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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것은(막9:23) 10.5 주일 낮 설교문
관리자
- 2286
- 2014-10-06 21:05:32
참 놀라운 일이지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니 죽은 엘리사를 통해서도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위대하고 크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 모릅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자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응답하십니다.
히스기야는 치료의 증표를 요구하는데 이사야는 놀랍게도 하늘의 태양을 십도가 앞으로 나아가게 할까, 뒤로 물러나게 할까! 하고 제안을 하니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제안이며, 하나님 안에서나 할 수 있는 엄청난 제안 아닙니까! 여러분은 누구에게 이러한 제안을 할 수 있나요? 그런데 히스기야는 짓궂게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쉬울 것이니 뒤로 물러나게 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하셨지 않습니까!
여호수아도 기브온 하늘 위에 해와 달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근본적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대통령과 동행하는 길이라면 염려스러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품 안에 있다면 무엇이 걱정되겠습니까!
이처럼 우리는 위대하신 놀라운 하나님을 믿고 있으면서 지금 염려와 근심 그리고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역시 믿음의 문제입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하셨지만 능치 못함이 없는 그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건만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떤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두려움을 내 쫓습니다. 근심과 낙심을 벗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그 크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해야 할 존재들 입니다.
우리의 부르심은 그러한 부름입니다.
인생의 길을 주님과 떨어져 가는 것이 아니고 동행하는 것이며, 주 안에서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믿음을 보이라는 것이지요. 믿음 있다는 증거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하며, 자신은 행함으로 믿음을 입증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믿는 분인가요! 행함으로 그 믿음이 입증됩니다.
주님을 진정 믿는 분이라면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주님 안에서 안식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보다 더 좋은 행함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열매가 없는 이들은 종의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친구의 믿음, 아들의 믿음으로 부름 받은 이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능력 행함, 예언, 방언통역 등을 말씀하고 있는데 진정 믿음은 은사로 받습니다.
은사로 받는 다는 것은 사람이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식으로 믿음을 얻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만 믿음을 은사로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이들이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이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냔 말씀처럼 주님께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는 이들이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그저 천당가방만 메고 죽을 때가지 믿어도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은 얻지 못합니다.
그 전에 저와 가까운 친척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식당을 경영했을 때인데 남자 손님 4명이 들어오더니 돈을 빌려 주겠다는 것입니다.
돈이야 필요했지만 그 제안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처음 보는 분들인데 어째 내게 돈을 빌려 주겠다고 하느냐 하니, 인상이 좋고 절대 남의 돈 떼먹지 않을 분 같다고 하더랍니다.
여러분 같았으면 빌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친척에게 제가 빌려 준다했으면 얼씨구나 하고 빌렸겠지요.
아무리 필요한 돈이지만 잘 알지 못하면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주님과 깊은 교제와 교통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까운 관계가 되어야 믿음이 생기듯 주님과 긴밀한 교제와 교통을 나누는 사람마다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믿음으로 세상을 살지 못한다면 주님과 거리가 멀다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 믿음으로 능치 못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말씀 그대로입니다.
모세에게 들려진 지팡이가 믿음을 상징합니다.
모세는 그 지팡이로 열 가지 재앙을 내렸고 홍해를 갈랐고 반석을 쳐 물을 냈습니다.
믿음 안엔 과연 불가능이 없습니다. 물론 주님 뜻 안에서지요.
모세의 지팡이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여러분의 삶이나 가정이 나아가는 길에 장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그 장벽과 함정을 믿음으로 허물고 메우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갖기까지 결코 안심하지 마십시오!
그렇치 못하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쭉정이와 같은 믿음일 뿐입니다.
고향집 시골마당에 여름날 미꾸라지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200M 떨어진 개울에서 날아온 것인데 쏟아지는 소나기를 치고 올라가다 떨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깨어있는 산 믿음이라면 능히 세상을 이깁니다.
주님께서도 세상을 이김은 이것이니 오직 믿음이라 하시며 믿음이 아니고는 세상을 이길자가 누구냐고 하셨지 않습니까!
누구나 한 평생 인생을 살면서 정말 호랑이 입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인생길 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위로할 것은 믿음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