1월에 <예수교회공의회> 소속 손순조 목사가 담임목사로 취임했으며, 1980년 11월 2일에 이호빈 목사가 담임목사로 취임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1981년 1월 4일에 이호빈 목사의 후임으로 담임목사 취임을 한 것으로 되어 있음을 볼 때 사실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의혹을 불러일으킵니다. 감리회 기록에 의하면 서울연합교회는 1990년에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교회로 설립되고 설립과 동시에 목사님이 담임목사로 파송되어 지금까지 재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광문고등공민학교 교목으로 파송 받아 일하셨다는 분이 그 기간 동안 서울연합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하여 목회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담임목사로 재직하신 서울연합교회는 설립당시부터 1989년까지는 감리회 소속교회가 아니라 <예수교회공의회>에 소속된 교회였습니다. 때문에 1977년에 설립 이후 서울연합교회에는 감리회가 아닌 <예수교회공의회> 소속 목사인 손수조 목사와 이호빈 목사가 담임목사로 재직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감리회가 아닌 <예수교회공의회> 소속인 서울연합교회의 담임목사로 9년을 재임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광문고등공민학교 교목으로 파송되셨다는 분이 교목으로는 일한 흔적은 없고, 그 기간 동안 감리회가 아닌 타 교단에서 교회를 담임하여 사역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목사님이 보시기에도 이상하지 않나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지 않나요?

•한국의 사도로 불리는 우원 이호빈 목사님께서 거짓말을 하셨단 말입니까?
또 하나 강남대학교 출판부가 발행한 “끝날의 징조와 사는 길”-고(故) 우원 이호빈 목사의 일지- 중 1987년 2월의 쓴 일지에는 이런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김충식 목사님과 대담, 손/한 두 목사님과 동석 ①예수교단 목사로 일생을 확약할 수 있나? ②일생을 각오한다면 행정적 주관이 다소 다를지라도 상합할 수 있을 것이다. 가급적 함께 살자. 만일 감리교회 다시 돌아갈지라도 일 년간 봉금지불과 현재 갖고 있는 사택을 드릴 수 있다.(나의 의견이나 교회에 제안하겠음.) ③교회화합은 현재 상이 되는 주장에 대하여 첫째 상호 화해로 단합하는 것, 둘째 평화롭게 분립하는 것 등 나의 소견을 이야기 하였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1960년 여름 기독교전국교육자연합하기수양회에 참석하여 이호빈 목사의 설교를 들은 이화여대 김활란 총장은 “현대의 사도, 그리스도의 한국의 사도가 바로 저기 서 있구나!”라고 외치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감탄했다고 합니다. 이후 김활란 총장은 세계적인 신앙잡지가 선정하는 ‘현대의 12사도’에 이호빈 목사를 ‘한국의 사도’로 추천했고, 1963년 다락방(The Upper Room)에서 발행한 ‘현대의 십이사도’는 특집에서 이호빈 목사를 ‘한국의 사도’로 소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호빈 목사는 그의 일지에서 목사님에게 “예수교단 목사로 일생을 살 것을 확약하든지 감리교회로 다시 돌아갈지를 선택”할 것을 요구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도로 불리는 이호빈 목사의 이 말씀이 거짓이라고 믿어야 할까요?

•하여 김충식 목사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첫째 김목사님은 1983년부터 1989년까지 광문고등공민학교 교목으로 일한 것입니까? 아니면 <예수교회공의회> 소속 서울연합교회 담임목사로 일한 것입니까?

둘째 목사님이 1981년에 강남대학교 교목으로 파송되었다가 그해 파송이 취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파송 취소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셋째 목사님이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목사님이 소속되었던 교단은 어디입니까? <예수교회공의회>입니까? <기독교대한감리회>입니까? 아니면 <예수교회공의회> 소속인 동시에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이기도 한 것입니까?

넷째 만약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예수교회공의회>와 동시에 <기독교대한감리회>에 소속하고 있었다면 <예수교회공의회>와 <기독교대한감리회> 모두를 기망한 것이 아닙니까?

다섯째 목사님이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예수교회공의회>와 동시에 <기독교대한감리회>에 소속하고 있었다면 이 사실을 감리회에 보고하고 감독의 파송을 받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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