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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득권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마법
관리자
- 2971
- 2015-05-14 03:34:57
질 수 없는 재판과 이길 수 없는 재판은 을에 대한 갑의 합법을 가장한 불의의 횡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건에 대한 진상과 그에 따른 증거 확보에 있어서 피해자의 한계성이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담감과 멀고도 먼 재판의 길입니다.
재판은 흔히 법적인 진위의 문제라 여기기 쉽지만 실상은 돈의 싸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와 국가에선 여전히 유전 무죄 무전 유죄인 경우가 다반사로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가 공명정대하냐? 그 또한 절대적으로 아닙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국가에선 무엇보다 권력의 횡포가 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산주의국가와 사회주의 국가는 독재국가로 분류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자본주의는 정치 권력의 횡포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모습으로 독재적 국가들에게 인권과 자유를 주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도 갑에세 질수 없는 재판과 을에게 있어서 이길수 없는 재판이 되는 비민주적인 공통적인 부조리의 현상은 이렇습니다.
1) 자본주의는 정치의 독재는 잘 뵈진 않지만 자본의 독재가 이뤄지는 사회, 국가의 체계입니다.
그러기에 자본의 편차는 피해자인에 볼구하고 을에 있어선 넘지못할 갑의 산이 됩니다.
자본은 곧 힘이며, 권력이며, 법이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이 되어 줍니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모든 것이 결정되고 모든 것을 이끌어 가기도 합니다.
2) 정보와 지식의 독재적 취득 및 편중 입니다.
이것은 결국 사건 사고에 있어서 증거다운 증거를 획득할 수 없는 을의 비애이며 갑의 횡포가 될 수 있습니다.
정보와 지식은 또 다른 독재적 자본이 됩니다.
3) 법적 대응 및 적용에 있어서의 극심한 편차가 있습니다.
이 또한 역시 자본의 독재적 횡포입니다. 변호사를 쓴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돈이 없는 사람들에겐 엄청난 제약이 되고 있으며 기나긴 법정
다툼에 있어선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생계형 피해자에게 있어선 다강해 낼수 없는 삶의 무게감이 될 것입니다.
반면 돈의 힘이 있는 갑에겐 언제나 대신 싸워줄 용병이 되어주는 멋진 제도가 되는 것입니다.
4) 여기에 한가지 더 첨가를 한다면 사회적 갑들이 누리고 있는 정치 권력자들과의 유대관계가 또한 큰 몫을 차지 합니다.
제 아무리 민주주의 사회라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는 역시 돈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정경유착이라는 뽑히지 않는 사회적 악순환과 그 고리는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어쩌면 큰 차이가 없을 지도 모릅니다.
독재적 국가 형태라 한다면 더 이상 애기할 가치가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4가지는 사회적 갑자의 지위를 누리는 이들이 늘 갖고 있으며 누리고 있는 기득권적인 지위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정치 전력과 돈과 법조인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끊임없는 밀월 과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3가지의 밀월 관계는 헌법에 명시된 3권 분리의 원칙을 보기 좋게 비웃는 사회의 악이 되기도 하며 질 수 없는 재판의 능력자들로 군림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의 한사람으로써의 개인 혹은 가정은 이러한 기득권적 지위를 누리는 사회적 갑자들에 의해 이길 수 없는 재판의 희생자들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법권과 사법권과 행정권의 밀월 관계가 하나로 나타나는 곳이 있습니다.
그것은 안타깝게도 교회의 정치입니다.
감리교회 정치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정치의 현장에선 행정권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이 마법과 같은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지난 미주연회에 대한 감독회장님의 '행정명령'과 총장유위가 보인 '2/3의 마법'은 교회정치의 수 많은 마법 가운데 하나일 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