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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펜젤러다
민관기
- 2263
- 2015-02-11 22:58:01
난 사실 저팬 어드밴타이져 기자야. 어느 정도는 친일적이지.
해서, 재필이가 독립렵회 세울때 황제 꼬드겨서 돕고 독립문 건립자금대고 영은문 허는 자금도 댓어.
그 뿐 아니라 독립신문 발행인도 나야.
그 신문엔 민주공화정이나 입헌군주제 군주제의 차이에 대해서도 썻지. 상하 양원제도 알려줬어.
하여,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시 의원제가 주장되고 설립일보직전까지 갔지.
아마도 상해임정 공화제 수립은 나의 공일지도몰라.
내가 1897년 독립신문 공화제 보도, 1898년 박영효 대통령추대사건, 1907년 신민회 강령 채택후 그 세력이
정부를 세웠으니까.
(광무황제는 그랫대. 대통령제란 말에 덜덜~ 쫌생이 같으니라구 지가 대통령하면 되지)
(사실, 재필이 갑신정변으로 도왜미하다가 환국하게한 공로자가 나야. 니넨 몰랐겠지만. 당연히 배재 교사가 되고
독립협회로 수배중일때 내가 보호했지. 근데, 니넨 왜 요인보호 공로를 몰라주는거니?)
내가 누구니?
사실 말 하기 그렇지만 난 배재학당 세웠어. 실은 배재는 내가 세운것도 아냐. 랜튼이 최초 학생 보내주고
황제가 허락해주고 이름도 하사해주시고 나중엔 국립 육영공원 학생들도 다 내 휘하에서 공부시켯지.
정말로 마는 애들이 거쳐갔다.
정부에서 돈 좀 받았다. 애들한테도 돈 받고. 음~ 배재에다가 삼문출판사 세워서 일시키고 근로장학금 줬어.
오핸하지마. 난 돈 애들한테 휘킹치지 않았어.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황제나 정부가 허락해주지 않았는데 양이인 내가 입국하거나 학교를 세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선교여행하고
가능했겠냐?
해서, 난 이런것도 했어.
*. 대군주폐하 장수기원예배, 황후 추모예배, 황태자저하 탄신축하예배, 헐버트와 춘생문사건 관여 등.
뭐 이런 것도 있어. 독립문 세울때 벙커가 애국가 배재애들 부르게하고 난 대표기도하고 거의 모 청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친일적 행사엿다고 보면돼. 아참~ 완용이도 왔었군화.
이렇게 생각하면 돼.
신사 면마다 세우고 별짓다한 왜가 서울 한복판중 하나인 독립문은 왜 그냥 두었을까?
친왜일의 상징이니까. 잘 드러나지 않는.
정말 안타까운건 내가 좀 일찍 죽은거야.
최소한 1910년까진 살았어야는데.
나와 인연이 있는 동네는 많아. 부산, 인천, 서울, 수원, 원주, 평양.
근데 니넨 왜 내가 죽은 장소가 그리 중요하니?
그냥 죽음은 랜튼이 말한것처럼 이 방에서 저 방이야.
솔직히 말하면 내 딸 앨리스하고 아들 헨리의 공이 더 크다 할 수 있어. 결국 내자랑했네.
부탁하자.
난 그만해도 돼.
스크랜튼 박사를 잊지마.
특히, 날 선교자유시켜준 이에 대한 예우는 어떻게 할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