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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사랑의 반응(요일3:13-17) 9. 14 주일낮 설교문
관리자
- 2231
- 2014-09-16 02:56:08
그는 깡통 속에 있는 복권에 관심도 없이 구걸을 하고 있습니다. 깡통 속에 당첨된 복권이 있는데도 구박을 받으며, 세상을 한탄하며 그렇게 절망적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복권 생각이 나서 혹시 나하고 맞춰보다가 당첨된 것을 알고 신나게 한강다리로 뛰어갔습니다. 그는 뛰면서 지금까지의 서러운 거지생활이 한 순간에 날아가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꿈에도 그리던 좋은 집과 옷 자동차 맛있는 음식이 이제 모두 자기의 것이 되었고 그를 억누르고 슬프게 했던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깡통을 한강에 던지며 고생 끝 행복시작하며 만세를 부르는 순간 세상에 복권이 깡통에 들어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다시 새 깡통을 구입하여 처량한 신세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 거지에게 당첨된 복권이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그의 모든 문제는 해결된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꿀 복권이 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니 불행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절대 가질 수 없는 한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한 가지를 깨닫게 되면 풍성한 삶이 시작되고 세상의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그토록 행복하게 살아가게 할 근본적 축복을 주었음에도 우리가 이것을 알지 못하여 어둡고 답답한 삶을 언제나 살아가고 있습니다.
탕자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것 하나로 그 마을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을 알지 못하니 아버지에게 적대적이었고 반항적이었습니다.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는 그 사랑을 알지 못하여 가출하게 되었고 알지 못하여 모든 행복을 빼앗기고 거지가 되고 몸은 병들고 돼지와 동류가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이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것을 알 때 우리는 인생길에서 진정으로 행복하고도 풍성한 삶을 얻습니다.
모든 수고와 짐이 내려지며, 어둠이 사라집니다. 천국으로 변하는 세상을 보게 됩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얻습니다.
미국의 로건이란 소년이 애지중지 기르던 송아지를 잃었습니다. 그는 한없는 슬픔을 어린마음에 갖게 된 것이지요.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답니다. 내 아들도 죽었다.
로건은 주일학교에서 들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죽게 하셨다는 말씀을 떠 올리며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프셨을 가를 알게 되었고 그와 함께 하나님이 우리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되었답니다. 그 순간 로건의 슬픔을 사라졌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어 자청하여 방송국에 전화하여 간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며,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분입니다. 이것이 아가페적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도 사람의 수준에서 생각합니다.
그 큰 사랑을 깨닫든 사람마다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뭄에 단비가 내리면 모든 만물이 새로워지듯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마다 나타나는 반응이 있습니다. 단비도 모든 만물을 새롭게 바꾸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의 변화와 새로워진 반응은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땅을 다 주겠다고 했고 자기와 늘 한상에서 밥을 먹자고 한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요나단의 진정한 사랑에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손에서 다윗을 몇 번이고 살려주었고 교묘한 계략을 꾸며 탈출시켰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라 했고 그는 자신보다 다윗이 왕이 되어야 함을 고백했습니다. 요나단은 다음에 왕위를 물려받을 사람임에도 이런 사랑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라일벌이 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다윗이기에 그 아들 므비보셋에게 놀라운 사랑의 반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마음속에 확신하면 놀랍게 반응합니다.
지금 원망 불평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사랑을 아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은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이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우리 안의 미움과 원망을 모두 불태우게 됩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였다는 말씀을 우리는 실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져야 합니다. 심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을 깨닫는 자, 아는 자 입니다. 또한 확신하는 자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오직 성령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지식으로 안 됩니다. 오늘 이와 같은 설교를 들었다고 사랑을 깨닫겠습니까!
기도하십시오! 성령을 구하십시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지식이 아닌 마음으로 깨닫는 자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아는 자만이 놀랍게 반응 합니다. 바울처럼 스데반처럼 그리고 슬픔 많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 사랑을 얼마나 아느냐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