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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이것은 곧 하나님 은혜의 진리인 것이다.
관리자
- 2590
- 2015-06-01 02:38:00
이러한 상상과 환상은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거나 또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주기도 한다.
과거의 시간엔 미래의 시간은 선지자들이나 점장이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현대엔 미래 학자가 존재하며 공상과학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일부 선지자들과 점장이들의 영역을 잠식하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재미와 흥미를 유발케 하거나 또는 미래에 대한 또 다른 상상의 기대감을 높이기도 한다.
나는 어린시절 이러한 공상과학을 바탕으로 된 만화영화를 보고 자랐다.
그리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땐 어쩌면 많은 부분들이 실현 가능해져 있을 것을 기대하기도 했다.
스마트폰을 본다면 동화속에서나 상상해 볼수 있는 마법의 거울과도 같은 일들이 실현되고 잇는 것이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니?"라 하며 주문을 외우듯 거울에게 묻던 이야기가 현실의 스마폰이 되어
"핸드폰아 핸드폰아 오늘은 어떤 소식이 가장 인기가 있는 소식이니?"라고 묻는 것 같다.
아직 핸드폰은 마법의 거울처럼 말로 대답해 주진 않는다.
그러나 멀지 않은 미래에 마법의 거울처럼 묻고 답해 주는 스마트폰이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과학이다.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이미 다가온 현실이다.
현실, 이것은 상상이 아닌 진실이다.
모든 상상이가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그는 예언자가 될것이다.
현실, 이것은 환타지(환상)가 아닌 진리이다.
모든 환타지가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환타지가 현실이 된다면 그는 선지자가 될 것이다.
진정한 예언자나 선지자는 미래의 불확실한 상상과 환타지를 현실임을 증거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상상과 환타지를 통해 또 다른 미래의 현실을 전하는 진실의 전도자들인 것이다.
예언자들이나 선지자들이 미래에 대한 예언이나 예견을 할 수도 있다.
또한 그러한 미래의 도래를 증거하거나 증명할수도 잇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 아무리 그러한다 할지라도 예언자들도 선지자들이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현재의 시간이다.
미래의 일에 대한 예언과 예견을 할수 있으면서 왜 현재의 시간을 증명할수 없을까?
현재의 시간을 증명할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존재할까?
그리고 더 나아가 진정 현재란 시간이 존재는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이 바보같은 질문이되고 어리석은 자의 질문처럼 보일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왜 현재의 시간을 증명해야 할까? 아니 왜 현재의 시간에 대한 존재에 대한 의심을 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질문을 위한 괴상한 논리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괴변이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괴변이라 말하는 그 누군가에게 현재의 시간이 진정 존재하는 것이냐고 다시 물어보고 싶다.
현재의 시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나 인식을 하거나 또는 증거 가능한 시간이 아니다.
만약 이러한 논리적 적용을 한다면 인식할 수 없는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는 인간은 존재 가능한 것일까?
인간이 현재의 시간을 산다는 것이 진정 증명 가능한 것일까?
이 또한 괴변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분명 확신한다.
그 누구도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이 우리 삶과 생명의 신비이며 놀라운 기적이다.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으며 증명 불가능한 현재의 시간에 생명의 신비와 기적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살아가는 그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의 생명은 증명 불가능한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존재하지도 않는 현재의 시간을 살도록 하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우리의 현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증명이 가능해지며 우리의 현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이 진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현실, 이것은 곧 하나님 은혜의 진리(실)인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