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외로운 늑대

관리자
  • 2546
  • 2015-03-25 07:42:55
사람이 한 조직체계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해당 조직에 잘 적응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을 희생하고 학교 조직에 잘 적응하는 아이가 모범생이 되는 것이며
학교 조직에 잘 적응하지 못한 아이는 문제 아이가 됩니다.

한 아이가 학교 조직에 잘 적응 한다고 반드시 인생을 잘 산다고 단정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 아이가 학교 조직에 잘 적응하지 못하여 문제아가 된다 하여 반드시 그 아이가 인생을 잘 못 살고 있다고도 단정을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적응을 잘 하는 아이가 착한 아이고 적응을 하지 못하는 아이는 나쁜 아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갖기 쉽습니다.

교회도 사회적인 조직체계의 모습을 갖고 있음으로 같은 패턴으로 적응기를 거쳐야 합니다.
교회 조직에 잘 적응하면 모범적 교인이라 불려지고 교회 조직에 잘 적응 하지 못하면 문제가 있는 교인이라 할 것입니다.

교회 조직에 잘 적응 한다고 반드시 믿음이 좋은 성도라 할 수 없으며
교회 조직에 잘 적응 하지 못 한다고 반드시 믿음이 없는 성도라 하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교회 조직에 잘 적응한 교인에 대하여 믿음이 좋다는 편견을 갖기 쉬우며
교회 조직에 잘 적응 하지 못한 사람은 믿음이 없는 자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습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단의 조직에 잘 적응하면 모범적인 목사라 할 것이며 교단의 조직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하면 문제가 많은 목사라 하기가 쉽습니다.
교단의 조직에 잘 적응 한다는 것은 교회를 부흥시키고 교단의 행정업무에 순응적으로 잘 감당하는 것을 의미하며
교단 조직에 잘 적응 하지 못한다는 것은 교회를 부흥시키지 못하고 교단 행정업무에 순응하지 못하는 목회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규모에 따라 그 목사의 목사됨이 평가되고 또 평가를 합니다.

교단 조직에 잘 적응한다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목사라 하지 못할 것이며
교단 조직에 잘 적응 하지 못한다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목사라 하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교단 조직에 잘 적응한 목사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목사라는 편견을 갖기 쉬우며
교단 조직에 적응 하지 못하는 목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는 목사라는 선입견을 갖기가 쉽습니다.

학생이 학교 조직에 잘 적응하여 모범생이 된다는 것은 결국 학교 규칙과 가르침에 잘 순종하는 아이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가 교회 조직에 잘 적응하여 모범적인 교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교회 조직의 규칙과 가르침에 잘 순종하는 교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사가 교단의 조직에 잘 적응 한다는 것은 교회를 부흥시키고 교단의 규칙과 가르침에 잘 순종하는 목사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왜? 학생은 반드시 학교 규칙과 가르침에 순종적이어야만 할까요?
교인은 왜 ? 교회의 규칙과 가르침에 순종적이어야만 할까요?
목사는 왜? 교단의 규칙과 가르침에 순종적이어야만 할까요?

그 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학생이기 때문이며 교인이기 때문이고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실로 원하시는 모습이 학생다움과 교인다움과 목사다움만 일까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렇기에 때론 학생이라 할찌라도 학교 규칙과 가르침에 반드시 순종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인이라 할찌라도 반드시 교회의 규칙과 가르침에 순종적이어야 할 필요도 없으며
목사라 할찌라도 반드시 교단의 규칙과 가르침에 순종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때론 학생 답지 못하 아이를 통해 그리고 교인답지 못한 성도와 사제 답지 못한 목사를 통해 하나님은 또 다른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한 조직에 적극적으로 적응하고 순종하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한 사회 조직체계에 적극적으로 적응 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며 외톨이처럼 혼자 있기를 좋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을 흔히 세상은 외로운 늑대(lone wolf)라 부릅니다.

세상의 외로운 늑대는 반 체제적인 삶의 습성을 갖고 있는 자생적 개인 테러리스트를 일컷는 말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쓰임을 받는 외로운 늑대도 있습니다.
그들은 반 종교적인 또는 반 교회적인 습성을 갖고 있는 선지자 또는 종교개혁자라 불려지기도 합니다.

목사와 선지자는 다릅니다.
사제와 종교개혁자도 다릅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자신의 주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개와 같이 교회와 교단 조직에 적응을 잘하고 순응적인 목사이며 사제입니까?
아니면 주인도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늑대와 같이 교회와 교단 조직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하고 순응적이지 못한 선지자이며 종교개혁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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