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목사가 구속이 되셨다고?

장병선
  • 2265
  • 2014-10-04 23:08:37
김홍도 목사가 구속이 되셨다고?

지성수  |  sydneytax1@hanmail.net

김홍도 목사가 드디어 구속이 되셨단다. 나는 김홍도 목사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간접적인 인연이 많은 사람이다.

우선 20대 때 김홍도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회에 참석해서 무지막지하게 은혜를 받고 무모하게 신학교에 가서 패가망신(?)하게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니 나 말고도 김홍도 목사가 젊어서 한참 순수 했을 때 그의 설교에 은혜 받고 신학교에 간 사람이 많을 거다. 패가망신이라는 말이란 말을 쓰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아주 성경적이다. 예수가 진실로 자기를 따르려면 가정에 분쟁이 생긴다고 했지 않던가?

신학교에 갔더니 김국도 목사가 다니고 있어서 그 집안에 대해서 자연히 잘 알게 되었고 나중에 김국도 목사가 잠실에 천막을 치고 개척한 교회에 가서 전도사로 목회를 돕기도 했다.

10년 전 쯤 그러니까 홍도 때문에 한창 시끄러울 때-왜 있었지 않았던가? 금란교회 신자들이 MBC로 총진군하여 방송국을 접수했을 때(방송국이 외부 세력에 접수 되었던 것은 5,16 쿠데타 때 말고는 처음이란다)였다.

그 때 마침 내가 속한 단체에서 목사 전도사들이 3,000명이 모이는(300명이 아니다) 엄청나게 큰 행사를 개최했었다. 이런 일은 교계에서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의 큰 규모 행사이다.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앙케이트 조사를 하는데 내가 이 행사를 계획하는 실무자였기 때문에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김홍도 목사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한 항목을 집어넣었다.

내용은 김홍도 목사의 문제를 교회 안에서 처리해야 하느냐 사회 법정에서 처리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압도적으로 다수가 사회법정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대다수의 목사, 전도사들이 정상적인 판단을 했었다. 한 마디로 상태 양호 이었다.

통계결과가 나온 다음 날 언론에 발표하기 전에 당사자에게 물어 보는 게 정상적인 순서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의 항목에 결과가 이렇게 나왔는데 어떻게 생각 하느냐고 금란 교회에 전화를 했었다. 나는 당연히 교회 측의 사무장 쯤 되는 사람이 사무적인으로 답을 할 줄 알았다. 보통 교회가 아닌 2개 군단 병력인 10만 명이 다니는 교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김홍도 목사가 갑자기 특유한 피-안도(평안도) 발음의 탁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하는 게 아닌가?

뜻 밖에도 당사자가 직접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러더니 내가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30 분 이상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거물과 직접 대화하기가 정말 송구(?)스러워 그만 고정 하시고 부목사나 장로를 통하여 공식 입장만 알려 달라고 해도 계속 전화통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내용은 \\'지금 내가 악한 마귀와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인데 후배 목사들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앙케이트 조사나 하고 그래서 되겠느냐는 일장 훈시\\'였다.

내가 김국도 목사와의 인연을 설명하면서 \\'목사님을 해롭게 하기 위해서 하는 의도가 없습니다.\\'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왜 그런 짓(앙케이트 조사) 했느냐고 오히려 꾸짖는 것이었다. 성질 같아서는 \"뭐 이런 영감탱이가 다 있어?\" 하고 한 번 들이받아 버리고 싶었지만 참아야지. 암! 참아야 하느니라. 하고 끝까지 참고 들어 주었다.

실컷 떠들어 놓고는 \"거기가 어디요? 내가 사람을 보낼 테니\" 하는 것이 아닌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사람을 보내? MBC에 사람 보내듯이?

나는 조선일보가 하듯이 일방적으로 그냥 보도 자료를 돌릴 것을 공연히 공정하게 한다고 전화를 해서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내가 기관의 책임자도 아니고 일개 실무자로서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난감했다.

30분도 안 되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왔는지, 망우리에서 상도동까지-사무장이라는 장로와 수석 부목사라는 사람 둘이서 사무실에 나타났다. 다행히도 단 둘이서.

내용인 즉은 앞으로 내가 속한 단체에 잘 협력할 터이니 보도 자료를 돌리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호소였다. 공갈은 물론 없었다. 뇌물도 없었고, 그 때 내가 뇌물 좀 받았으면 지금 이런 글을 못 쓸 것이다.

결과는 여론조사결과 백지화였다. 한 마디로 기독교계를 상대로 장사해 먹고 사는 우리 기관의 책임자가 겁먹은 거다.

일제 강점기 이천만 동포의 심금을 울려주었던 아!― 아!~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감동의 드라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한 신파극,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라는 것이 있었더랬다. 그런데 지금은 \\'홍도야 울어라. 그래야 교회가 산다.\\'라는 노래가 나와야 할 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순교를 하면 했지 절대로 그런 눈물을 흘릴 사람이 아니다. 아니, 그 사람의 신앙이라는 게 그런 거다. 오만과 독선과 편견과 무지와 집착, 그게 그 사람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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