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웨슬리의 칼빈주의에 대한 논박..

김성국
  • 2169
  • 2014-09-14 07:22:21
**


이 글은 제가 대학원 논문을 마치고나서.. 교회 성도님들과 공부하면서 작성한 글입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조금 전문적이라 어려울 수 있으니.. 감안하셔서 보셨으면 합니다.)


.......


존 웨슬리의 칼빈주의에 대한 논박..


웨슬리는 1752년에 칼빈주의의 예정론을 반대하기 위하여 『칼빈주의자와의 논쟁』이라는 글을 발표하였는데, 그는 칼빈의 다른 부분, 말하자면 원죄의 교리 등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을 견지하였으나 예정론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했고 그의 생애가 끝나기까지 이러한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논쟁서는 웨슬리의 신학과 입장을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보여주는 명저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바, 웨슬리는 이 책에서 칼빈주의의 예정교리와 유기교리의 폐단을 잘 지적하고 있다.

웨슬리는 이 책에서 예정(豫定)교리(the decree of election)와 유기(遺棄)교리(the decree of reprobation)의 공통분모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미 선택의 교리라는 말 자체는 유기교리를 전제한 이론이므로 같은 태내에서 출발한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며, 다만 예정론의 교리에 대해서만 심각하게 숙고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웨슬리는 선택의 교리가 갖는 의미는 두 가지 중에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특수한 목적을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에 대한 선택을 말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영원한 축복을 누리도록 선택하신다는 것으로, 이것은 또 한편의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반드시 유기(버려짐)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물론 웨슬리는 선택이 하나님의 결정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확신하지만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서만은 성서가 그들의 선택교리에 대해 전혀 증거하지 않는다면서 조건적인 선택의 교리를 말하는 많은 성구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웨슬리는 이러한 성서적인 모든 주장은 반드시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을 바탕으로 하여 진술되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

\"그대의 주장은 순전히 성서에 근거가 없는 하나의 대담하고 무정견한 발언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거기에는 하나님의 공의를 그의 다른 속성 특히 자비와 분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내포된다. 그러나 … 그의 모든 속성은 서로 나눌 수 없으며 그것들은 일순간이라도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의 논리는 비성서적일 뿐 아니라 불합리한 있을 수 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웨슬리는 예정론자들이 그들의 교리를 주장하는 성서구절로 유명한 로마서의 ‘옹기장이 비유’(롬 9장)를 언급하고 있는데 웨슬리는 이 토기장이 비유의 명쾌하고 예리한 분석을 통해 그들의 예정론의 교리가 허구에 바탕하고 있음을 그리고 자신들의 자가당착적인 논리에 기인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먼저 웨슬리는 이 옹기장이의 비유의 원천은 복음서의 속에 나타난 예수의 ‘포도원의 비유’(마 20장) 속에 나타난 포도원의 주인의 행위에 대한 먼저 들어온 자(유대인들)들의 항변에 대하여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마 20:15)는 말씀을 근거로 한 것이라고 못 박고 있다. 말하자면 사도바울이 한 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롬 9: 21)는 질문은 예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인 바,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의지를 천명하는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고 웨슬리는 말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과 의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고 반문하면서 로마서 9장의 본문에 앞서 있는 4장부터 8장까지의 본문 내용들을 살피고 있는 바, 4장은 구원의 필요성을 말씀하는 장이고, 5장과 6장은 성도의 거룩함과 받을 축복에 대해서 서술한 장이며, 7장은 율법 아래 있는 자의 비참함에 대해서 쓴 것이며, 8장은 믿음의 고난에 대한 격려와 아울러 사람으로 하여금 벅찬 소망과 기대를 가지도록 격려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본문적 배경을 가지고 사도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고 한다.

“토기장이가 자기의 흙덩이에 대해 권리가 없겠는가?”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내리시지 않은 자비를 이방인에게는 내리시어 불공평한 처사를 하신다고 불평하는 유대인에 대한 사도바울의 답변의 일절이다 … 즉 어떠한 조건 아래서든지 영원히 귀하게 쓰거나 천하게 쓸 그릇을 낼 권한이 없겠는가? 특히 믿지 않는 자에 대하여 “그의 진노를 나타내시고 그의 권능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시면서도 그 멸망 받게 되어 있는 진노의 그릇에 대하여 꾸준히 참아주시고” 그의 선의와 참을성을 나타내신다면 그것이 어떻다는 말인가? 그래서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기로 미리 준비하신 자비의 그릇들에 대하여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막론하고 자기의 영광스러운 사랑을 알게 하려 하셨다면 그와는 반대로 진노의 그릇들에 대하여 그 해당한 갚음을 내리시는데 대하여 무슨 대꾸를 할 것인가?

말하자면 사도바울은 이 ‘토기장이 비유’를 통해서 모세를 통해 영원하신 언약을 체결하셨던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굳게 믿었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행위는 고려치 않고 약속을 변개하신 하나님에 대해 저항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능히 당신의 뜻과 의지대로 행사하실 수 있으며, 이에 대하여 아무도 그러한 하나님의 행위를 비난하거나 힐문할 수 없다고 못 박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발생하는 하나님의 임의의 약속과 변개에 대한 의문에 대하여 웨슬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변개에는 일정한 원칙과 조건이 암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절대권한은 그의 공의를 대행할 수 없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변개에는 ‘공의’라는 원칙이 엄연히 존재하는 바, 그것은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약속을 충족시킬 수 있는 믿음이 요청되며,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써만이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인 인간에게 전가(imputation)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당연하게 이 그리스도의 피를 거절하였고 자신들의 죄를 대속할 그리스도를 배척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위대한 조상인 모세를 통하여 약속했던 사실의 파기를 의미하며, 그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하나님만의 일방적 결정이며 임의대로 조처하시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 - 웨슬리는 반문하면서 예정론자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묵과하고 그들의 논리를 성서에 입각한 교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사역을 근본적으로 호도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인가? 웨슬리는 반문하고 그것이 만일 하나님의 독단적인 의지에 의한 선택규정에 의하여 선택자와 유기된 자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광된 것을 구성하는 약속이라든가 섭리라든가 심판이라든가 하는 내용들이 사라짐으로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웨슬리는 비판한다. 100명의  사람 가운데 한 명만이 선택된 자이고 99명이 유기된 자라면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그러므로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목적과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웨슬리는 주장하고 있다.


.

.

이전 서종원 2014-09-14 충청연회 봉명종 감독님 부친상을 알려드립니다
다음 박기창 2014-09-15 정신이 현명하면 말도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