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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 4회 : 제2부 내용 분해/ I. 시작하는 말/ A. 소개와 인사[1:1-3]
관리자
- 1565
- 2015-10-21 20:42:56
Ⅰ
시작하는 말
(1:1-7)
A. 소개와 인사[1:1-3]
본서는 당시의 편지 형식을 따라 보내는 사람(1절 전반), 받는 사람(1절 후반-2절), 그리고 기원 또는 축도의 순서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형식은 대부분의 신약 서신들에서도 나타난다.
본서는 【1】[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Παύλος δέσμιος Χριστού Ἰησού)은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인 바울’이라는 뜻이다(1:9, 엡 3:1, 4:1, 딤후 1:8).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란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로서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위해 갇힌 바울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본서를 쓰고 있는 현재 바울이 감옥 속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참조: 엡 3:1, 빌 1:22, 골 4:10, 18, 몬 1, 9). {스토트(J. R. W. Stott)는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바울은 황제의 죄수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실제에 있어서는 주님의 죄수이며, 그 자신의 자의에 의한 주님의 포로이며, 그리고 인간에 의한 감금조차도 오로지 그리스도의 허락에 의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라고 하였다}(딤후 1:8의 주석).
{바울이 갇힌 상태에 대해 바클레이(W. Barclay)는 “바울에게는 몇 가지 특권이 있었다. 바울이 갇힌 곳은 그가 세든 집이었으며 면회가 허용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는 밤이나 낮이나 손목에 쇠사슬이 달린 쇠고랑이 채워져 있는 죄수이었고, 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 다른 편 쇠고랑이 로마 병정의 손목에도 채워져 있었다.”라고 설명하였다}(엡 3:1의 주석).
우리가 참으로 복음을 자랑스러워 한다면, 그 복음 때문에 감금된 이들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울이 사도라는 칭호 대신에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이라고 쓴 것은, “서두에서부터 권위에 호소하는 자세를 버리고, 동정과 애정에만 호소하고자 하는 것이다”(W. Barclay).
[형제]는 아델포스(ἀδελφὸς)인데, 여기서는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라 주님의 보혈에 의해 구원받은 교인들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이다.
[디모데](Τιμόθεος)는 디모데전서 제1부, Ⅱ. 대상을 보라.
바울이 본서 서두에 [디모데]를 언급하고 있는 것(고후 1:1, 빌 1:1, 그리고 살전·후 1:1에는 실루아노의 이름도 첨가되어 있다.)에 대해, {스코트는 “디모데가 그 편지를 쓰는 데 어떤 역할을 했다거나 불러준 것을 받아썼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첫 구절 이후에 바울은 끊임없이 자신의 인격으로 말하고 있으며, 또한 모든 호소는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편지 속에서 그는 때때로 디모데를 자기의 조력자 중의 한 사람으로 극구 칭찬하곤 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빌 1:1의 주석).
바울이 디모데를 언급한 것은 빌레몬에게 본서의 내용에 대해 디모데도 동조하고 있음을 넌지시 알려 주기 위함인 것 같다.
바울은 이 편지의 대상에 대해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하였다.
우리는 [빌레몬](Φιλήμονι)의 종인 오네시모가 골로새에서 온 사람이었고(골 4:9), 또한 빌레몬의 아들로 알려진 아킵보는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이었다는 사실을 미루어 빌레몬이 골로새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자인 그는 에베소에서 3년 동안이나 복음을 전하고 있던(3차 선교 여행 때) 바울을 만나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1:19), 열렬하고 헌신적인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는 자기의 재산을 복음과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 사용하였고(1:5), 또한 자기의 집을 교회로 사용하게 하였다(1:2).
그러므로 바울은 빌레몬을 가리켜, [우리(디모데 포함)의 ‘사랑을 받는 자’(토 아가페토, τῷ ἀγαπητῷ: 딤전 1:5의 “사랑”의 주석을 보라.)요 동역자]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자매 압비아]의 [자매]는 아델페(ἀδελφῇ)인데, 여기서는 친자매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구원받은 영적 가족이라는 의미에서 한 표현이다.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한 말이다. 그리고 [압비아](Ἀπφία)는 일반적으로 빌레몬의 아내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자란 교회의 중요한 직분을 맡은 사람 곧 교역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빈센트(M. R. Vincent)는 “노련한 사도는 자기의 젊은 친구를 복음 전선의 동료 종군자로서 여겨 경의를 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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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다.”라고 하였다.
[아킵보](Ἀρχίππῳ)는 빌레몬과 압비아의 아들이며, 그들의 집은 교회로 사용되고 있었다(1:1-2). 그는 집사가 아니라 교역자로 일하였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교회의 머리이시며 주님이신 그리스도 안에 근거되는 것이므로, 교역자를 비롯한 모든 직원들은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과 지혜로 임무를 온전히 성취해야 한다.
한때,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골 4:17)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젊은 교역자인 아킵보가 에바브라를 도와 골로새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에바브라가 로마에 갇혀 있는 바울 곁에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혼자 교회의 전적 책임을 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골로새 교인들로 하여금 그러한 아킵보를 잘 돕고 용기를 북돋아 주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W. Hendriksen)}(골 4:17의 주석).
[네 집에 있는 ‘교회’](에클레시아, ἐκκλησίᾳ: 딤전 3:5의 주석을 보라.)는 빌레몬의 집에서 모인 믿는 자들의 집회를 뜻하는 것이다(1:4, 6). 초대 교회 때에는 별도의 교회당을 짓지 않고, 어떤 유력한 신자의 집을 예배 처소로 사용하였다. 그 예로 예루살렘에 있던 마가의 집(행 12:12), 빌립보에 있던 루디아의 집(행 16:40), 에베소에 있던 아굴라 부부의 집(고전 16:19), 라오디게아에 있던 눔바의 집(골 4:15) 등을 들 수 있다.
르프렉트(A. A. Rupprecht)는 “우리는 3세기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독립된 교회 건물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라고 하였다. “교회가 발달되고 교인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이런 대 교회당의 건설과 교회의 조직은 으레 따르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비좁고 불편한 집에서 모이면서도 그 신앙면은 극히 깨끗하고 뜨거웠던 초대 교회의 정신을 잃지 말아야 될 것이다”(이상근).
바울은 그들 모두를 위해 【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축도하였다.
이 구절은 빌립보서 1:2의 축도와 같다. 개역 한글판 성경에는 여기의 [좇아]가 “에게로서”로 되어 있지만 원문은 꼭 같다(χάρις ὑμίν καὶ εἰρήνη ἀπὸ θεού πατρὸς ἡμών καὶ κυρίου Ἰησού Χριστού).
# 등록이 안 되어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 후반부를 아래에 등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