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NO인데 결정은 YES!!

문병하
  • 2609
  • 2015-03-27 01:40:54
살을 찌르는 듯한 햇빛이 쨍쨍한 여름날
미국 텍사스주의 한 가족이선풍기 앞에서 한가롭게 도미노 게임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게임도 시들하고 분위기도 무료한 오후였다.
그 때 장인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봐, 우리 에빌린에 가서 근사한 저녁을 먹으면 어떨까?
좀 멀긴 하지만 가볼만 해."
게임을 하던 사위는 속으로 생각했다.
"에벌린까지는 거의 80Km야. 후딱 다녀오기엔 너무 멀어, 어쩌지..."
그때 장인의 말을 듣던 아내가 옆에서 거들었다.
"어머 아빠, 그거 좋은 생각이에요. 오늘 같은 날엔 딱이죠."
사위는 여전히 망설였다.
에빌린까지 운전해서 가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푹푹 찌는 날씨에 차 안은 분명 찜통일 텐데 영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눈치를 보아하니, 장인과 아내가 가고 싶어하는데
자기만 반대하면 뒷감당할 일이 더럭 겁이 났다.
사위는 대세를 따라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잔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저도 좋습니다. 참 괜찮은 생각입니다. 아버님.
장모님도 가고 싶어 하셨으면 좋겠네요. 장모님 생각은 어떠세요."
듣고 있던 장모가 말했다.
"물론 나도 가고 싶지. 애빌린에 가본 지 꽤 오래되었거든.
한 바퀴 돌고 오면 기분 전환도 될거야."
막상 집을 나섰지만 애빌린으로 가는 길은 힘들었다.
차 안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끔찍했다.
숨이 턱 턱 막히는 데 먼지까지 들이닥쳐 아주 가관이었다.
도착한 에빌린도 친절하지 않았다.
가족이 카페에 도착했을 때, 음식은 그들이 온 길 만큼이나 나빴다.
가족은 4시간이나 걸린 험악한 드라이브 끝에 지칠 대로 지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착한 사위는 분위기를 밝게 해보려 애써 쾌활하게 말했다.
"좀 멀긴 했지만 아주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그렇지요?"
장모가 입을 삐죽이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근데 말이야 난 사실 집에 있고 싶었어.
니네들이 가자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따라 나선거였어"
사위는 즉시 맞장구를 쳤다.
"사실 저도 애빌린에 그렇게 가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단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하려고 갔을 뿐이라구요."
그러자 아내도 툴 툴대며 말했다.
"저도 그래요. 전 당신 좋으라고 갔던 거예요.
이렇게 더운 날 바깥에 나가는 건 미친 짓이에요."
이 말을 들은 장인이 손을 부비며 중얼거렸다.
"그게 말이야. 난 그저 너희들이 지루해하니까 그냥 말을 해본 것뿐이었어."
+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누구나 변명은 있습니다.
모두 반대하진 않았지만 사실은 아무도 동의하지 않은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잘못된 의사 결정을 조지 워싱턴 대학 제리하비 교수는
애빌린의 역설(Abilene Paradox)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구성원의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반대하면 그 책임을
자신이 질 것 같으니 묵인하고 맙니다.
그렇게 결정한 일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변명만이 난무할 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집단 내의 구성원 각자가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의견이
자신의 것과는 반대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감히 집단의 의견에 반대하지 못한 채 동의 하는 것으로
집단 내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에 나타납니다.
잘못된 관행에 항거하지 못하는 조직은 죽은 조직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에빌린의 저주가 덮친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교회는 이 사회 속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교회마져도 에빌린의 역설에 매여있다면 어디서 희망을 찾을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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