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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을 인간들의 우상숭배
관리자
- 2592
- 2015-03-03 02:11:51
로마서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로마서 1장에서 이방인들의 죄를 지적하여 특별히 취급하고 있으나 사실 엄격하게 말한다고 하면 전 세계 인류의 죄를 취급하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많은 학자들이 이방인들의 죄를 말한다고 믿고 있습니다(Luther, Meyer, Bengel, Gadet, Dold).
학자들의 주장에 따라서 이방인들의 죄라고 인정한다면, 역시 이방인들의 죄를 두 가지로 구분하게 됩니다.
18절에서 25절은, 종교적인 죄를 지적하였고, 26절에서 32절에서는, 도덕적인 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면서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들의 허망한 심령상태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러한 허망한 우상숭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심판의 원인은, 어떠한 죄인지를 본문에서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
이 말은, 썩어질 인간과 대조하여서 하나님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시고 파괴할 수 없는 불멸의 존재이십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썩어지지 않는 영광의 존재이심으로, 온 우주와 인류들이 경배와 찬양을 드려야할 예배의 합당한 대상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자주 변하는 인생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는, 항상 동일하신 분이심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병들고 약해질 때에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은 이처럼 변하시지 않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분이심을 확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딤전 1:17).
하나님의 불변성은, 인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영원의 시간부터 영원까지입니다.
야고보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 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6-17)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본체에 전혀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뿐만이 아니라, 그의 속성들 그의 목적들과 약속들에도 전혀 변함이 없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의 효능으로 하나님은 모든 생성 이상에 초월하시며, 속성들에서 오르내리며 성하고 쇠하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말라기 3:6절은, “여호와는 변역하지 아니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절대적으로 완전하신 하나님은, 개선하거나 변하심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더 우수한자로 변하실 수 있다면, 그는 현실적으로 절대적 완전 자가 아니실 것입니다.
반면에 그의 절대적 완전이 악변하여 불완전에 떨어진다고 하면, 그는 하나님 됨을 중지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의 내면에나 외게 에나, 이 같은 변경을 일으킬 원인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썩어지지도 아니하고 변함도 없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들이, 썩어질 존재로 지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영광의 모습을 도적질하려고 어리석은 망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존재에 해 받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영원까지 영광을 받으실 분이요, 그 영광은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제 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원히 영화롭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것으로 형상화하는 허망한 우상숭배의 죄를 사람들은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살았습니다.
애급에서 나오는 순간의 그 영광, 시내 산에서의 그 영광, 성막의 지성소에서 비치는 하나님의 그 영광, 광야 40년의 길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타난 그 영광, 요단강을 건너는 언약궤의 영광, 가나안을 정복하는 영광 등, 인간의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대로의 썩어지지 아니할 그 영광들입니다.
썩어질 것 속에는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들입니다.
하나님 이외의 이 우주 속에 있는 것들은 모두 피조물들이며, 모두가다 썩어질 것들입니다.
이방인들은 특히 썩어질 피조물들을 섬기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 시대의 로마는 황제를 숭배하는 시대였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을 숭배하는 것은, 역시 우상숭배를 하는 죄악입니다.
아무리 황제라고 할지라도 숭배의 대상은 아니며, 썩어질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 시대의 사회풍습은 그리스를 시작으로, 사람을 숭배하였고, 동물의 숭배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영향이 있었습니다.
로마는 이 두 가지를 다 수입하여, 황제숭배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우상들을 숭배하고 섬겼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 주피터, 헤라클레스, 로물러스 등, 많은 신과 영웅들의 이름들이 많이 출현하여, 숭배의 모범이었고 점점 퍼져서 조상을 우상으로 섬기는 악한풍습이 생겨났고, 고대 이집트에서는 따오기, 매, 원숭이, 흰 소, 개, 악어, 뱀, 갑충 등, 기어 다니는 동물들까지도 우상화 하였습니다.
이러한 형상들은 나무나, 돌이나, 물감 등으로 모양을 거리거나 만들어서 섬겼고, 남자나 여자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신들은 영웅이나 은혜를 베푸는 자들이 많았으며, 신격화되어 성전과 제단에 동상들을 만들어 세웠으며, 그들을 위하는 신으로 군림하였던 것입니다.
참 하나님을 그 보좌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자기들과 성정이 같은 사람들을 신격화하여 올려놓고 섬기는 범죄의 행위를 저질렀으니, 이러한 신성모독의 죄가 어디에 있습니까?
심지어 땅바닥에 배로 기어 다니는 작은 벌레까지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으니,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입니까?
인간이 가장 귀하지만 그 귀한 것이 썩어지면 가장 비참한 것이 됩니다.
사람이 사람의 위치에서 떨어지면 가장 천한존재가 됩니다.
사람은 땅을 정복할 피조물인데 금수와 버러지들까지 섬겼으니, 얼마나 비참하게 타락하였습니까?
우상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섬기고 숭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생각이 허망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진 인간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해야할 인간들이 악마와 교제하며 섬기고 있었으니,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것은, 타락하고 영적으로 죽은 인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불안과 공포를 조금이라도 달래고 해소해보려고, 어떤 신적대상을 만들어 섬기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태양이 되기도 하고 달, 별, 나무, 돌, 짐승, 사람, 벌레의 모양을 만들어 섬겼고 숭배하였던 것입니다.
그것들이 우상이고 그들의 경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우상숭배는 결국, 심령의 부패 심령의 타락에서 오게 됩니다.
인간들이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근본 창조의 목적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이만저만한 죄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이성이 파괴되고 타락하였으며 양심이 파손되고 인격이 훼손되었으니, 그 결과의 죄과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것뿐입니다.
출애굽기 32:4절에 보면,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40주야를 지내고 내려올 때, 산 아래에서는 아론과 백성들이 모세가 더디 내려온다고 죽은 줄로 알고,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이것이 너희를 인도하는 신”이라고 섬기게 하였습니다.
백성들은 금송아지 앞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
그러한 죄악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러한 죄의 결과는, 레위인들이 칼을 들고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서 형제와 친구들과 이웃들을 도륙하였는데, 그날 3천명을 죽여 버렸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섬기고 우상을 숭배하면 죽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는데, 인간들이 하나님보다 자기의 형상대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으니, 그러한 악행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욕되게 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가 하늘로 승천하신 것도, 믿음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을 섬기려고 하는 위험에서 기독교를 보호하시려고 취하신 일입니다.
십계명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이라도 아무 형상이나 만들지 말라고 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것을 섬기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섬기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성령을 좇아 살아야지, 육신을 좇아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는 위험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육신으로 접촉하고 피부로 느끼는 것은 신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믿는 것은 신앙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손에는 잡히지 않아도 믿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참 신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손에는 잡히지 않아 도 무한한 힘과 능력으로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시고 섭리하시고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물며 사람의 손으로 만들고 그려서 형상화하는 조각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숭배와 믿음의 대상이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호수아 24:15,절에서 백성들에게 선포한 여호수아의 말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