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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념할 만한 고귀한 헌신
관리자
- 2501
- 2015-03-25 17:11:34
서른 살 된 자식이 “언제 아버지나 어머니가 절 사랑했어요?” 하자, 기가 막힌 부모가 “우리 마음은 항상 자식 사랑으로 꽉 차 있었는데.”라고 했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상대에게 느껴지지도, 인식되지도 않는 사랑은 그 상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이란 사랑과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낳아 양육하시고, 교육을 받게 하신 부모의 사랑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목자의 사랑과 스승의 은혜, 그리고 신세진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보답하는 자세로 사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더욱 아름다운 것은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고,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2. 마리아의 헌신을 보는 제자들과 예수님
예수님께 고침받은 베다니의 나환자 시몬이, 감사하여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인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깨뜨린 후에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요한복음 12:3을 보면, 예수님이 살리신 나사로의 동기간인 마리아가 그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다고 했습니다.
결이 매우 좋은 석고로 된 단지인 옥합에는 많은 양의 나드향유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나드향유는 가보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물려질 정도로 귀하고 값비싼 것이므로 주로 귀족이나 부자들이 사용했습니다. 그 때문에 제자들이 화를 내면서 서로 말했습니다.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그들의 책망은 일 년 동안의 품삯인 막대한 금액을 낭비했다는 것입니다.
교인들 중에도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은 아까워하고, 구제는 마땅한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분명히 구분되는 것입니다. 온 천하를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창조해 주시고, 지옥 불못에 떨어질 우리를 천국 백성으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매일매일 필요한 은혜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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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을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나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을 물질적인 면에서만 보아서도 안 됩니다.
마리아의 고귀한 헌신을 보고 본받기는커녕, 천박하게 비난하며 책망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가만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가난한 자들은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으니, 그 여인을 괴롭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은혜받은 마리아의 행동에서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따라서 낭비로 여기지 않으시고, 기꺼이 받으신 것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귀하고 값비싼 나드향유를 부은 마리아를 이해하시고 칭찬하셨습니다. 마리아의 헌신적인 행동은 결코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사랑은 계산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주고, 주고, 또 주어도 아까운 줄 모르는 것이 사랑의 신비입니다. 주고, 주고, 또 주어도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게 사랑의 신비입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는 부모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동네에서 제일 잘 먹이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평준화 교육을 주장하면서 자식은 특목고에 보내고, 조기 유학을 보내고 기러기 아빠로 살면서도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게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이런 부모의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 아이가 4, 5세쯤 되었을 때입니다.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데 무슨 과자 광고가 나왔습니다. 그 순간, 아이가 “나, 저거 한 번도 못 먹어 봤다.”라고 소리치는 겁니다. 좀 듣고 알아서 하라는 겁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아니, 지가 나올 때, 병원비를 들고 나왔습니까, 젖 값을 들고 나왔습니까, 우유 값을 들고 나왔습니까, 양육비를 들고 나왔습니까? 한 번이라도 밥값을 낸 적이 있습니까? 4, 5년 동안 누구 덕에 먹고 살았는데 그럴 수 있는 겁니까? 아니, 그깟 과자가 문제입니까? 그게 누구냐? 우리 아들 아니면 딸입니다.
사랑이란 희생만은 아닙니다. 지식이나 지혜를 백 명에게 나눠 주면 그 유익이 백배가 됩니다. 그렇다고 내게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또한, 사랑이 희생만은 아니라는 것을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확증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한 사람들이 ‘사랑하길 참 잘했구나! 사랑한 보람이 있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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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사랑의 선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당신께 좋은 일을 한 것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주고, 또 주고, 또 주어도 아깝기는커녕,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이 사랑이 어디서 비롯된 것입니까? 바로 영원한 사랑의 본질을 지니신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물을 창조해 주셨고, 천하를 주어도 바꾸지 않을 생명을 주셨으며, 게다가 죄로 낙원에서 추방되어 멸망의 길을 가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주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옥합을 깨뜨려 나드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행동에서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자녀가 부모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여 혹은 마음으로, 혹은 물질로 부모를 섬기는 데에다 대고 어떻게 낭비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까? 진정한 감사에는 결코 낭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조 모 목사님이 소개한 실화입니다. 어느 의대생이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낼 길이 없어서 소중한 책을 팔려고 책방으로 가던 중에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어느 집의 문을 두드리고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한 소녀가 나오더니 엄마가 나가면서 배고플 때 먹으라고 준 빵과 우유 한 병을 건네주었습니다. “내가 먹을 것인데 드릴 게요. 맛있게 드세요.”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소녀의 어머니가 병이 들었습니다. 주립병원에서 수술을 했지만 완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수술비가 엄청났습니다. 수술비를 낼 길이 막막한데 청구서를 받아 보니 이상했습니다. 청구액은 0원이고, 메모지에 “치료비는 빵 한 조각과 우유 한 병으로 대신해 줌.”
그때 그 고학생이 의사가 된 것입니다. 그 후에 소녀를 찾으려고 애를 썼는데, 찾지 못하다가 이렇게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 빵 한 조각과 우유 한 병이 문제입니까? 온몸을 다 거저 받은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암만을 드려 부모를 섬긴들 낭비란 말이 가당키나 합니까? 주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과 하늘의 모든 영광을 다 포기하시고, 죄로 영벌을 당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속죄 제물이 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구원의 사랑에 감사해서 주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치고,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에 감사해서 예물을 드리는 것을 낭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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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물질이나 시간, 지식이나 재능을 주님께 바치고, 바치고, 또 바치면서도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사람이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앙인이며,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신앙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옥합을 깨뜨려 나드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행동에서 삼백 데나리온의 액수만을 보신 것이 아니라, 힘을 다한 것을 읽으셨습니다. 8절에 보면, 마리아가 힘을 다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형식적으로나 체면치레로 인색하게 바친 것이 아니라, 지극한 정성을 다해 바쳤던 것입니다. 최대의 힘이란 실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란 자녀를 위해서라면 힘을 아끼지 않습니다.
사랑의 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힘을 다하셨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사랑을 깨달은 핍박자이었던 바울 사도는, 주 예수님을 전파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습니다. 아니, 죽을힘을 다했습니다.
넷째, 예수님은 옥합을 깨뜨려 나드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행동에서 마리아는 물론, 그 누구도 보지 못한 대단히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를 보셨습니다. 8절에 보면, 예수님이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시는 주님을 위해 향유를 부어 미리 장사를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님께 진심어린 사랑과 감사로 힘을 다해 바쳤을 뿐인데, 생각도 못한 엄청난 일을 하게 됐습니다. 마리아는 사랑과 감사로 나드향유 한 옥합을 바쳤을 뿐인데, 인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장사를 미리 준비해 드리는 크나큰 영광을 누리게 됐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우셨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라고 당부하셨겠습니까?
3. 맺음말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은혜와 복을 받았고, 또 받고 있고, 또 받을 것입니다. 게다가 천국 영생 복락까지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바로 깨닫고, 그 주님께 대한 순수한 사랑과 감사에서 비롯되는 최선을 다해 헌신적인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예배와 사랑의 헌신과 섬김과 충성이 기념될 만한 것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3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