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실패할까?

오재영
  • 2010
  • 2023-05-11 16:17:06
사람마다 원하는 개인이든 국가든 배부르고 편안하여 등 따스한 것이 능사는 아니다. 문제는 다가오는 고난과 시련을 어떠한 마음의 자세로 대하는가에 따라 오히려 이전보다 더 나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가 있다. 문제는 어떠한 자세로 이해하고 따르느냐 에 달려 있다.

목회의 과정도 비슷하다. 누구나 소명자의 마음으로 출발하는 이들마다 본인이 더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갖게 되는 소원의 마음이지만 그 역사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 앞에 다가온 남이 모르는 시련의 과정에서 사람과 환경을 기대하던 마음들이 허물어지고 오직 자신을 부르신 그 소명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며 이해할 때 비로써 한 사람의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교도하는 리더의 위치에 서게 된다. 그 시련과 위기의 강도에 따라 초심을 잃지 않음은 물론 함께 동행 하는 이들에게도 그가 받은 시련의 연단 만큼 깊이 있는 할 말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개인적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으로 등장하였을 때, 그저 평범한 범인(凡人)으로 생각을 한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의 윤석열 대통령이라면 임명하였을까? 그 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겠으나 여러 시련의 과정을 통과하여 남들은 수십 년을 노력해도 이루지 못한 그 자리를 짧은 기간에 인정을 받아 오늘의 제 20대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어쨌든 5천만의 운명이, 발전이든 퇴보든 앞으로 5년간 그와 그가 이끄는 정부의 책임 하에 있게 되었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5년간은 팬더믹의 와중에 참으로 다사다난한 “한마디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간”이었다. 지나온 정부마다 비슷한 과정이었으나 소위 “캠코더”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함량 미달의 인사들이 막중한 자리에 올라 온갖 분야에서 당연한 상식을 비 상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최근에 여러 분야에서 그의 퇴진을 촉구하는 이들이 목소리들을 높이고 있으나 나는 개인적으로 역설적인 의미를 둔다. 오히려 정상적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그들의 악역(惡役)으로 인하여 소홀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들이 더욱 보완이 되어 좀 더 상식적인 정부가 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아무려면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만 할까? 지금도 가장 압권(壓卷)은 국가의 안보를 가지고 사기를 친 일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평화 쇼로 순진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려 이성을 마비 시킨 감정으로 선동하여 함량 미달의 인사들이 무더기로 당선되어 국가에 짐이 되게 한 일이다.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만 두고두고 부끄러운 교훈의 흔적이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등장하는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내용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떻게 로마가 천 년 동안 존재하였는가? 고대 지중해에서는 로마와 카르타고를 비롯한 국가들이 패권(覇權)을 두고 경합을 벌였다. 냉전 같은 싸움이 500년간 지속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나라들은 소멸하고 카르타고만이 존재하게 된다. 그런 말이 있다. “강한 적보다 더 큰 동기부여는 없다” 개인이든 국가든 대적이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로마는 카르타고로 인하여 경거망동하지 않은 채 긴장을 유지하고, 항상 대비하는 자세로 살았다.

일진일퇴(一進一退)의 위기를 겪으며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로마가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적국 카르타고의 한니발에 대한 원한이 뿌리 깊게 밴 로마는 지녀온 관용을 버리고 카르타고를 포위하고 불태우자는 의견으로 원로원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들끓었다. 유일하게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령관 스키피오만이 끝까지 반대하였으나 그의 반대가 분노의 여론을 잠재우지 못하고 결국에는 성을 포위하고 잔인하게 불태웠다. 그 스키피오는 불타는 카르타고를 보면서 울었다고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스키피오의 눈물’이다. 그가 왜 울었는가? 그는 ‘불타는 카르타고에서 불타는 로마를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반대 세력을 완전히 제거해버린 로마는 긴장이 풀려 방종으로 인한 내분으로 천년의 역사가 사라지고 말았다.

개인이든 국가든 저항이 사라지면, 생명력도 사라진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모든 행정을 통할 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직(大統領職)은 개인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출세와 패거리들을 끌어 모아 생업으로 삼는 군림의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막중한 소명감(召命感)으로 현재와 미래 조국의 운명을 책임진 두려움으로 널리 인재를 두루 구하여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하면 된다. 모두가 사람을 귀중이 여기며 더욱 낮은 자세로 섬길 때 가능한 일이다. 이는 “권세는 자기를 낮추어 겸손이 섬길 줄 아는 사람의 손에 쥐어질 때에만 안전”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전하는 이야기지만 건국 초기의 혼란기에 흔적을 남기신 인촌 김성수 선생께서는 평생을 지켜온 자신만의 신념이 있으셨다고 한다. 주변에 몰려든 수많은 이들을 대하면서도 그 기준은 언제나 멀리해야 할 사람들의 기준을 (아첨하는자, 동료를 비방하는자, 편가르기를 하는자)들을 멀리하고 사람들을 두루 살펴 발굴하여 “적재적소”에 세웠다. 그 때문에 그가 몸담은 한민 당(黨)에 분쟁이 종식되었다. 이것이 인격과 품격을 구비한 지도자의 선한 영향력이다.

오늘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도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한 더욱 발전하는 대통령과 정부를 기대해본다. 올바른 성공의 열매는 현재와 미래 모두가 공유하나 실패 또한 개인만의 불행으로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 드린다. 조국의 평안을... - 샬 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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