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주일 설교 : 개들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최세창
  • 1526
  • 2024-05-11 19:03:09
https://youtu.be/9XRwvFUDpUk

<마가복음 7:24-30>

24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 엎드리니 26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1. 시작하는 말

부모를 비롯한 지도자들은 많지만, 사랑은 별로 없습니다.
유대가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시기에, 대제사장을 비롯한 제사장들과 율법 박사인 랍비들과 율법을 준행하는 바리새인들이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궁핍의 고통을 겪고 있었고, 말씀의 기근으로 인한 영적 공허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찾아 몰려들어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기적의 치유와 축귀를 체험했습니다.

무리를 떠나 게네사렛의 한 집에 들어가셔서 제자들의 질문에 답한 예수님은, 거기를 떠나 이방 지역인 두로 지경의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었습니다.

2. 이방 지역인 두로에서의 예수님의 축귀

훌륭한 천연 항구이자 유명한 요새인 두로는, 물가와 떨어져서 길이가 삼천 피트 되는 산마루에 붙어 있는 두 개의 거대한 반석이 있어서 자연적인 방파제도 되고 방어물도 되었습니다. 이 두 반석 때문에 반석이라는 뜻인 지명인 두로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겨 접촉을 피하는 이방인 지역인 두로에 가신 것은 예언 성취의 일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방인들이 사는 두로에 가신 목적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죽이려고 하는 헤롯 안티파스와 유대 교권자들을 피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모르는 백성들을 떠나, 잠시 쉬면서 제자들을 교육하시고 훈련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으로 인한 하나님의 본격적인 통치가, 이방인들에게도 미치는 것임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유대인들을 위한 메시아적 사랑은, 이방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예수님과 접촉한 적이 있었고, 또 예수님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던 두로 사람들에게, 두로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자신이 발견되는 것을 허용하신 이유는, 죄인들에 대한 크신 사랑 때문이라 할 수 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예수님은 만민의 메시아인 구주로 오셔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셨습니다. 복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죄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는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두로에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한 여인이 곧 와서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여인은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어머니이었습니다. “더러운 귀신”의 헬라어 프뉴마 아카타르톤(πνεύμα ἀκάθαρτον)은 더러운 영이라는 뜻입니다.

이 어머니는 더러운 영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 때문에, 말로 다할 수 없는 심신의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온갖 수고와 노력을 다했지만, 절망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첨단 과학 시대이며, 놀라울 정도로 의학과 의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사단의 졸개인 더러운 영이나, 악한 영이나, 악하고 더러운 영은 처리할 수 없습니다. 영들은 더 강한 영들을 힘입어서 쫓아낼 수 있는데, 해결되는 것 같으나 더 강한 영들에게 지배당하게 됩니다. 완전한 해결은 하나님의 영이시자 주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의 은사인 능력 행함의 은사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는, 그 은사를 받은 주님의 종들의 안수 기도로 되는 것입니다.

사단의 졸개인 영들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영들을 보기도 하고, 기이한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머리나 가슴 속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괴로워하기도 하고, 지시를 안 따르면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무병 같은 난치 또는 불치의 병을 앓기도 합니다. 이들은 영력이 강한 목사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합니다. 쫓아낼 영력이 있는지 없는지 압니다. 오래 된 경우에는, 오랜 안수 기도와 말씀으로 영적 싸움을 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더러운 영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어머니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때에 믿음이 생겼고, 즉시 예수님께 와서 그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이 어머니의 엎드림은 겸손, 존경심, 순종, 그리고 간절한 열망의 표현입니다. 무엇보다도 제정신을 잃고, 부모의 애간장을 태우고, 남의 눈총을 받거나,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아이라는 소리나 듣는 쓸모없는 어린 딸에 대한 강렬한 모성애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뉴스를 접하면서 부모의 사랑, 특히 모성애는 정말 알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신비로운 선물임을 재확인했습니다.

2013년 3월 7일 오전 8시 30분쯤 경남 거제시에서 37세인 배 모 여인이, 장애 특수학교 4학년인 딸을 데리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절반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신호를 위반한 정 모(43세) 씨가 운전하는 덤프트럭이 모녀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덤프트럭이 갑자기 나타나자 어머니가 자신과 함께 있던 딸을 밀쳐내고, 자신은 차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딸의 목숨을 구하고는 숨지고 말았습니다.

다리를 절단할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은 어린 딸은 정신 지체 중증 장애를 가진 딸이었습니다. 배 여인은 장애 특수학교 4학년인 딸을 1학년 때부터 통학버스에 태우는 일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이 어머니뿐이겠습니까? 부모의 사랑, 특히 모성애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선물입니다.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린 여인은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이 아니라,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었습니다. 로마의 속주인 수리아에 속하는 베니게 여인은, 자기 딸에게서 귀신 곧 영을 쫓아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여인이 엎드린 목적은, 자기 딸을 귀신에게서 해방시켜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더할 나위 없는 불행한 문제는, 주 예수님을 만날 더할 나위 없는 기회입니다.

제 구실을 못하는 딸을 위한 어머니의 애절한 간구를 들으신 예수님은, 놀랍게도 거절 의사를 표명하셨습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는 이방인들에 대한 거절이 아니라, 유대인 다음에야 이방인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구원의 순서를 비유하신 것입니다.

“먼저”라고 하시면서 거절 의사를 표명하신 것은, 결정적인 거절을 나타내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예수님이 표현하신 “개들”의 헬라어 퀴나리오이스(κυναρίοις)가 한 집에서 자녀가 먹던 부스러기를 얻어먹고 사는 ‘작은 개들’이나 ‘강아지들’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나, 작은 개들이나 강아지들로 비유된 여인에게는 심한 모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에는 개라는 말은 불결하고, 불경건하고, 뻔뻔스럽고, 탐욕적이고, 오만하고, 불평 잘하고, 다투기 좋아하고, 물고 늘어지기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개는 지독한 경멸과 혐오와 버림받은 자의 대명사이었습니다. 반즈(A. Barnes)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라고 불렀고, 모하메드 교도들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개라고 불렀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작은 개들이나 강아지들이라는 표현을 하신 것은 모욕의 의미가 아니라, 단순한 비유로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여인에게는 거절이나 모욕으로 들릴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인은 항의하거나 화를 내는 대신에, 매우 놀라운 지혜로 응대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절로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여인의 지혜로운 대답은, 예수님을 구주로 신뢰하는 믿음과 불쌍한 어린 딸에 대한 모성애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인의 믿음과 사랑에서 나온 지혜로운 말은 예수님의 속뜻에 합했고, 불행한 상황을 반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이 먼저 이스라엘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이스라엘의 특권을 그대로 인정하고, 거기서 넘쳐 나오는 부스러기를 원하는 겸손한 태도를 드러낸 것입니다.

이 여인의 지혜로운 말에 큰 감동을 받으신 예수님은, ‘원격 축귀’라는 놀라운 사랑의 권능을 발휘하셨습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마태복음 15:28 중간에는,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지혜로운 말에서 큰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실 것을 확신한 여인은,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돌아가 본즉 어린 딸에게서 더러운 귀신이 쫓겨 나갔고, 어린 딸은 멀쩡하게 침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시편 33:9을 보면,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라고 했습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은, 자기를 고치려고 겪은 어머니의 모든 고통과 수고와 모욕을 알지 못했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님의 사랑을 얼마나 압니까? 혹시나 부모님을 힘들게 하지는 않습니까?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그 깊이와 넓이를 다 알 수 없는, 창조주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의 신비로운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부모의 사랑 때문에 자녀가 부담을 느끼고, 반발하고, 잘못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정말 고귀한 사랑이 되고, 값지고 보람된 결과를 이루려면 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결부되어야만 합니다.

더러운 영에 지배되던 어린 딸처럼, 우리를 위해서 부모님들이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 얼마나 수고하고 애를 쓰고, 모욕을 당하며, 피눈물을 흘리는지 알지 못합니다.

(설교 동영상: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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