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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고향'을 찾아서
함창석
- 2048
- 2014-09-17 04:15:43
아침 식사 후 새벽기도 인도로 조금 피곤했는지 졸다 10시가 되어 고향 안흥 가리내로 출발했다. 죽마고우인 최선생과 함께 가기로 했기에 ‘이 편한 세상’에 들려 친구를 태우고 태장, 소초를 지나 전재터널을 넘어갔다. 예전에는 굽이굽이 길이 조금 험했으나 터널 개통 후 운행시간이 단축되었고 운전도 많이 편리해졌다.
‘안흥찐빵’으로 널리 알려진 고향 안흥시장을 바라보며 우회전 치악산국립공원 쪽으로 향하며 삼형제 바위를 바라보니 참 좋았다. 어린 시절 시냇가가 얼면 미끄럼을 지치고 여름이면 송사리 잡이에 헤엄까지 치며 놀았던 추억이 새로웠다. 길가 공원화된 곳에 들려 송강 정철 가리내 팔경시비도 읽어보고 우리 아버지 송덕비도 둘러보며 내가 작사,작곡한 ‘안흥찬가’ 비를 세울 자리라고 친구와 이야기도 나누며 꿈에 부풀었다.
64년전 1950년 6.25가 일어난 후 당시 경찰관이었던 우리 아버지께서 신혼이었지만 전쟁에 남쪽으로 쫓기며 대구 팔공산전투까지 참여하셨다가 인천원산상륙작전과 함께 북진하실 때 고향에 삼일 간 휴가를 오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1951년 10월 중순경 어머니 뱃속에 잉태된 나는 1952년 7월 20일 새벽에 태어났다고 한다. 평양까지 북진하셨던 아버지는 1951년 중공군의 개입으로 1.4 당시 상주까지 남하하셨다가 다시 휴전선까지 진격 1953년 7.27 휴전회담 후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한다.
추석을 전후한 몽골선교여행으로 벌초와 성묘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오늘 조상묘소를 찾고 있다. 선조 묘소,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중심으로 수양대군 세조임금과 단종이 얽혀 있는 시대부터 520여년간 이 땅에 살아온 조상들을 추모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늘날까지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복을 주셨음을 감사했다. 지금 나는 외손자 친손자 모두 4명이니 더욱 감사를 하다. 지금은 인삼포로 7년간 임대가 거의 끝나 태양열발전에 적합한 곳이라 판정되어 3000여평에 내년에는 태양열발전 업체로부터 태양열발전을 하도록 30년간 장기임대 요청을 받고 있다.
성묘후 고향에 남아계시는 작은어머니께 들려 커피 한잔을 마셨다. 70이 넘은 작은어머니는 불구에 요즘 중풍으로 하반신 거동이 불편하시다. 아랫동네 안식교에 나가며 돌봄을 받고 계신다. 내가 5만원 용돈을 건네니 친구도 5만원 용돈을 건네며 어린 시절 국수를 해 주시던 기억이 난다고 하였다. 조카 친구가 건네는 돈이 더욱 감사하며 매우 좋아하셨다.
차를 몰아 상안리 친구가 살던 옛집에 들려 보았다. 리모델링을 해서 전원주택 같은 분위기었다. 친구 조상묘소에 들려 성묘하고 향후 후손들이 묘소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돌아오는 길 초등학교에 들려 교가비에 대하여 이야기 하며 일본군가 문제로 인터넷에서 회자될 때 속성 작사한 것을 다시 정리하여 동문회 통과로 개정하는 일에 나는 힘을 썼는데 그때 내가 개사한 노랫말이었다. 매우 기뻤다.
강림순대로 2시가 되어 배를 채우고 부곡쪽에 있는 태종대와 얽힌 이야기로 태종 이방언 스승 원천석을 찾아 넘었다는 수레너미 차유로 들어가니 온 동네가 전원주택화 되어 있었고 지금도 여러 군데 개발 중 이었다. 다시 안흥시장으로 돌아와 다른 친구 찐빵가게에 들려 인사후 차대접을 받고 횡성 안흥 미래에 대하여 담소하고 찐빵축제에 관하여 돕기로 약속하였다. 친구가 건네는 선물을 싣고 원주로 향하다 소초 또 다른 친구 산소에 들려 돌아보고 농부를 만나 이야기 하는 중 친구 산소를 찾는 것이 드물다는 칭찬을 들으며 돌아왔다.
친구를 ‘이 편한 세상’ 아파트 앞에 내려주고 내년부터 들어갈 살 아파트가 있는 혁신도시를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보람과 즐거움이 함께 하는 날이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