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聖職)은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가?.....

오재영
  • 2144
  • 2014-12-09 16:46:54
춘추 전국 시대에 진(晉)나라 황제 평공(平公)이 기황양(祁黃羊)에게 물었다.
"남양현의 현령 자리가 비었소. 공이 보기에는 누가 그 자리의 적임자라 생각하오?"
기황양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해호(解狐)라면 잘 해낼 것입니다."
그러자 평공이 놀라 물었다. "해호라면 공의 원수가 아니오?" 이에 기황양이 대답했다.
"군주께서는 누가 적임자인가를 물으신 것이지 제 원수가 누구인가를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진의 황제 평공은 해호 를 남양현의 현령으로 삼았다.
현령이 된 해호(解狐)는 이후 백성을 열심히 가르치고 격려하여 폐정을 단시일에 없앴으므로 대단한 칭송을 받았다.

오래지 않아
진평공이 또 기황양 에게 물었다. "조정에 법관 자리가 비었소. 누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오?
"이에 기황양이 대답했다.

"기오(忌惡)라면 잘 해낼 것입니다" 그 말에 평공이 이상히 생각되어 물었다.
"기오(忌惡) 는 공의 아들이 아니오? 공이 그를 추천하다니 두고두고 남의
이야깃거리가 될까 걱정이오."

이에 기황양이 대답했다.
"군주께서는 누가 법관을 맡을 만한가를 물으신 것이지 기오가 제 아들인가를 물으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법관이 된 기오는 신중하게 법을 집행하여 해로움을 제거하고 이익을 주었으므로 그 또한 많은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칭찬했다.
"그래 기황양이 인재를 천거할 때는 밖으로는 자기 원수도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자기 자식도 꺼리지 않았으니 진정 공평무사한 인사라 할 수 있다."
- 여씨 춘추에서-

직임(성직)은 논공행상의 전리품이 아니다.

수주전 지난 4년여 동안 밀우어온 본부의 총무를 임명한 일로 말들이 많다. 사람마다 전능자가 아니고 160여만 전체 성도를 생각하고 있는 인사권자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지만 이제 머지않아 그 결과가 증명될 것이다. 뒤이어 각 부장의 이동이 있을 것이라는데 부디 ‘적재적소’에 소중하고 합당한 이들이 세워지기를 바란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직임에 맞는 믿음직한 인재 짧은 세월에 드러나기 힘들지만 그만큼 좋은 인재를 잘 선택하여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세우는 것이 모든 일을 잘 풀리게 하고, 원활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이 아닌 여러해 전에 북한문제에 밝은이가 T.V 대담 중에 한말이 생각이 난다.
지금 북한이 온갖 어려움 가운데서도 저만큼 지속되고 있는 것은 위에 있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각 분야에는 그 분야마다 실력 있는 이들이 책임을 맡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인사에 있어서는 불편부당함과 함께 공평무사함이 있어야 한다. 만약 그리하지 못하여 구성원들에게 신임을 잃어버리면 그가 아무리 거창한 비젼을 제시하고 대단한 일들을 외쳐도 자신의 욕심일 뿐, 안팎으로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되므로 그처럼 불신을 받는 주체로는 공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 지나온 교훈이다.

그동안 오랫동안 교단의 개혁과 갱신의 구호는 끊임없이 있어왔다. 그러나 그토록 명분과 명제가 분명함에도 논의의 과정에 접어들기만 하면 언제나 책임 있는 자신은 배제한 채 순수와 순수가 부딪치고, 열정과 열정이 대립과 갈등으로 변하여 그 와중에서 정작 잘못을 저지른 이들은 본질에서 빠져 버릴 뿐만 아니라 버젓이 온갖 술수까지 동원하여 오래 버티기로 일관하며 자신이 챙길 이득은 이득대로 알뜰이들 챙겨가곤 했다.

성군이며 거대한 다윗 왕국을 이어받아 감당하여야했던 솔로몬왕의 중압감이 생각이 난다.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그에게 하나님께서 소원을 물으셨을 때 드린 대답이 마음을 아련케 한다. “종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모르니 종에게 듣는 마음(지혜로운)을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 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3:9). 그로 인하여 구하지 않은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존귀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화도 함께 허락하심으로 말 그대로 전무후무한 왕이 되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과거에는 그런대로 통용 되며 덮어주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지내던 일들이 이제는 잘 통하지 않게 되는 시대이다. 권위주의가 허물어지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매체와 SNS의 발달로 지도자의 숨소리까지 전달되어 투명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시대이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지시하며 말하기에 힘쓰기보다 듣기에 힘쓰며 다른 이들의 지혜를 구하는 겸손함의 지도자를 선호한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위치에 서려는 이들은 부디 “보스의 옷을 벗고 눈물로 서는” 리더의 모습이 되기를 힘써야한다.

지난달 청계광장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섬기는 행사에서 전용재 감독회장의 설교 중에 인용한 말씀 중에 한 대목이 생각이 난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가려면 같이 가야한다.”고 했다.

보다 많은 이들의 지혜를 널리 구하는 겸손함으로 사랑하기보다 미움과 증오로 인하여 혼돈된 수많은 아픔들이 한해가 지나가기 전에 치유되는 날이 오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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