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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현실이다.
관리자
- 2434
- 2015-03-18 00:05:15
순천을 찾은 것은 지난 재판에 관하여 다시 한번 확인하고픈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날씨는 무척 화창했고 봄이란 말이 절로 날올 것만 같은 포근함을 넘어 약가은 후덥지근하다고 할 정도의 좋은 날씨였다.
한마디로 가족 나들이 가기에 최고의 날씬였던 것이다.
지금 내가 순천을 찾는 것이 가족끼리의 나들이었다면 진짜로 좋을 듯한 날씨... 마음을 설레게 할만큼 좋은 날씨였다.
그러나 내 마음은 무겁고 착잡했다.
왜냐하면 내가 오늘 만나기로 한 분은 연회 재판위원장님이었기 때문이다.
그 분의 입을 통해 근신 1년과 재판비를 부담하라는 판결이 났었다.
내가 왜 다 지난 일을 두고 그 분을 찾아 갔느냐고?
궁금했다.
재판의 판결이 아닌 진짜 그 분의 생각과 판단이 궁금했고
그 분이 재판 자리에서 누누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목회자의 양심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판결문을 읽으며 손을 부들부들 떠시던 모습이었다.
그 손 떨림이 그 분이 말씀하시던 목회자의 양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은 일반적인 감리교의 3개 신학교(목원,협성,감신)가 아닌 다른 학교 출신이시다.
감리교에 그리 많지 않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며 소위 말하는 SKY대학의 신학과를 졸업하신 분이셨다.
3개 신학교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유로우신 목회적, 신학적 양심을 소유한 분이실까?
약속 시간 빠듯하게 도착한 나는 전화로 도착했음을 알려드렸다.
내려오신단다.
교회의 문이 열려 잠시 기도하였다.
무슨 기도를 했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일상적인 기도였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이 곳을 찾은 것에 대한 기대감의 기도였던 것 같기도 하고...
교회는 크지 않았지만 지어진지 얼마되지 않은 아주 깔끔한 교회였다.
이 교회가 깔끔한 것이 목사님의 영향인지 아니면 지은 지 얼마되지 않은 교회여서인 지는 모르겠다.
내 눈에 보이는 이 교회처럼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고 단정한 목회작양심을 소유하신 분이시기를 내심 더 기대를 해 보았다.
잠시 후 내려오신 그 분은 나를 만나자 마자 교회에서 데리고 나가신다.
파카(겨울잠바) 차림에 아주 소탈하고 편한 복장이셨다.
어서오라는 환대도 악수도 없이 그 분이 날 데려간 곳은 교회 뒷편 커다란 향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는 정원(?)이었다.
그 곳엔 나를 위하여 준비한 것인지 아니면 늘 있었던 것인 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티테이블처럼 보이는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의자에 앉으라는 말씀을 따라 의자에 앉자 왜 당신을 찾아 왔느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나는 간단히 찾아온 이유를 말씀 드렸다.
그러자 그 분은 연회에서 내게 보낸 공문에 관심을 갖고 내용이 어떤 것이냐 물으셨다.
그래서 재빨리 챙겨 가져간 연회 공문을 직접 보여드렸다.
누런 봉투에 두둑하게 챙겨간 자료를 보시더니 웃으신다.... 그리곤 건네받은 공문의 내용을 다 읽어 보신 후 말씀을 이어가셨다.
"아~~ 장정이 하도 변해서... 이런 내용이 있었나!"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그런 말씀이셨다.
공문과 장정의 말씀을 하시기에 나는 기회다 싶어 여쭤보았다.
"목사님, 여기 장정엔 분명 '무고하게 2년을 계속'이란 표현이 있는데... 이 무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그러자 그 분은 내 질문에 얼굴색을 삭 바꾸셨다.
내심 당혹스러웠다.
내가 큰 실수라도 저지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멋적게 웃으며 계속해서 재판위원장을 하셨었으니 해석 좀 해달라 하였다.
그러자 그 분은 이 것에 대해선 당신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며 당신의 해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 정말로 공문의 내용이 맘에 들지 않거나 불만이 있다면 절차를 따라 연회 장정유권해석을 요청하라고 말씀하셨다.
'헉, 이건 뭐지.... 무고란 말이 그리 어려운 단어인가? 연회 재판위원장을 하셨던 분이 무고란 단어가 어려워 해석은 해주지 않고 본인이 해석할 사항도 아니니 연회 장정유권해석위원회에게 의뢰를 하라고!....'
순간 한 대라도 얻어 맞은 듯 멍해졌고 곧 이어 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오갔다.
'무고란 단어 조차도 해석하지 못하는 분이, 아니... 무고란 단어조차도 주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분이 연회 재판위원장이셨던가?'
참으로 암담한 첫 질문과 답이었다.
'분명 '무고'란 단어를 모를리 없다. 그러니 해석하지 못할 수도 없다. 그런데 그것은 당신에게 물어볼 사항이 아니란다.'
내가 지금 이 글을 감게에 올리면 모욕이니 명예훼손이니 하실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젠 분명 그리 말하셨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감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고란 단어가 어려운 것이 아닌데 그 누구도 해석해 주려 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김교석 목사님만 조심스러운 해석을 해 주셨다.
'무고'란 단어 하나를 해석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배우지 못한 자처럼 입을 닫고 말꼬리를 흐린다.
그런데 그런 분이 나에 대해선 너무도 분명하게 1년 근신과 재판비를 판결하셨다는 것이다.
이 분에게 '목회자의 양심'이란 진짜 무엇일까?
지금에야 김교석 목사님의 댓글이 너무도 감사하단 생각이든다.
처음엔 김교석 목사님께도 너무 몸을 사리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아니었다.
아무도 답을 하지 않을 때 '무고'란 단어를 해석해 준 그 자체가 이미 감리교회 안에선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며 목회적 양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이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