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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수가 받은 종교 재판과 사회 재판(독립 운동가?)
관리자
- 1863
- 2012-08-31 09:00:00
1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2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소하는지라 4빌라도가 또 물어 가로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저희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소하는가 보라 하되 5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기이히 여기더라 6명절을 당하면 백성의 구하는 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하고 포박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구한대 9빌라도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이는 저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11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는 내가 어떻게 하랴 13저희가 다시 소리지르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
1. 시작하는 말
지난 주일에,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영적 권위와 그에 대적하여 제거하려는 유대의 정치와 종교의 공권력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의 공권력의 대표들은 탁월한 지성과 공권력을 소유했지만, 예수님을 알아볼 만한 영적 지각은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복음 선교를 계속하시는 예수님을 체포하여 공회에서 정죄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총독인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빌라도의 법정에 넘겼습니다. 유대의 종교와 정치의 최고 지도층이 주도한 공회의 불법적인 종교 재판에 이어 행해진 빌라도의 재판은, 권력자의 불법적인 정치 재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빌라도 총독의 재판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없애 버리기 위해 서로 적대 관계였던 교권과 정권이 야합한 대표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종교와 정치가 야합하여 메시아를 죽인 것처럼, 교권과 정권이 손을 잡을 때마다 엄청난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정권에 대해 예언자적인 역할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를 심문한 빌라도 총독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는 유대의 공회는 새벽에 통치권자인 빌라도 총독의 힘을 빌려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려고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유대의 공회는 만장일치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예수님을 결박하여 빌라도에게 넘겨주고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자기들이 하는 짓이 이미 주 예수님이 예언한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언이란 크게 복을 받는 결과에 이르는 내용과 화를 당하는 결과에 이르는 내용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복된 결과에 이르는 예언에 맞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자기 백성들에게서 배척당하셨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현대 교인들의 인격과 생활 속에서 주 예수님을 찾아보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미 주 예수님이 그들에게서 배척당하신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인격과 생활 속에 주 예수님이 확실히 역사하고 계십니까?
유대 공회는 종교적인 죄는 로마법으로 처벌할 죄가 아닌 것을 잘 알았으므로, 예수님을 로마에 항거하는 정치범으로 고소했습니다. 예수님을 재판하는 빌라도 총독은 강퍅하고 잔인하고 완고하고 교만한 자요, 기회주의자요, 정치적 역량이 모자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심문한 이유는 유대 공회의 대표들이 예수님을 고발한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3:2을 보면, 유대 백성들을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로마 황제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자칭 왕 그리스도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유대의 왕 그리스도라고 자칭하면서 로마 점령군에 저항한 사건들 때문에 빌라도의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굴하지 않으시고,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정치적 의미의 왕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의 왕인 메시아이심을 밝히신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답변의 속뜻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이 로마에 대한 정치적, 혹은 군사적 반역자가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들을 위시한 무리에게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누가복음 23:4입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애가 탄 그들은 나서서 여러 가지로 고소했습니다. 누가복음 23:5에는, “무리가 더욱 굳세게 말하되 저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109:3 이하를 보면,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무고히 나를 공격하였나이다.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무수한 거짓 증언에 대해서 한마디도 변명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태도를 보이시는 예수님을 기이하게 여긴 빌라도가, 왜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으나 여전히 침묵하셨습니다. 권력의 노예인 빌라도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 리도 없고, 그의 침묵의 의미를 알 리도 없습니다.
공회의 수장인 대제사장을 비롯한 무리가 명절에 백성이 요구하는 죄수 한 명을 방면하는 전례대로 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 요구는 예수님을 재판하는 골치 아픈 사건에서 손을 떼고 싶어하는 빌라도에게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는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 제의는 그가 그들이 시기로 예수님을 넘겨준 줄을 알았고, 또 꿈을 꾼 아내의 충고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미 무죄라고 선언한 예수님을 마치 큰 범죄자나 되는 것처럼, 특사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총독으로서의 자신의 권한인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고, 무고자들인 대제사장을 위시한 무리에게 넘기는 기회주의자로서의 교활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불러 원수들을 파멸하시지 않고, 부당한 제의에 자신을 내맡기셨습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이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헌신적으로 성부 하나님에게서 부여받으신 일에 열중하셨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교회 안팎의 일에 열심을 다하여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3. 바라바를 요구하도록 선동한 대제사장 일행
대제사장을 위시한 지도층의 시기로 인한 살의가 얼마나 끈질기고 악독한지 모릅니다. 그들은 재빨리 바라바를 요구하라고 대중을 선동했습니다. 바라바는 로마군에 저항하여 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한 후에 체포된 자들 중 한 명인 정치범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을 위시한 지도층의 간교한 죄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나, 그들의 선동에 놀아난 대중의 잘못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경일 목사님은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유대인의 최대의 자랑인 성전을 모독한 자라고 선동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군중들은 예수보다도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였을 것이다. 군중이 꿈꾸는 메시아의 이미지(image)는 예수 같은 나약한 사람이 아니요, 바라바 같은 행동파였던 것이다. 그처럼 일반 군중의 구원에 대한 욕구는 종말적인 것이 아니요, 현세적인 천박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들의 충동을 들은 군중은 바라바를 석방해 달라고 아우성치게 되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그 대중은 영생의 주님을 저버리고, 생명을 빼앗은 자를 택한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고도 어처구니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현대인들에게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 대중이 의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법률 대신에 불법을, 평화 대신에 전쟁을, 사랑 대신에 증오를, 신령한 것 대신에 육적인 것을, 위의 것 대신에 아래의 것을, 영원한 구원 대신에 영원한 멸망을 택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천국 대신에 세상을 택한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을 포함한 대중은 영적 지각이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유력한 것은 대중이지만, 또한 믿을 수 없는 것도 대중입니다. 예수님을 환호하던 대중의 입술은, 단 며칠도 안 지나서 예수님을 저주하는 입술로 변했습니다. 야고보서 3:10 이하를 보면,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라고 했습니다.
바나바를 사면하라는 대중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빌라도 총독은 유대인의 왕은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가 사면되어야 마땅한 줄은 알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위태롭게 만들면서까지 예수를 구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는 소신을 펴는 대신에, 대중에 영합해 버리는 전형적인 정치꾼에 불과했습니다.
4. 맺음말
대제사장을 위시한 대중은 빌라도 총독의 비아냥 조의 말에 대단히 성난 반응을 드러냈습니다. 그들 모두는 예수님을 극도의 고통과 극도의 치욕인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사형에 처하라고 외쳤습니다. 그 끔찍한 대중의 아우성을 들은 빌라도 총독이 무슨 악한 일을 했느냐고 물었지만, 그들 모두는 더욱 크게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런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을 비롯한 그들 모두는, 그렇게 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관한 예언에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 자신과 후손들에 대한 저주가 되리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빌라도 총독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그는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대중과 야합하고 말았습니다. 바라바는 사면하고, 예수님은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2012. 8. 26.>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0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T 02-426-3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