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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론의 문제 (8)...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롬 11:5-7)
관리자
- 2230
- 2015-04-22 02:21:22
아닌게아니라, 사도행전 21:20에는 “유대인 중에 믿는 자가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남은 자](레이마, λείμμα)의 사상 역시 다른 경우처럼, 그 근거를 구약성경에 두고 있다. 즉, 여기에 인용된 대로 엘리야 시대에 믿음의 정절을 지킨 칠천 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선지자들은 전 민족이 다 하나님께 충성한 때는 없었고, 또한 있을 수도 없다는 점과 반면에 그 백성 중에는 자신의 충성심을 버리거나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남은 자들이 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곡식을 체로 치듯 선한 사람만 남을 때까지 사람들을 체질하신다고 생각하였다(암 9:8-10). 미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시는 환상을 보았고(믹 2:12, 5:3), 스바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습 3:12-13). 예레미야는 남은 자들이 흩어져 있던 모든 나라에서 다시 모여 올 것을 미리 보았다(렘 23:3). 에스겔은 인간이란 한 민족으로서나 조상으로부터 받은 의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의인은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겔 14:24, 20, 22).
특히,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이 탁월하였다. 그는 자기 아들을 ‘남은 자의 구원’이라는 뜻인 스알야숩이라고 불렀다. 이사야는 여러 번 되풀이하여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신실한 남은 자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사 6:9-13, 7:3, 8:2, 18, 9:12, 20:21).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남은 자의 구원이란 결국 개인적이며, 또한 소수의 것이었다. 이 사상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앞에 선 개인의 관계인 신약성경의 구원관을 마련해 준 결정적 터전이 되었다.①
인간은 어떤 민족의 일원이나 가족의 일원이 되었거나, 혹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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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참조: W. Sanday & A. C. Headlam의 특주, W. Barc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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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으로부터 의와 구원을 상속받음으로써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대한 개별적인 믿음의 결단을 통해 구원받는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선민으로 취급되고 있지 않다. 선민이란 하나님께 마음을 바친 개인으로서의 남자와 여자들이다. 그리고 남은 자는 바로 그들로 구성되는 것이다.
“바울의 논지는 유대 민족이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버림받지 않은 참 유대인은 전체로서의 민족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신실한 남은 자라고 하는 것이다”(W. Barclay). 그는 9장에서도 선민 유대에서 난 자들이라고 해서 다 유대인은 아니라고 하였다.
바울은 “은혜로 택하심”에 대해, 【6】그런데(원문의 6절 첫 부분에 데, δὲ가 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②라고 설명하고 있다.
[만일](에이, ἐι)은 막연한 가정이나 불확실한 가정이 아니라, 앞 구절의 “은혜의 택하심을 따라”를 다짐하고 확증하는 동시에 구원의 선택에 있어서 은혜와 행위의 상반된 원리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즉, 남은 자가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로 된 것이면, 인간의 행위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에페이, ἐπεὶ)은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아니라면’ 또는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서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라면’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하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한다. 은혜가 은혜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순수해야 한다. 즉, 상대방의 어떤 이유나 조건(노력, 선행 또는 양심 및 율법 행위 등) 때문에 주어진 은혜라면, 이미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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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P46, א*, A, C, D, G, P 사본들을 따른 것이고; אc, L 사본들에는 εἰ δὲ ἐξ ἔρον οὐκὲτι ἐστὶν χάρις ἐπεὶ τὸ ἔργον οὐκετὶ ἐστὶν ἔργον(그러나 만일 행함으로써라면 그 이상 더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그 행함은 그 이상 더 행함이 아니니라)이 첨가되어 있다”(김선운). 후자는 전자에 대한 설명인 것으로 보아 후대에 삽입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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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은혜가 아니라 대가에 불과한 것이다. 값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면 은혜가 아니다(은혜는 1:5의 주석을 보라).
바울은 1-6절까지의 논의를 결론지어, 【7】[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라고 하였다.
[어떠하뇨]는 티(τί)로서 ‘어떠하냐’, ‘무엇이냐’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곧 유대 민족이 [구하는](에피제테이, ἐπιζητεί: 현재 시형), 즉 계속해서 열렬히 추구하고 있는 의를 얻지 못하였다. 이는 그들이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했기 때문이다(롬 9:31-32). 반면에,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헤 에클로게, ἡ ἐκλογὴ)는 5절의 “은혜로 택하심” 곧 “은혜의 능력의 능동적인 역사”(Luz)③의 결과인 선택된 자들을 의미한다. “이 문구가 4절의 하나님의 응답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시간 이전의 계획이 아니라 성서에 계시된 구원의 경륜을 지시하는 것이다”(E. Ksemann).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로운 능력의 능동적인 역사를 믿음으로 선택된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라고 하였다.
[그 남은 자들은]이란 이스라엘인 가운데 불신앙 때문에 선택되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완악하여졌느니라]는 에포로테산(ἐπωρώθησαν)으로서 AV에는 ‘눈이 멀었다’라고 번역하였고, RSV에는 ‘완고해졌다’라고 번역했는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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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in E. Ks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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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더 원의에 충실하다.
{그 명사형인 포로시스(πώρωσις)는 의학 용어로서 ‘피부 경질(못)’이라는 뜻이다. 경질된 부위는 감각이 없어진다. 이 말은 관절 속에 생겨 그 동작을 마비시키는 통풍석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은 뼈가 부러졌다가 다시 붙은 자리에 생기는 경결을 뜻하는데, 본래의 뼈보다 더 단단하다. 끝으로, 이 말은 모든 감각 능력의 상실을 의미하게 되었다}(엡 4:18의 주석).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서 오래 살다 보면, 결국 선한 일들을 위한 호소에 무감각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 결국 죄의 공포와 선의 매력에 무감각하게 된다”(W. Barclay). 만일 인간이 자기 본위의 삶을 열심히 추구하다 보면, 결국 하나님께 대해 무감각해지고 만다. 그는 하나님의 채찍을 맞아도 아픔만을 느낄 뿐이지, 그 속에 담긴 사랑의 징계를 지각하지 못한다. 바울은 그러한 이방인들을 가리켜,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엡 4:18)라고 탄식하고 있다.
# 출처: 최세창, 로마서(서울: 글벗사, 2000년 2판 1쇄), pp. 409-412.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3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