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공식(시50:15) 9. 21 주일낮 설교문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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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4 08:40:04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신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공식을 보게 됩니다.
수학공식은 변 할 수 있어도(새로운 공식이 나오면) 이 하나님 나라의 공식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담 이후 주님 오실 때까지 변하지 않는 공식이지요!
무엇이냐면, 환란 날을 주님이 주신다는 것과 그 환란 날에 인간은 하나님을 부르며 찾는 다는 것과 그러면 하나님은 그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건짐 받은 그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지요.
객지에 나간 자식이 어려움이 있어야 집에 전화 하듯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너무 잘 아시잖아요. 우리를 만드셨으니!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환란은 주님이 우리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환란을 당한 사람마다 주님을 부릅니다.
한강에 다리가 부족하여 얼음을 타고 건너던 시절에 스님이 얼음이 꺼지니까 아이고 하나님 하면서 빠지더라는 것인데! 환란 날에 인간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불치병으로 판명 받은 사람들이 예배당이나 성당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드라마나 영화에 참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절간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에 나와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기적을 많이 들어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제가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어떤 스님이 있는데 스님이라 통화하기도 싫어서 그를 알고 있는 분에게 전화로 물어 보라했습니다. 나는 옆에서 들었지요. 불경책이나 부처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책 중에서 성경에 나와 있는 기적을 기록한 것이 있냐고요!
그랬더니 “진언”이란 책이 있는데 거기에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시주하면 그 공덕으로 삼라만상을 덮을 수 있는 양식을 얻는다는 가르침이 전부랍니다.
그건 그런 기적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고 공덕을 베풀라는 가르침이었던 것이지요.
성경에 있는 오병이어 같은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기적이 기독교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환란 날에 주를 부르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진정 사람의 본성이기에 지으실 때부터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환란을 당한 인간은 주를 부릅니다. 또 주님은 그날에 주를 부르랍니다.
환란 날에 주님은 우리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 첫 번 째 공식입니다.
두 번째 공식은 환란 날에 주님을 부르라는 것입니다.
환란 날에 주님을 부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주님은 그 환란을 통하여 내게 가까이 오기를 원하시는데 계속 피하고 나아가지 못한다면
마치 집나간 탕자가 돌아오지 않는 한 점점 비참해져 가듯이 그렇게 수렁에서 허우적거릴 뿐입니다. 히스기야가 벽을 향해 기도했듯이 환란을 당한 이들은 그 마음이 가난해지게 되고 오직 주님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은 고난과 연단의 시간에 하나님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부흥사가 개척 때 얘기를 하는데 쌀이 떨어져 저녁거리가 없어서 아내에게 제안하기를
저녁 먹을 시간 쯤 심방을 가자고 했데요. 왜 그러냐고 묻길래 심방 끝나면 저녁시간인데 그냥 가라하겠냐 했다는 것이지요. 그랬더니 사모는 낯간지럽게 어떻게 그러냐고 차라리 굶자고 하더라나요. 부흥사들은 원래 얼굴이 좀 두꺼워요! 그런데 난 안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들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가자 커니 굶자커니 옥신각신하는데 문을 열고 교회 집사님인지 권사님이 쌀을 한가마니를 내려놓더래요! 시골에서 쌀이 몇 가마 올라와서 가져오는 것이라면서! 그런데 그 쌀 가져온 양반은 안 보이고 하나님만 보이더래요!
이 쌀을 하나님이 보내 주셨다고 확실히 믿게 되더래요!
부요하고 평안하고 염려가 없을 때는 모든 것이 우연이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먹을 것이 많았다면 우린 현미쌀 아니면 안 먹어 하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교회에 오시면서 하나님이 내게 건강 주셔서 이렇게 멀쩡히 나왔다고 고백하며 오신 분 있나요? 그러나 한 6개월 누워있다 오늘 오셨다면 건강을 주신 주님이 크게 느껴질 것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비오기를 기도할 때 하늘에 종달새 맵세 참새 독수리 많은 것들이 날았겠지만 아무 것도 안보였고 구름이 손바닥만 했지만 하나님이 일으킨 것으로 보았습니다. 환란과 시련의 때엔 세미한 주님의 음성도 듣게 되고 주님의 손길이 보입니다.
그래서 환란과 연단을 주시며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세 번째 공식은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신 다는 것입니다.
과연 주님은 우리를 도와주시고 외면하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님께 나왔던 각종 병든이들나 문제를 가진이들이 해결 받지 못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다 도와 주셨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건지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건지시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치료를 할 수도 있고 바울처럼 감사함으로 이기게 하시기도하시고 꼭 눈에 보이는 것이 해결되어야 건지시는 건 아니지요.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이겨나간 다면 건짐 받은 사람입니다.
넷째는 건짐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고 건넜던 백성들은 모두 다 소고치며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건져주시는 분입니다. 건짐 받은 사람마다 감격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유다의 여호사밧 이스라엘의 여호람 에돔 왕 이 연합군이 모압을 치기위해 에돔광야를 3일 걸어가다 물이 떨어졌습니다. 앞으로 갈 수도 뒤로 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입니다.
그 때 선지자를 물었고 마침 엘리사 시대입니다. 엘리사는 그들에게 예언을 했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에돔에서 물이 흘러 올 것이고 모압을 정복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물이 떨어진 보다 큰 환란이 있을까요!
그들은 그 때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을 주셔서 그들을 살려 주셨고 모압을 이기게 하셔서 과연 건지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연합군은 하나님께 영광 돌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오늘의 공식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첫 번째 공식대로 물이 떨어지는 환란을 만났고 두 번째 공식대로 그들은 하나님을 찾았고 그래서 에리사가 왔지요. 세 번 째 공식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물을 주어 건시셨고 네 번 째 공식대로 그들은 물을 주시고 거기에 전쟁까지 이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돌렸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항상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마지막 공식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은 건짐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건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을 영화롭게 합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는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사람처럼 큰 죄악 가운데서 건짐 받은 사람입니다.
죽음에서 건짐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하나님을 영원히 영화롭게 할 수 있어야합니다.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이들이 승리의 삶을 살고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속 나아갑니다.
지금 주님을 영화롭게 합니까?
근심하고 낙심하고 감사하지 못한다면 영화롭게 하지 못하는 삶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길 원하시는 분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셔서 건지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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