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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 김영학
민관기
- 1667
- 2015-10-12 04:44:00
한편, 감리교(회) 인물사전을 보자.
1929년이 아닌 1930년 피체되어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이듬해 3월 10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엿다. 1932년 음력 12월 신한촌인근 노역장에서 일하던중 갑자기 얼음이 갈라지면서 수십명이 빠저 죽엇는대 김목사도 이때 순교햇고 시베리아 선교도 막을 내렷다. 1933년 12월 7일 간도 용정에서 개최된 제3회 만주선교연회를 시작하면서 배형식 감리사 사회로 추도식을 가졋다.
또한, 수표교교회사를 보자
러시아의 정세는 점차 악화되어 공산당이 극동지역을 장악한 이 후 한국인 선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고 잇엇다. 목회자의 신변이 위협받게 되자 남감리회 선교부는 선교의 어려움을 감지하고 시베라아에서 목회하던 대부분의 교역자를 만주로 이동시켯다. 그러나, 김목사는 양떼를 버릴 수 없어서 공산당과 싸우면서 순교할때까지 그 곳을 지켯다. 공산당은 여러가지 형태로 김목사를 협박 회유하며 배교를 강요햇으나 그는 끝까지 목사로서 신앙을 잃지 않앗다.
결국 그는 1930년 소위 반동이란 죄목으로 구금되어 10년의 중노동형을 받고 복역중 갑자기 얼음이 갈라저 순교하엿다. 그는 끝까지 신앙을 지킨 감리교회의 위대한 신앙지도자요 순교자이다.
아내에게 남긴 옥중서신이 잇는데, 나중 실기로하고 여기건 약한다.
국가보훈처와 감리교(회)인물사전 그리고 수표교 교회사에서 약간의 차이가 잇음을 알수 잇다.
평가는 야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