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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아는데 공약은 모르는 감독선거-작심비판
이재신
- 2203
- 2014-09-20 23:48:13
도대체 교회는 뭐하는 곳인가?
초대교회는 혹독한 핍박의 상황에서도 서로를 위해서 온전히 자기를 희생하는 공동체였건만 오늘의 교회는 그와는 반대로 다분히 자기 욕심을 위해서 타교회나 타교파를 밟고 희생기키려는 이기적인 집단이 아닌가 한다.
세상 정치 권력은 억지로라도 약자를 위한 법령과 제도를 만드느라고 경쟁이 한창인데 반해 불행하게도 교회는 이웃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작은 교회가 문을 닫고 동료 목회자들이 배를 곯고 쓰러져 가는데 멀뚱멀뚱 바라만 보니 기가 막힌다.
교회 하나를 세우려고 그토록 목숨을 내놓고 활동했던 선교의 역사를 기억 속으로만 알고 있는 오늘 우리는 과연 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반대로 생색내기 행사나 감독들의 품위를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을 펑펑? 써대는 현실에 할 말이 없다.
가난과 청빈의 대명사요 그래서 부동의 ‘역사의 성자’로 불리는 프란체스코라는 이름을 교황이 꿰차고 다녀도 자유롭게 공격할 수 없는 한계치에 이른 <큰부자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상의 기업이야 노조라도 만들어서 기업주를 감시하고, 국민들은 선거권으로 지도자들을 심판해서 자기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건만, 힘없는 목사와 그 구성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존재요, 거수기에 불과하지 않는가?
능력과 실력의 결과물을 갖고서 무슨 말이냐고 한다면 그것은 세상의 국가나 기업만도 못한 태도가 아닐까?
자리가 높아지면 누려야 할 권력이나 받아야 할 대접보다 섬기고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더 막중해 진다는 평범한 상식조차 무색케 하는 오늘의 교권다툼이기에 선거 때마다 신물을 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매번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감독들의 얼굴은 알아도 그들의 공약은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또한 어떤 공약을 어떻게 이행하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물론 나의 게으름 탓이겠지만...
정권의 최 정점에 있는 박 대통령도 “정치는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던가?
세상은 그나마 기득권과 비기득권으로 대별하여 여야가 싸움이라도 하건만 교회는 이미 약자의 자리는 어느 구석도 없이 기득권 대 기득권의 나눠먹기가 된지 오래지 않는가?
부끄러운 일이지만 돈과 숫자는 당연히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선행 조건이 돼 버린 것이다.
사도 야고보의 지적처럼 “평안히 가라, 배부르게 하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주지 않는 뻔뻔한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집단이 교회라면 너무 웃프지(웃기고도 슬프다는 신조어) 않는가?
혹자들은 그거야 자기 책임일 따름이지 무슨 본부나 대형교회의 책임이냐고 볼멘소리를 던질지도 모른다.
작은 교회가 관심이나 돌봄 대신 소외와 무시의 대상이라면 무슨 장래가 있을 것인가?
너나 할 것 없이 소위 <목회의 성공>을 위해서 날뛰고? 있는 현실, 성공의 우상화, 인간의 우상화, 소멸을 두려워하여 우상놀음을 벌이는 현실은 기독교의 삼대요체인 성육신, 십자가, 부활과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관속에나 있어야 할 천주교가 아직 이렇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욕과 탐욕으로 사는 신부들이 왜 없겠을까마는 전체적으로는 균형과 조화가 그들의 최대 강점이 아닌가 한다.
물론 똑똑하신 분들은 구원론이 어떻고, 교황이 어떻고 하면서 보기좋게 천주교를 몰아세우는데 익숙하시겠지만 그런 문제는 별도로 하고서 하는 말이니 용서하시라.
사분오열 찢기고 갈려서 허구헌날 명예욕, 물질욕, 권력욕에 콧잔등 성할 날이 없는 대형교회의 목사들보다야 구교의 신부나 교황에 대해 훨씬 더 낫다고 세상은 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해서 그 낯선 중세의 케케묵은 예배형식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찾아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각설하고 개신교는 정신 제대로 차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다.
허나 내 생각엔 아직 정신 차리려면 멀었다.
주님께서는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던가?
말 그대로 이웃은 우리 주변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누가가 기록한 ‘이웃’은 한 걸음 더 나가서 힘없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말한다.
누가 그들을 찾아가서 닦아주고 어루만져주고 위로해 줄 것인가?
한낱 레위인과 제사장 같은 사람들이 천국을 증거한답시고 설치고 다닌다면 천국은커녕 세상만도 못한 하등그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벌써 그런 현상들이 잘 나타나고 있다.
대학생들에게 “교회 다니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해서 들면 교수 왈 “아직 교회 다니는 사람이 있나?” 한다는 것이다.
뭘 몰라서 그저 종교라는 허울에 싸인, 알맹이는 없는 단체에 속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라~!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교회의 질적 수준이 날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교회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에 거품물고 항변하는 거룩?하고 신실한 목사님이 기시다면 용서하시라~!
미국에서는 예수 없는 교회가 등장했다는 소식이다.
달콤한 언변과 명품강의 정도라면 오늘날 얼마나 많은 지식인과 전문가가 널렸는가?
헛소리, 헛경쟁, 헛폼은 하루빨리 집어치워야 한다.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죽음으로 나누신 분!
물과 피까지 다 쏟으셔서 세상을 구원하신 분!
마지막까지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하시며 최후의 동정마저 뿌리치신 분!
우리가 아는 예수는 이에서 더도 덜도 아니지 않는가?
천국이라고 하는 거창?한 구원론 하나로 뭇백성들을 쉽게 모으던 시절은 갔다.
그때를 그리워해도 소용없는 노릇이다.
루터의 개혁을 기준으로 본다면, 천주교는 아직도 지지부진하다고 하겠고 개신교는 그만도 못하게 역주행을 하고 있다고 하겠다.
천동설을 끌어안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던 중세교회의 우를 다시 범해선 안 된다.
뒤가 아니라 앞을 향해 나가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