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신 68학번에 관한 서대문에서 보는 다른 관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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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01 20:38:58
1. 교단 신학교라고 하나 다들 대한민국 법체계에서는 사립학교법에 의해 실행준칙이 제시되는 조직이다

2. 감신 68학번들의 각각의 면면들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함부로 한참 후배뻘되는 이들이 경거망동하고 있는 듯이 해석될 여지의 틈을 주시지들 마시기 바란다.

3. 1968년 최근 18대 대한민국 대통령대선에서 최대의 화두로 등장한 장준하 선생 목사께서 키워드로 제시하셨던 관점 <돈과 권력이 흘러 넘쳐도 사상이 살아 있으면 그 백성은 희망을 먹고 행복하게 살수 있다>

4. 필자의 개인적 체험을 전제하자면, 1987년 직선제 쟁취이후 적지않은 도서들이 판금이 되었는 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사상계>라는 잡지였고, 필자는 신촌의 윤동주의 친구 시인 그 분이 <그래도 강은 흐른다>라는 노고산 밑 자락의 그 대학교 도서관에서 사상계를 접하고 아버지를 졸랐다.

5. 그리고 영인본으로 아주 적절한 89년 새내기 가을학기의 학교공사 아르바이트 비용을 합해서 사상계의 전집을 구입하게 되었다.

6. 작금의 2012년 9월을 기준으로 1968~1970년대를 잘 알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평가하시지들 마시기 바란다. 최소한 감신 68학번은 목회적 역량과 신학적 역량이 가장 잘 조화되고도 배치된 학번이라고 필자는 이덕주 교수께서 저술하신 감신의 역사를 검토하고 감신학보를 검토하고 인정하게 된다

7.한 두명의 안타까운 처신으로 제발 50명에 가까운 한 학번을 폄훼하고 폄하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8. 필자의 감신에서의 13년의 신학함을 전제하자면, 감신역사에서 68학번만한 학번도 없었다.

9. 평가의 척도가 너무 나이브하고 치우쳐 있다고 본다.

10. 감신은 하나님께서 한반도의 역사에서 최초의 전초기지로 허락하신 성스러운 곳이다. 서대문 감신의 현재터는 조선의 왕들도 건드리지못하는 사간원을 비롯한 철저한 선비학자들의 연구가 집대성 되어 있던 조선 최고의 도서관 규장각이 있던 곳이었다.

11. 앞에는 내가 정신을 맑게하는 내가 차가운 내가 냉천이 흐르고, 뒤에는 서대문 19개동을 둘러싼 안산이 위치하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완벽했던 터였다.

12. 1990년대 학생운동의 쇠퇴를 정리하면서도, 감신이 언급되는 이유는 1995년 전체학생 유급과 정치적 이유로 재임용 탈락되었던 세명의 교수를 헌신적인 학생들의 결사체인 학생회를 중심으로 살려냈기 때문이다.

13. 이 모든 역량들은 그 쟁쟁한 수십년 전부터 선배들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14. 감신은 68학번을 포월해서 감신의 학번을 부여받은 모든 이들은 하나님이 한반도에서 처음부터 택하셨던 섭리로 함께 신학함의 공동체를 이뤘던 곳이다. 몇몇 특정인을 빙자해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시지 마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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