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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제, 강희천목사님에게
김명섭
- 2269
- 2012-08-20 23:56:32
성모목사님 글은 언제 읽어도 차분하십니다.
정오의 태양에 춤추는 시퍼렇게 날이서 망나니의 칼이 있다면
푸른 달빛아래 빛을 스스로 머금은 무월검과 같습니다.
망나니의 칼은 시퍼렇게 날이서 고작 죄인의 목을 베지만
장수의 무월검은 날이 무디고 이가 빠져있지만 청의 10만 대군을 벱니다.
난형 저에요 난제, 위 댓글은 \"망나니의 칼은 시퍼렇게 날이서 고작 죄인의 목을 베지만
장수의 무월검은 날이 무디고 이가 빠져있지만 청의 10만 대군을 벱니다\"
남이 장군께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시며 예종에게 올린 글 중에서 발췌했사옵니다
2. 교리수호대책위원회의 농간
20년 전 감리교에서 벌어진 ‘종교재판’ 당시에 \\'교리수호대책위원회\\'라는 임의단체가 있었습니다. 당시 감신대학장이셨던 故변선환교수님과 홍정수교수님을 거짓과 교권을 동원해 무참히 출교 시킨 ‘종교재판’ 말입니다. 20년 전 종교재판을 진행했던 ‘서울연회재판위원회’와 ‘총회재판위원회’는 오늘날 입맛따라 제멋대로 장정을 해석해서 감리교공동체를 유린해 버린 ‘장정유권해석위원회’와 동일한 전횡을 자행했습니다. 이 종교재판의 특징은 거짓과 교권으로 한 개인 ‘생매장’ 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감리교회의 수치스럽고 불행한 역사였습니다. 한마디로 ‘교리수호’(법과 권력)를 빙자해서, ‘더러운 정치’를 자행한 것입니다.
새삼 종교재판을 주도했던 ‘교리수호대책위원회’를 언급하는 까닭은 성아무개가 속한 ‘장정수호위원회’와 그 명칭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성아무개의 글쓰기 방식이 ‘교리수호대책위원회’의 그것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전체에서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는 고도의 짜깁기(편집)’와 ‘거짓을 전제로 엄청난 비약을 시도해서 사실을 철저하게 왜곡하는 고난도의 기술’을 동일하게 자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핏보면, 합법적이고 차분한 글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진실을 담은 정직한 글쓰기’는 아닙니다. 해서, 차분함 속에 숨겨진 거짓과 위선을 다음과 같이 폭로합니다.
3. 짜깁기를 통한 사실왜곡의 실례
밑에 있는 댓글은 제가 생략했습니다. 김명섭목사님의 “개나발”이라는 말에 제가 댓구를 맞추기 위해 “개소리”라고 했습니다. 그 개소리라는 말에 이렇게 흥분을 합니다...어째 되었든 혈기를 제어하지 못하는 목사로 목회하기 참으로 힘들겠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위의 글만 보면 ‘개나발’이라는 폭언을 제가 먼저 사용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개나발에 개소리로 단순히 댓구를 맞춘 것처럼 발뺌을 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말하는 숨은 의도는 사소한 일에 지나친 과민반응이라고 매도하며, 급기야 감정조절이 안되는 목회자로 몰아가는 전략입니다. 급기야 목회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무근의 상상력까지 동원해서 비약하고, 개인의 인격과 더불어 본 논의와는 전혀 무관한 목회까지 무한대로 확장시켜서 상대를 매도합니다. 이처럼 편집과 짜깁기의 만행은 마치 ‘교리수호대책위원회’의 그것을 능가하고도 남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나발’이란 용어의 시발은 본인이 아니라 성아무개 자신입니다.
성모(2012-07-21 09:57:34 / 125.132.99.34)
간단명료합니다. 세습을 찬성하는 모든 말은 다 개나발입니다.
성아무개에게 이토록 분노하는 것은 20년 전 ‘교리수호대책위원회’가 사용했던 얄량한 거짓말과 편집을 다시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교리수호대책위원회는 홍정수교수님을 재판하면서 책 한권을 ‘예수피는 개피라고 주장했다’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 아니 비약했습니다. 이것도 통하지 않자 결국 ‘대학원보고서’라는 괴문서를 통해서 마침내 ‘통일교관련설’로 출교를 시키는 천인공로할 짓거리를 자행합니다. 이것이 종교재판의 진실입니다.
교리수호대책위원회가 저지른 만행의 하이라이트는 ‘고소인이 재판장이 되는 멀티플레이’를 보여 준 것입니다. 성아무개는 특유의 말주변으로 목요기도회와 전감목을 거쳐 장정수호위원회를 두루 걸치는 ‘멀티플레이어’ 라는 점에서도 교리수호위원회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4. 비열한 글쓰기
얼마전 성아무개는 앞에서는 비송신청인들을 공격하면서 뒷구멍으로는 김*환감독을 임시감독회장으로 천거하는 꼼수가 들통나자 훗날 다음과 같은 거짓말로 변명합니다.
김*환감독님이 네 번이나 전화해서 지지를 호소했다고 하는데 제가 알아본 바로는 다르더군요. 네 번이라는 횟수도 그렇고 그 지지를 호소했다는 것에는 의심이 듭니다. 김명섭목사님이 김*환감독님에게 판사님에게 보내는 추천서를 써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추천서를 써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자기를 지지해달라고 네 번이나 전화하는 바*보가 과연 세상에 있을까요? 감독 정도 하는 분이 그 정도도 모를까요?
사실은 이렇습니다. 김*환감독님은 저에게 정확히 4차례의 전화를 했고, 본인을 지지해 달라는게 아니라, 전감목의 추천인사를 지지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해서, 제가 말로만 그러지 말고 현직감독으로써 청원서를 부탁드렸더니, 아침에는 선뜻 그렇게 하겠노라고 말해 놓고는 오후에는 현직감독신분이라 못하겠다고 말을 바꾸셨습니다. 당시, 통화내역을 얼마든지 확인해 줄 용의가 있습니다. 현재 감독회장후보로 출마하신 자격문제가 되고 있는 김*식목사님의 \\'자격확인서\\'를 발행한 서울남연회 김*환감독님의 진실성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믿지 않습니다. 수시로 말을 바꾸는 분임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하루밤 사이에 사퇴를 결심한 김*훈 감독님이 취소한 것에 대해 김명섭 목사님은 김*환감독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자들이 김*환감독님에게 찾아와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런 비열한 짓이 어디 있는가? 자신들의 합의파행의 책임을 김*환 감독님에게 뒤집어 씌운 이런 행동에 대해 전감목은 책임을 지고 집행부 모두 사퇴하기를 권하는 바이다.
하지만, 사실은 이렇습니다. 지난 비송의 합의가 파행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결과였습니다.(기회가 오면 비하인드스토리를 공개하겠습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합의가 파기된 원인을 추궁하는 기자들 가운데 크리스천투데이의 모기자가 참석자들에게 ‘누군지 말씀해주십시오...김*환감독님입니까?’라며 대뜸 이름을 적시하며 물었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왜냐면, 바로 그날 성아무개로 부터 김*환감독님이 비송 외의 방법으로 임시감독회장에 추천했다는 발찍한 비밀를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위의 내용은 당당뉴스의 녹취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5. 비겁한 글쓰기
저는 \\'전감목의 비극\\'이라는 인신공격과 음해의 글을 보면서, 분노했지만 이미 판결은 나왔고 혹시 전감목과 장수위가 갈등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모습이 좋지 않으니 피차 자제하자는 전화를 성아무개에게 걸었습니다. 하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권고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전감목은 존재하는가?\\',\\'개소리\\'등의 무례한 글쓰기에 대한 ‘다음에는 귓방망이야’(광고패러디)라는 본인의 엄중한 경고에 대해 성아무개는 또 다시 못된 버릇을 발동해서 이렇게 비아냥거리며 비약을 합니다.
글을 잘쓰는데 주먹은 따따블로 잘 쓴다니 참으로 겁납니다. 전감목이 마치 양은이파와 서방파에 버금가는 전감목파처럼 느껴지네요.
지극히 개인적인 사적인 언급을 갑자기 ‘전감목’ 전체로 확장해서, 전감목이 마치 폭력집단인 처럼 공공연하게 비방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의 단편적인 사건으로 전체를 싸잡아 판단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또다시 자행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정정당당하게 반박할 수 없으니까, 상대방의 다른 상황을 끌어들여서 공박하는 비겁함의 소치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싸울 때 자신이 불리해지면, 부모형제와 사돈의 팔촌까지 들먹이며 출신지역과 신분 같은 조건을 싸잡아서 상대를 공격하는 유치한 짓거리와 흡사합니다. 거기다 차분함을 덧붙이는 치밀함까지 발휘하고 있습니다.
6. 반개혁적인 글쓰기
제가 볼때 차분한 논리를 가장해서 비열한 글쓰기를 자행하는 성아무개는 실로 ‘게시판’을 ‘개시판’으로 만드는 비열한 글쓰기의 전형이라고 여깁니다. 무엇보다, 성아무개의 가장 큰 문제는 종종 ‘개혁’을 양념처럼 남발하면서, 실제로는 일부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反개혁적 주장’을 전개한다는 사실입니다. 전감목은 ‘원탁회의’와 ‘비송신청’을 통해서 감리교회의 근본적인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소외되었던 ‘연회원 전체의 참여’를 통한 직접민주주의에 실현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시도해왔습니다. 그때 마다 이러한 전감목의 시도를 ‘실현불가능한 이상론’이니 ‘소송으로 한방에 날라갈 것이다’, ‘헛발질’ 등이라고 폄하하면서, 비아냥과 조롱, 거짓과 비약으로 의도적으로 방해 왔습니다. 그래서, 여론을 호도하고 마침내 ‘제도권 안에서’의 총회와 선거가 속절없이 진행되는 오늘의 ‘개혁 없는 정상화’란 골때리는 현실을 이끌어 내는데 직간접적으로 공헌했다는 사실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토록 비난하던 ‘신기식목사님의 소송질’의 전철을 밟는 소송단에 버젓히 참여하고 있는 웃지 못할 모습입니다.
7. 감리교회를 말아먹는 또 다른 ‘탐관오리’
\\'선거무효소송\\'이 신기식목사님의 전유물이 아니듯, 막되 먹은 글쓰기와 인식공격은 성아무개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난형난제\\' 사자성어가 함창석장로님의 전유물이 아니듯, 해학과 풍자는 강희천목사님만의 전유물은 분명 아닐테지요.
\\'무월검과 망나니칼\\' 착각이 자유이듯, 해석 역시 자유입니다. 하지만, 개혁의 탈을 쓰고 차분한 글쓰기(?)로 본질을 왜곡하고, 反개혁적인 선동을 자행하는 껍데기들은 이제 ‘그만 꺼져야 할 때’ 라고 여깁니다. 그 첫 번째 대상은 ‘성아무개’ 라고 여기며, 저의 ‘시퍼렇게 날이 선 망나니의 칼’은 이제 곧 자신의 지위(직책)를 남용해서, 감리교회의 개혁을 가로막고 법으로 정치를 일삼아서 감리교회를 혼란케 하는 대표적인 고위관료(일명, 탐관오리), ‘양측의 첨예한 대립을 이용해서 법이라는 탈을 쓰고 정치적인 농간’을 일삼는, 그래서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고 하는 또 다른 ‘강아무개’를 향하고 있습니다. 부디 ‘죄인이 목을 베어야 할 망나니의 칼’에 애꿎은 피해자들이 속출하는 불상사가 없길 소망하며, 계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혹 오해가 있을까 해서 한 말씀 더 드리자면, 또 다른 ‘강아무개’는 멀리 캐나다에 목회하시는 강희천목사님이 아니고, ‘광화문’에서 이중직을 아주 성실하게(?) 수행하고 계시는 분이라고만 밝혀 드리오니, 알아서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