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의 문제(10)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엡 1:5-6)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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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20 19:02:07
이어서 바울은 선택의 주체에 대해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설명하였다.
[그 기쁘신 뜻대로](τὴν εὐδοκίαν τού θελήματος αὐτού)의 [기쁘신](유도키안, εὐδοκίαν)에 대해서는 “대략 두 가지의 해석, 즉 ‘뜻’( 그의 소망을 표시하는: Chrysostom, Calvin, Meyer, Alford 등)과 ‘즐거움’(만족을 표시하는: Beza, Harless)이 있다. 물론, 전자가 절대 다수가 지지하는 것으로 성서에도 혹은 ‘뜻’으로(마 11:26), 혹은 ‘선한 뜻’으로(눅 2:14, 엡 1:9) 번역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이 낱말을 ‘뜻’으로 해석하는 경우, 뒤따라오는 또 하나의 분명히 ‘뜻’(θελήματος)을 표시하는 낱말과 합하여 강한 뜻을 표시한다. 동시에 유도키안은 히브리어 라아조온(rãzõn)과 더불어 즐거움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성도를 택하신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이며, 또한 그를 기쁘시게 한 일이었다”(이상근). “우리는 이 [기쁘신 뜻] 이상의 우리 구원의 원인이나, 다른 하나님의 성역을 해석할 길이 없다”(J. A. Bengel).
바울은 하나님의 예정의 내용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설명하였다.
테일러(W. H. Taylor)는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하여 창조되었다(창 1:26, 행 17:28). 그러나 죄 때문에 이러한 교제의 관계가 끊어지고 하나님의 권속에서 이탈되어 이방인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가 영원하신 아들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원래의 아들 되는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하셨다.······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아들됨이란 인간이 창조되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연적인 관계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이뤄진 은혜를 통한 새로운 관계를 의미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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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양자 됨’(1:2의 주석을 보라.)은 자연적으로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로 삼으신 목적에 대해 【6】[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 곧 메시아①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마 3:17, 17:5, 막 1:11, 9:7, 벧후 1:17, 골 1:13)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의 [그의 은혜](τής χάριτος αὐτού)는 갈라디아서 1:3의 주석을 보고, [영광](독세스, δόξης)은 갈라디아서 1:5의 주석을 보라.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가 영광스런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생활은 감사와 헌신의 찬양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스런 은혜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것이다. 실로 그리스도 안이야말로 하나님의 모든 은혜가 베풀어지고, 인간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영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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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에서 인용할 경우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을 밝혔음.
1) G. Johnston, “Beloved” in IDB, Vol. 1, p. 378.

# 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년 2판 2쇄), pp.31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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