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좀 차리고 깨어라!!

관리자
  • 2496
  • 2015-03-09 19:46:17
정신 차리고 깨어라!
요엘 1:5-7, 베드로전서 5:8-11.


1976년 11월 10일, 전남 순천에서 서울 창경원에 구경온 36세의 서 성종이란 사람은, 친척들과 소주 4병을 마시고 호랑이 우리 앞에서 “이 호랑이는 사람 말을 잘 듣게 생겼다”며 철책 안에 손을 들여 밀어 과자를 주려다가 호랑이에게 물렸는데 함께 있던 친척들이 잡아당겨도 구출하지 못하자 사육사가 기름솜 방망이에 불 붙여서 호랑이를 위협하여 간신히 구해냈으나, 술이 너무 취한 그는 자기 팔이 잘린 줄도 모르고 병원으로 업혀가면서 “그 호랑이 힘이 참 센데.......”라고 하더랍니다.

1983년 10월 23일, 부산 동래구 온천동 김 선홍씨는 동래 동물원의 높이 3m나 되는 철책을 넘어, 사자 우리에 들어가 가만히 있는 사자에게 “어흥” 하며 소리를 내자, 사자가 달려들어 사정없이 물어뜯자 구경꾼들이 소리 지르고 돌을 던졌으나 사자는 사람과 함께 뒹굴었습니다.
얼마 후 로프를 던져 극적으로 구출 받았으나, 경찰은 치료가 끝나는 대로 정신 상태를 감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속담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둘은, 한 사람은 술에 취해 호랑이에게 물렸고, 한 사람은 아무래도 정신적인 결함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마찬가지로 사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면 이념이 흔들리고 주관이 깨어있지 못하면 생각이 흔들리며, 신앙이 깨어있지 못하면, 사탄의 노리개가 되고 삶이 깨어있지 못하면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자고로 군주와 위정자들이 깨어있지 못할 때,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고 국민이 깨어있지 못할 때, 도탄에 빠져 혼란과 무질서로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가정의 가장이 깨어있지 못하면, 가정질서가 흔들리고, 부인이 깨어있지 못할 때, 가정이 혼란하며, 가난과 궁핍으로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자녀의 교육이 깨어있지 못할 때, 가문의 전통과 계율이 무너지고, 목자가 깨어 있지 못할 때, 양떼들이 흩어지며, 교역자가 깨어있지 못할 때, 교회가 어지럽고, 교회가 깨있지 못할 때, 부흥의 불길이 식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으로 깨어 근신하라고.........
그러므로 우리는 잠자는 상태에서 영적으로 깨어 있는 믿음의 상태를 지속해야만 합니다.

1, 사람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창 1:26).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기린처럼 키 크게 지으시지 않았고 하마나 코끼리처럼 큰 몸을 주시지도 않았으며, 사슴이나 타조처럼 빠른 다리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사자나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이빨도 주시지 않았고, 독수리처럼 날개를 달아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밝고 멀리 볼 수 있는 눈도 주시지도 않았고, 박쥐처럼 뛰어난 청각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약하거나 강하지도 않으며, 빠르거나 늦지도 않게 창조하셨습니다.
다른 동물들처럼 어떤 무기도 주시지 않았으나, 이성과 지혜를 주셔서 만물을 지배하는 영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이성과 지혜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선악을 분별하며, 사고와 이념을 추구해 내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며, 무리와 떼를 지어 사회를 구성하며 협력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F. 퀠즈는 “인간은 신의 걸작품이다.”라고 했으며,
J. F. 케네디는 “인간은 아직까지도 모든 컴퓨터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컴퓨터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J. 레이는 “인간은 누구나 약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B. 프랭클린은 “인간은 죽을 때까지도 완전한 인간이 못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생각하며, 내적 관념을 가지고 판단하며, 감정이 작용한다고 해서, 다른 동물들보다 우월하다고 하겠지만, 그 보다 더욱 인간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은 다른 어떤 피조물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죤 웨슬리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의 창조주처럼 거룩하였고 자비하였고 완전하였고 사랑이어서 사랑 안에 거하였고 하나님은 그 안에 그는 하나님 안에 거하였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처럼 영원성을 가졌었다. 그리고 또 하나님처럼 순결하여 안과 밖으로 일 점의 죄와 악이 없었으며 하나님을 전심전력으로 사랑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웨슬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신이심과 같이 인간도 신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피조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땅위 흙의 장막 안에서 살도록 계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에게 어김없이 지켜야할 법을 주셨고, 아울러 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도 겸하여 주셨습니다.
우주와 만물을 지으셔서 인간에게 다스리게 하신 하나님은 에덴동산 중앙에 한 실과 나무를 두시고 “그 나무의 실과를 너희가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 까 하노라”(창 3:3)고 벌칙까지 정하시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까지 허락하셨습니다.
창세기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우리는 여기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목적이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로 순종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살아야 할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간의 존재가치도 없고, 하나님을 순종치 않고는 생의 보람도 없으며, 하나님을 사랑치 않고는 인간의 윤리와 성숙한 양심마저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지혜와 윤리적인 판단력은 하나님만 두려워하는데서 유래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하는 인간자체부터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하나님을 닮았다”고 마닐리우스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에 다른 동물들처럼 얼굴을 땅으로 향하지 않고 몸을 꽃꽂이 세워서,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향해 천상을 사모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에 인간은 일반 동물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인격과 거룩한 신적 성질의 일면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웨슬리는 인간에게 3가지 하나님의 형상이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① 자연적 형상으로 하나님의 불변성과 지혜와 자유의지 등, 여러 가지의 정서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면의 흙으로 빚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령이 되게 하시고, 자유의지를 주어서 그 은사의 힘으로 책임을 수행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뜻과 분리됨으로 반역하여 범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② 인간 외에 다른 생물들을 주관할 수 있는 정치적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통치능력에 관해서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다스리는 최고의 통치자이십니다.
천사들과 인간들 모두 하나님 통치의 대상이 됩니다.
물질적인 자연은 하나님의 통치영역의 일부분이며 그의 권위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다른 생물들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물질적인 힘도 역시 그의 명령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③ 도덕적 형상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과 순결성과 진실 등으로 깊이 새겨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무한하시듯 인간의 영혼도 무한합니다.
하나님의 선과 공의와 순결은 인간의 정신 내면에도 함께 있는 것입니다.

2, 깨어 있지 못한 사람은 짐승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깨어 있으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잠을 자지 말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정신 차려 준비하고 대기하는 자세로 긴장하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자다가 망한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홍수 후 노아는 포도주에 취해 수치를 드러내고 자다가 아들 함에게 부끄러움을 당하였습니다(창 9:21).
소돔성이 불과 유황으로 멸망을 당할 때, 소알 성으로 피한 롯은, 포도주에 취하여 자다가 두 딸들과 불륜의 관계를 맺어 멸망 받을 패륜의 자식들을 낳았습니다(창 19:33-38).
삼손은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자다가 머리를 깎여 힘을 잃은 채 블레셋의 포로가 되어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삿 16:19).
시스라는 여 사사 드보라에게 쫓겨서 야엘의 장막에 숨어 들어가 자다가 여자의 손에 머리 살쩍에 쇠못이 박혀서 죽었습니다(삿 4:21).

예수님의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잠에 못 이겨 졸다가, 예수님이 폭도들에게 체포당할 때 모두 도망쳤고, 수제자 베드로는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린다 할지라도 나는 죽는데 까지 따르겠다.”고 장담했지만, 칼로 말고의 귀를 잘랐다가 책망 받았고,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는 작은 계집종에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씩이나 부인을 하고 맙니다(눅 22:54-62).
바울이 마지막 설교를 할 때, 유두고는 귀 기울이고 정신 차려 듣지를 않고 창틀에 앉아서 졸다가 3층 누각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행 20:9).
시편 13: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잠언 10:5,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잠언 6:10-11,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 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잠들지 말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본분을 지키지 않을 때 “짐승보다 못한 자”라고 욕을 합니다.
정신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면, 이성적으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깨어있지 못하면, 짐승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면 깨어있지 못하다가 짐승의 지배를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① 말씀으로 깨어있지 못하다가 뱀에게 지배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창세기 3:1-8,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 뱀이 가장 간교했습니다.
뱀은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물었습니다.
여자는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대답합니다.
뱀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유혹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어,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습니다.
여자가 말씀으로 깨어있지 못할 때, 하나님의 계율에서 벗어난 대답을 하였고, 뱀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혹하여 넘어뜨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마 이때 여자는 남편과 떨어져서 선악과나무 곁에서 배회했을 것입니다.
뱀은 그 기회를 노렸을 것이고, 여자의 약점을 보고 유혹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범죄 하는, 첫 번째 단계는, 모든 죄를 합리화하고 유혹의 근처에서 배회하며 악의 모양을 흉내 내는 데서부터 죄의 씨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할 인간이, 욕심을 가지고 다시 선악과를 바라보았을 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뱀의 말에 순종하여,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하는 욕심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 남편에게도 주어서 먹게 하였던 것입니다.
지나친 명예욕에 빠진 교만은 결국 미물의 짐승 뱀의 꼬임에 빠져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범죄하고 만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2,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② 사명에 깨어있지 못하다가 나귀에게 책망을 받은 선지자가 있습니다.
민수기 22:1-6,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을 건너 여리고 맞은편 모압 평지에 진 쳤을 때 십볼의 아들 발락 왕은 이스라엘 백성의 많음을 두려워하여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면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하며 사자를 발람에게 보내어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쳐서 이기어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은 발람에게 나타나셔서,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발락 왕의 신하들에게 하나님이 막으시니 저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발락 왕은, 더 높은 귀족들을 보내어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고 다시 유혹합니다.
그 때 발람은,
“그 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보리라”고 말합니다.
이미 그의 마음속에는 간접적으로 은금을 바라고 있었으며,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라고 하셨는데도, 함께 유하기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날 밤,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이튿날 아침 발람은 나귀를 타고 모압의 귀족들을 따라 나서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빼어들고 길을 막았습니다.
나귀는 사자를 보고 길을 피하려고 하였으나, 발람은 나귀를 바로 몰려고 채찍으로 때립니다.
나귀는 사자를 피해 담벼락에 붙어 비비자 발람의 발이 몹시 상했습니다.
화가 난 발람은 나귀를 사정없이 때립니다.
하나님은 나귀의 입을 열어 발람을 책망하게 하였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세 번 나를 때리느냐?” “네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 내 손에 칼이 있었으면 너를 죽였으리라”
그때 하나님은 발람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시니 비로소 천사가 칼을 들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발람은 그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
선지자였어도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였을 때, 미물의 짐승 나귀에게 책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선지자는 나귀만도 못한 인간이었습니다.

③ 충성이 깨어있지 못하다가 새벽 닭울음소리에 회개한 사도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였습니다.
그런데 청천 벽력같은 말씀은 예수님이 “오늘 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린다 할지라도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장담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때는 자신만만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밤 닭 울기 전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또 다시 맹세하였으나, 그날 밤, 예수님의 말씀처럼 폭도들에게 체포되어 가야바의 뜰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는 예수님 앞에서, 작은 계집종에게 “나는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세 번씩이나 맹세하며 부인합니다.
그 때 새벽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밖으로 뛰어나가 심히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어리석은 사도의 거짓맹세를 깨우쳐주는 새벽닭의 울음이었습니다.
이사야 1:3-4,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이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고 이사야는 탄식했습니다.

3, 깨어있으면 짐승의 우리 속에서도 새로운 삶을 찾습니다.
덴마크의 신학자요 정치가인 그룬트비히 목사는, 독일에게 많은 땅을 빼앗기고 얼마 남지 않은 박토의 땅에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밖에서 잃은 땅을 안에서 찾자”라고 외쳤습니다.
그의 구호는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땅을 사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외침에 감동을 받은 국민들은, 박토에 나무를 심고, 개척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나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습니다.
15C 유럽의 종교계는 잠자는 상태였습니다.
성 베드로의 성당 건립을 위해 교황 율리오 2세는 면죄부를 판매하였고, 구원에 대한 뚜렷한 확신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 때 마르틴 루터는 바울의 서신을 읽다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에 진리를 깨닫고,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성당에 제시함으로서 종교의 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루터 한 사람의 영적으로 깨어 있음은 교회들을 구하고 사회를 구원하였던 것입니다.
18C 영국 사회의 무질서와 혼란의 어두움을 본 요한 웨슬리 목사는,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고 외쳐 방탕과 사치와 음란의 퇴폐 하였던 영국사회를 바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10명의 처녀들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신랑이 더디 온다고 잠자는 5처녀들을 미련하다고 책망을 하였으나, 깨어서 준비하는 5처녀들은 지혜로운 처녀들이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집주인이 깨어 있으면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지만, 주인이 잠자면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해 갈지라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51:17,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 지어다 깰 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했습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국가와 민족을 구합니다.

① 깨어있는 사람은 돼지우리 속에서도 아버지의 품을 약속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15:16, 탕자는 아버지를 떠나 허랑 방탕하며, 가진 것을 다 허비하고 돼지우리 속에 들어가 쥐엄열매로 허기를 채우려다가 자신의 처지를 발견하고 정신이 깨어 비로소 아버지의 품을 사모하여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품에 안고 입 맞추고,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입혔으며,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는 죽었던 내 아들이 살아서 돌아 왔노라”고 기뻐했습니다.

② 깨어있는 사람은 개들 틈에서도 아브라함의 품을 약속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16:20,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문간에 개들 틈에 누워서 개들이 헌데를 핥는 중에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살았으나 믿음으로 깨어 있었기에, 그는 죽어서 부자가 부러워하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았습니다.
비록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인생의 초라한 삶이 비참하였으나, 나사로는 믿음으로 깨어 있었기에, 아브라함의 품에서 위로를 받았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5:22-28, 가나안의 여자는 예수님으로부터 개 취급을 받았으나 믿음으로 깨어 있었기에, 예수님의 칭찬을 들었고, 병으로 죽을 딸이 고침을 받고 살 것이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③ 깨어있는 사람은 양들 틈에서도 메시야를 맞이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8, 베들레헴의 성 밖에서 양 치던 목자들은, 춥고 긴긴 밤을,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양떼를 지키는 책임과 사명을 다하다가, 천군 천사들에게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아기로 오신 메시아를 만나라는 말을 듣습니다.
목자들은 천사들의 전하는 말을 듣고 나아가,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인류최초로 만났고, 경배를 드리는 축복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깨어 있는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도 가장 먼저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깨어있는 성도들은, 다가오는 시험과 환란에도 능히 피하고, 신랑 되신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 천국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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