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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토론회의 핫이슈? 스베덴보리는 누구인가?
관리자
- 2419
- 2012-08-31 07:31:27
주도면밀하게 노팅하시는 남양주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만큼 철저하게 기록하는 것은
제공된 자료집을 받자 마자 수첩은 접어 버렸고, 토론회의 가장 첨예한 접점들을 박경양 차흥도목사님
입장에서 어떻게 꼼꼼하게 준비했는 지에 집중했다.
토론의 공방은 예상되었던 것외에, 다시 말해서 그동안 감게 올라왔던 글들 이외에 특별한 지점은
별로 없었던 듯 싶다. 다만 사회를 보는 CBS기자께서 계속해서 흥분수위가 올라갈 때마다
낮추려고 애를 쓰셨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다시 한번 법과 정의가 어떤 토대 위에서 그 가치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인지를 계속해서
되묻고 있었고, 시작될 때, 참석자가 간신히 두자리수를 넘겼는 데, 어느 새 공방과 재공방의
적지않은 동어반복이 재탐삼탕 진행되면서, 사회자는 예정보다 35분이 넘어 서게 되었다면서
방청석의 질의응답 시간을 허락했다. 사실 필자가 오늘 모니터링한 토론회에서 민감했던 단어들을
떠 올려 보면서 질문을 모니터링하면서 방청객으로서 150분을 지켜보고서 1-2분정도의 발언권을
얻는 필자 나름에서 기여할 수 있는 코멘트와 질문을 정리하면서 필자는
이단혐의
이중겸직
... 등등 그동안 감게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단어들보다, 스베덴보리를 키워드로 잡게 되었다.
이것은 필자 나름의 감리교단 대학원생으로서의 신학적 관심사의 배경이 전제되어져 있기도 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국민학교 3학년 시절 헬렌켈러가 가장 존경하는 이가 스베덴보리라는 것을 인지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이가 어떻게 말을 하게 되었을까? 촉감으로 의사소통은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
이 관심사는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이어졌는 데, 불행히도 스베덴보리에 대해서 직접 그가 쓴 책들은
접하기 어려웠고, 다만 간접적으로 괴테와 블레이크 등 서양 근대사에서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이들이 왜? 그토록 스베덴보리를 통해서 받은 영감에 찬사를 보내는 지 그래서 스베덴보리라는 인물이 만만치 않은 이라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궁금증은 더해지고 있었다.
이 궁금증은 일단 새내기 대학시절을 시작한 장서의 규모와 시스템이 압도적일만큼 잘 갖춰진 도서관에서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었다. 당시 80년대 말에서 90년대는 적지않은 기독교 집회 모임의 주제가 <내가 체험한 천국은?>등등의 성격의 집회가 적지 않았다.
바싹 마른 건초처럼 선동당하는 기쁨에 목말라 있던 이들에게 이런 성격의 집회들은 반향이 매우 컸다. 한쪽에서는 신학자들의 경고와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위해서 이러한 집회들의 폐해가 지적되기도 했지만, 파죽지세로 기독교인들을 앞도하는 집회들이 적지 않았다.
흔히들 스베덴보리의 영계체험을 이런 지극히 시공간적인 물리적 시각이 반영된 표현으로 드러나는 천국체험과 동일시하는 이들의 표피적인 이해수준은 필자의 견해론 상당히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특히 2009년 예장 고신 교단차원에서 스베덴보리의 저작과 신학적 관점을 이단으로 간주하게 된 결정적인 촉발점은 칼빈의 예정론 속에 내포되어져 있는 치명적인 독소들을 스베덴보리가 철저하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스베덴보리의 저작들만이 성서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유일한 지침이라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 그는 이미 300여년전 유럽의 사상적 지형도가 극렬하게 분화되기 시작했던 지점에서 학자로서의 과학적 관심으로 신학적 관심으로 연속적으로 불연속적으로 접어 들어서 방대한 저술을 남겼지만, 적지 않은 당시 시대적 상황들 속에서 평가되는 천주교에 대한 입장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입장 칼빈의 예정론에 대한 입장들이 어느 정도는 내포되어져 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히, 이슬람교에 대한 관점은 꽤 주목할 만한 지점들이 있고, 이를 토대로 이슬람학자들과 유태인학자들 신구교 신학자들이 함께 서로 이견을 인정하면서도 창조적인 대화가 가능한 토대를 제시해 주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신학자 몰트만 자신의 희망의 신학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간략하게 스베덴보리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몰트만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 2000여년을 성서의 참 뜻을 그 처한 시대에 온전하게 드러내려는 성서해석의 역사라는 관점을 전제하고서 볼 때, 아주 쉽지 않은 난제라고 규정될 수 있는 세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하나는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기독교신학사 2천년 동안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였던
삼위일체가 삼신론의 논리를 극복하고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라는 세가지 질문으로 정리해 볼때, 몰트만은 스베덴보리의 기독교로서의 정통성의 유무를 떠나서, 가장 근접한 신학적 상상력을 저작을 통해서 드러낸 이로 뽑는다.
이런 몰트만의 관점은 필자에게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종교로서의 기독교보다 문화로서의 기독교가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기에 가능한 관점으로 다가온다.
우리 한반도의 역사속에서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실사구시의 실학에 대한 평가는 교과부편찬 공식 국사교과서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그중 단연 독보적인 인물로 다산 정약용을 꼽는 데에 이견을 제기하는 이들은 드물다. 목민심서 등을 비롯한 그 유배지를 자신의 학문함의 해방구로 만들고 펴낸 다양한 엄청난 저서들을 통해서 실학자의 대표적인 인물로 정약용을 제시하듯이, 유럽의 1700여년 축적된 기독교역사가 반영된 문화적 지층에서
당시 유럽의 모든 신앙고백을 하는 지성인들이 동의했던 것은 아니지만, 스베덴보리는 당시까지의 기독교역사를 집대성하고 다음 이정표를 제시한 이들 중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이였음은 틀림없다.
그럼 스베덴보리와 웨슬리가 어떤 관계였을까?
두 사람 사이에 교류가 있었을까요? 그동안 드러난 것은 서로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서신을 교류했던 기록은 남아 있다. 스베덴보리는 웨슬리에 대한 아무런 사전이해없이 자신을 통해서 정리되고 있는 신학적 저술이 가리키는 방향에 가장 근접한 이로 웨슬리를 지목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서신을 보내기 시작했는 데, 당시 웨슬리 주변에 있던 이들은 스베덴보리에 대한 곡해된 이해를 한 이들이 적지 않았음으로 웨슬리도 처음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가, 그 선입견이 떨어져 나가면서, 서로 반드시 직접적인 만남을 갖을 것을 소망하게 되었는 데, 69세의 몸으로 6개월 전도여행을 떠나는 일정을 마치고 돌아 오면 만남을 갖기로 했다가 1772년 스베덴보리는 작고하게 되고, 만남은 이뤄지지 못하게 된다.
웨슬리신학의 강점은 포용성과 신앙에 있어서의 이성의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로 본 존캄과 아우틀러의 입장을 전제하는 지평에서 보자면, 웨슬리는 결코 스베덴보리를 적대시하거나 이단시하거나 하지 않았다.
웨슬리 저작중에는 당시의 영국사회현실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이슬람교를 비롯한 타문화 종교권에 있는 이들을 향한 웨슬리의 포용적인 관점들이 저술되어져 있는 데, 필자는 이 부분이 혹시 스베덴보리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해 보게 되기도 한다.
이 스베덴보리와 그의 저작은 청소년들의 신앙교육지평에서 적지 않은 유효성을 제공한다. 실제 중고등학생의 위치에 있는 청소년들이 갑자기 \"하나님의 존재도 천국과 지옥도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기도하기도 힘들어요?\" 힘겨움을 호소할 때, 적절한 코칭으로 스베덴보리의 저서를 콤팩트하게 요약한 책들이 꽤 설득력있게 다가가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 부분은 긍정적으로 보자면, 헬렌켈러와 같은 이들이 스베덴보리의 저서들을 접하고 나서 느낀 해방감과 연결되는 측면이 있고 좀 조심스럽게 보자면,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을 수 있는 전문적으로 감리교신학 교육을 받은 이들의 코칭이 요청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썬다씽의 저서들과 비슷한 수준에서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서양의 근500년의 역사에서 세명의 천재를 꼽는 데,
밀턴
괴테
스베덴보리
이 세명이 가장 많은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일단 신학적 입장을 떠나서 비교종교사의 측면에서는 에이리 프롬의 소유와 존재에서 자주 인용되는 선불교의 스즈끼 선사가 스베덴보리를 접하고서
동양의 종교사상의 흐름에서 깨달은 자가 고다마 싯다르타 부처라면
서양의 종교사상의 흐름에서 깨달은 자는 스베덴 보리 부처가 가장 가까운 인물일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새교회 새예루살렘교회 등등의 이름으로 스베덴보리의 저술을 통해서 성서를 해석하는 기준을 삶고 있는 이들에 대한 소감을 전한다면 신학사상적으로는 매우 열려있는 듯 싶지만, 그들 사이에서 스베덴보리가 그 안에만 머물고 벗어나서는 안되는 세미도그마틱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기성교회의 교리주의적인 입장을 비판하면서도 본인들도 스베덴보리를 절대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들도 적지 않게 지적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리고, 스베덴보리의 저서는 웨슬리의 저작들처럼 구분이 모호하고 다른 주제이지만 매우 중복되는 지점들이 비일비재하다. 간결하게 요약하자면 반이상의 부분은 중복된 부분이 아닐까? 추정된다.
감리교신학의 강점은 깊은 강처럼 수없이 많은 지류들을 합류시켜서 때로는 저류로 때로는 상류로 포용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볼 때, 스베덴보리를 백안시하면서 이단으로 꼬리표부터 붙이고 다가가는 것은 경솔한 태도 인듯 싶고, 저서들을 접해보면 매우 흥미롭기 까지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고, 이 지점은 신학이라는 학문을 열린지평에서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귀한 인싸이트가 제공될 것이라고 본다.
간략하게 오늘 날의 입장에서 스베덴보리를 보자면,
과학자에서 영성가와 신비가로 거듭난 유형의 인물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