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인 비판을 하지 말라시니

관리자
  • 2012
  • 2014-09-19 19:28:52
1. 시작하는 말

왜 비판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어기고, 잘잘못을 따지는 비판을 하느냐고 남에게 말하는 것도 비판하는 것입니다. 물건을 살 때에 “이 회사 제품이 저 회사 제품보다 더 싸고 좋다.”라고 하는 것도 비판입니다. 이 책 내용이 감동적이라거나 편향적이라거나, 재미있다거나 재미없다거나 진짜라거나 왜곡이라거나 하는 것도 비판하는 것입니다.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을 두고 잘한다거나 못한다거나 깨끗하다거나 더럽다거나 하는 것도 비판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종교의 성직자들을 두고 영적 지도자라거나 시정잡배만도 못한 강론자라거나 하는 것도 비판입니다. 교사가 학생들을 두고 우수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모범적이라거나 말썽쟁이라거나 하는 것도 비판입니다. 이와 같이 비판이란 일상생활 속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비판하지 말라고 하신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2.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교훈

한국어 사전에는 비판을 사물의 진짜와 가짜,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평가하여 정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또, 잘잘못을 들어 따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라고 교훈하셨습니다.

“비판하지 말라”의 “비판”의 원어는 크리네테(κρίνετε)이며 ‘올바른 판단에 도달하다’, ‘정죄하다’, ‘다스리다’, ‘심판하다’, ‘판단하다’, ‘비판하다’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 또는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그 사람을 심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판하는 것은 사랑하라는 명령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호하게 금하시는 것입니다. 비판 곧 심판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하는 우리가 정말 옳은가 하는 문제와 우리의 비판 기준이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벵겔(J. A. Bengel)은 “지식, 사랑, 그리고 필요성이 없이는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여기서는 내적인 의의 규정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하기 좋아하는 악한 눈을 금하는 것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올스하우센(Olshausen)은 “의의 길은 남의 죄가 아니라 자기의 죄를 찾는 데 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힐렐(Hillel)은 “네가 네 이웃의 입장이 되기까지 이웃을 심판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지 않는 한, 올바른 심판은커녕 올바른 판단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3호에 사는 부부는 금슬이 좋았지만, 4호에 사는 부부는 툭하면 말다툼을 하고, 종종 격투기를 하고, 물건을 던지면서 싸우느라 쿵쾅 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3호에서는 부부가 얼마나 금슬이 좋은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 승강기 안에서 4호에 사는 남자가 3호에 사는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부부가 화목하게 지내는 비결이 뭐지요? 아주머님이 참 재치가 있으시고, 웃는 상이시던데요.” 그러자 3호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뭘요. 우리 부부는 중대한 일에 대해서는 제가 결정을 내리고, 사소한 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아내가 결정을 내리기로 약속했거든요.” 4호 남자가 “그게 무슨…….” 그러자 3호 남자가 보충 설명을 했습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중대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거죠!”

3호 남자는 차마 ‘4호에서 싸우는 소리가 날 때마다 당신이 참 부러웠어요.’라는 말은 못했습니다. 4호 남자 역시 차마 ‘에구! 꼭 쥐여 사네!’라는 말은 못했습니다.

부부 사이도 그렇고, 인간관계의 기본은 심판이 아닌 사랑입니다. 스티어(Stier)는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고 용서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따라 남들을 대해야 한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우리가 남을 심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비판 곧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남을 비판하거나 심판하는 경우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는 유대의 속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람을 비판하거나 심판하는 그 판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는 사람은 남을 재는 척도대로, 즉 남을 비판하는 기준으로 하나님께 그대로 받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黑崎幸吉은 “영적으로 높은 곳에 이른 자의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은 영적 거만으로, 이것으로 사람을 비판하는 것, 특히 충분한 사랑과 동정과 지식을 가지지 않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남을 비판하는 자는 세상 끝 날에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비판을 받을 것이다. 어떠한 사람일지라도 심판을 받지 않을 만큼 완전하지는 않다. 다만 사랑을 가지고, 특히 그리스도를 대하는 사랑을 가지고 비판할 경우는 있을 수 있다(고전 5:3, 12, 6:1-4). 그러나 이러한 경우라면 같은 양으로 헤아리게 되는 일은 다행한 일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남을 비판하고 심판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에 대해, 예수님은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외경인 도마복음의 말씀 26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네가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지만, 네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기둥)는 보지 못한다. 네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내면 네 형제의 눈 속에서 티가 빠지는 것을 분명히 보리라.” 한국에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라고 하는 비슷한 속담이 있습니다. 이러한 위선적 행티는 원죄 아래 출생한 인간의 보편적 습성입니다.

상대를 비판한 것은 물론, 비난과 비방을 한 그대로 처신하는 공직자들도 있습니다.
모 시교육감에게 정실 인사를 했다고 비판하고 비난한 후임 시교육감이, 비서실에 근무하는 측근 5명을 특진시키려는 것을 정당하게 비판한 시교육청 일반직공무원노조 위원장의 이메일을 검열한 후에 삭제했습니다.

그 교육감은 자기가 비판하고 비난했던 짓을 그대로 행하고, 게다가 내부 직원들의 언로를 막는 짓까지 저지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은 보다 더 큰 잘못과 흠이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보다 작은 잘못과 흠을 고쳐 주겠다고 하는 인간의 위선적 습성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들보가 있는 눈으로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에 대한 정확한 분별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눈 속에 티가 있는 사람이 눈 속에 들보가 있는 사람의 말을 듣기는커녕 역겨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에 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너나 잘하세요.”

저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좀 연구하면서 목회를 해서 그런지 언젠가부터 제 눈에는 똑바른 사람이 한 사람도 안 보이는 겁니다. 보이는 사람마다 비뚤어지고, 어떤 여자의 눈썹은 발로 그렸는지 아래 위 두 개씩이고, 어떤 눈썹은 비정상적으로 두껍고, 어떤 남자의 코는 수술이 잘못 됐는지 콧대가 반듯하지 않고, 입술은 반듯하지도 않은 게 왜 그리 두꺼운지……사물도 테두리나 무늬 등 똑바른 게 없는 겁니다. 어지럽기만 합니다. 제가 난시이거든요. 게다가 노안까지 겹쳐서 제 눈에 똑바로 보이는 게 없는 겁니다. 이 안경이 위는 난시용이고, 아래는 노안용입니다.

자기 눈 속에는 들보가 있으면서 남의 눈에 티를 빼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의 헬라어 휘포크리타(ὑποκριτά)는 자기의 악하고 불의한 의도를 숨기거나 가장하고, 칭찬과 유익을 얻기 위해 위선적인 언행을 하는 위선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직접적으로는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 교권자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3. 맺음말

사람이란 자신의 잘못이나 흠은 잘 보지 못하면서 남의 잘못이나 흠은 잘 보고 비판하고 비난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비판 또는 심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남의 잘못이나 흠을 모른 척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취지는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에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먼저 회개하여 눈이 정결해진 다음에야 남의 눈 속의 티를 정확하게 보고 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정확한 판단력을 가질 수 있도록 자기 성찰을 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비판해야 할 것입니다.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2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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