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서 詩를 뽑는 까닭은...

최범순
  • 1513
  • 2012-08-24 09:00:00
\"가을 강둑에서\"

한 차례 소나기에 흠뻑 젖고도
들판은 조금씩 시들어간다
샛강의 물이 넉넉해도
강가는 서서히 야위어간다

가을 햇볕 때문이다
바람 때문이다

아니,

햇볕에 익을 대로 익고
신선한 바람이 불면
고개를 수그릴 줄 알기 때문이다

죽어 썩기 전에
햇볕을 타고
바람에 실려
이슬처럼
사라질 줄 알기 때문이다

저 많은 강물을 곁에 두고도
오히려 제 습기를 덜어내고
하늘에 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 이는 [고난 함께] 139호에 실린 詩로서, 여기에 장명성님의 다음과 같은 칼럼이 달려 있다.

   시들고 야위고 사라진다는 것, 원래 그런 것이니, 야단할 일이 아닙니다. 가진 것을 덜어내고 하늘에 오른다는 것, 그저 자연의 일이니, 감격하고 선망하고 수선 떠는 것도 우습습니다. 어떤 형상으로 어디에 존재하든, 생명의 섭리대로만 살면, 누구나 누리는 축복입니다. 도리 없이 누릴 수밖에 없는 기적입니다.

   가진 것을 덜어내고 하늘에 오른다는 것, 그것을 감격하고 선망하고 수선 떨 일이 아니라 하는데, 난 왠지 엄청나게 감격하고 수선떨고 싶다. 너무나 귀한 것을 귀한 줄 모르고 무감각하게 살다 보니, 알 것 알고 의식 있다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비 인간성이 느껴질 때도 있고, 다정다감함이 없는 양심은 박제 된 비둘기처럼 평화의 상징이면서도 오히려 슬픔을 자아내는 모습일 수가 있기에, 오늘은 주접이 됨을 무릅쓰고 이 詩에서 뽑아낸 나의 詩를 써 본다. 내가 생각해도 무리하고 어리석은 짓이기는 한데, 다정도 병이 될 수 있으니 어찌 하랴!!



\"승천\"

봄과 함께 이 땅에 내려와
강물과 함께 생명으로 흐르다가
가을과 함께 귀천하시는 이여!
당신을 무어라 부르리이까?
아니, 당신은 누구십니까?

들넋이라 해도 어색하고,
광야혼이라 해도 어색하니,
그러면 잠시 이 땅에 맞닿았다가
다시 멀어진 하늘이십니까?
아니면 하늘 아버지,
당신이 때를 따라 멀리 혹은 가까이,
그렇게 발걸음으로 섭리하시는 것입니까?

어쨌든 하늘로 오르기 위해선
일부러라도 덜어낼 것을 덜어낼 줄 아는 지혜,
그것을 가르쳐주고 떠나는 것들은,
선지자마저도 부끄럽게 할 큰 스승이시니.....

가진 게 넘쳐나는데도 더 갖기 위해
하나님의 제단을 쪼개며 싸우는 이들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어찌 날아오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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