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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여인을 만난 사람은...
신원철
- 2177
- 2015-09-09 04:28:01
1980년 설날이 다가온 섣달 그믐날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 틈에 퍽 세련된 모습에 여인이 있었다.
목적지는 충남 당진 송산면 동곡리,
교통이 좋지 않았으나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던
어린 시절 교회 다니던 때를 생각하며 걸었다
당시, 동곡리에는 교회가 없었기에.
동곡리 사람들은 한 시간을 걸어 유곡리에 있는 유곡감리교회를 다녀야했다
8살 때 부모 따라 교회 다니기 시작했던 여자아이는
중학교 들어가면서 동곡리를 떠나 당진으로 가게 된다.
예쁜 마음에 믿음을 가졌던 소녀는
중학생이 되면서 주일학교 선생이 되어
당진에서 유곡교회까지 주일날이면 먼 길을 오고 갔다
그러기를 몇 년 하다가 사춘기 때 소녀는 교회 다니기를 중단한다.
그 후
어릴 때 예능에 재주가 있고 무용을 좋아하던 소녀는
서울 명동에서 모델 겸 의상실을 운영하게 되며
젊은 남성들의 시선을 받으며 “명동에 마네킹”이란 별명을 듣는다.
영적생활은 교회는 나가지 않으면서도
언제인가는 교회를 다닐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그 믿음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빨리 찾아왔다
이런 저런 훈련을 통해 하나님은 교회로 그 여인을 다시 불러 들이셨다
송산면에서 버스를 내리면 동곡리 까지는 세 시간은 걸어야 한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여인은 교회를 먼저 찾았다
동곡리 동서교회 풀럭거리는 천막 문을 열고 교회 안에 들어선 여인은 멍석위에 엎드렸다
순간, 주님의 사랑이 포근히 감싸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랑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눈썹 화장이 지워질까봐 억제하며
교회를 나와 전도사님 집을 들렀다.
젊은 전도사님 내외는 동곡리에 동서감리교회를 개척하고
건축을 위해 쌀 10가마 계를 들어놓고 설 명절이 끝나면 부흥회를 하는데
그 일을 위해 40일 작정기도를 하는 중이셨다
남의 집 방 한간에서 기거하시던 전도사님 부부는
동곡리 사람 같지 않은 차림을 한 여인의 방문을 받고
긴장하며 한편 궁금해 하는 모습으로 여인을 맞이한다.
이 여인은 여러 날 전에 언니가 올라와
야! 동곡리에 교회를 짓는데 니두 헌금 좀 하렴! 하는 소리를 들었다
당시 사업도 접고 잘 나갈 때 같지 않은 어려운 형편 이였으나
불현듯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을 생각나게 하셨다.
1960년대 초 만하더라도 교회 부흥회는 큰 잔치였다
11살 어린 3학년 때 유곡교회에서 열리는 부흥회에 참석을 했다
부흥화 강사님이 성도들에게 헌금 작정 시키는 순서가 있었는데..
소녀는 “우리 집이 제일 부자니까” 생각하며 아빠를 믿고
쌀 열 가마! 에 소녀는 손을 들었다 소녀 혼자 였다
소녀의 아빠는 쌀 한가마를 바치셨다
더 이상 많이 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 때 소녀는 내가 나중에 동곡리에 교회를 세워야지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던.
그게 생각이 났었다
여인은 전도사님을 만나서
“저는 동곡리 이영길 집사 동생인데 교회를 짓는다고 해서
헌금조금 가져왔어요.”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봉투를 열어본
얇은 봉투에 몇 만 원정도 들어 있을 줄 알았던 봉투 안에는
백만 원짜리 수표 다섯 장이 들어 있었다.
전도사님 부부는 놀라서 말을 더듬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 오백만원이면 적지는 않은 돈이다.
여인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해서 한 것이라 말하고 알리지 말라했으나
부흥회는 이 사실로 크게 모두 감동되고 성령이 도우셔서
당진지방 동서감리교회는 그렇게 아름답게 지어졌다
35년 전 그 여인!
그는 지금 나의 아내가 되어 믿음의 동반자로 함께 걷고 있다.
나는 참 “복 있는 사람”이다
신원철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