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벧전 5:8)

최세창
  • 2002
  • 2024-07-23 19:47:17
베드로는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모든 염려를 맡기는 성도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권면하고 있다.

[근신하라](네파테, νήψατε)는 ‘취하지 않도록 술을 삼가다’, ‘영적으로 조용하고 침착하다’, ‘절제하다’, ‘자제하다’, ‘냉철하다’, ‘신중하다’, ‘진지하다’ 등을 의미한다(4:7, 5:8, 살전 5:6, 8, 딤후 4:5).
신자는 복음이 아닌 다른 교리나 사상 등에 취하지 않도록 늘 신중해야 할 것이다.

[깨어라](그레고레사테, γρηγορήσατε)는 {“은유로서 ‘경계’, ‘도덕적 기민’, ‘불의한 자들의 공격에 대한 불침번’을 의미한다”(J. E. Frame). 이 말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는 상태 및 생활을 의미하기도 한다(히 12:2).

헨드릭슨(W. Hendriksen)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깨어야 할 이유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과 시간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마 24:42, 25:13, 막 13:35, 37). (2) 끊임없이 불침번 노릇을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양떼를 위협하는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적들이 있기 때문이다(행 20:31, 벧전 5:8). (3) 깨어 있다(경계)는 것은 영적으로 깨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계 3:2, 3, 16:15). (4) 깨어 있다는 것은 감사를 포함하는 규칙적인 기도의 습관을 의미하는 것이다(골 4:2). (5) 아마도 경계에 관한 가장 충분한 기술은,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3-14)일 것이다}(살전 5:6의 주석).

[대적]은 안티디코스(ἀντίδικος)로서 ‘소송 상대’(잠 18:17)를 뜻하는 말이며, 여기서 ‘적’, ‘원수’라는 의미가 생겨나게 되었다.

[마귀]는 디아볼로스(διάβολος)로서 사단(σατανά)과 동일한 존재로 마가와 바울을 비롯한 신약성경 기자들에 의해 인격적인 악의 왕으로 믿어졌다(마 4:1, 3, 5, 8, 눅 4:2, 3, 6, 13, 8:12, 벧전 5:8, 롬 16:20, 엡 4:27, 히 2:14, 약 4:7, 요 13:2, 27, 요일 3:8, 10, 12, 5:18, 19, 계 12:9, 유 9). 예수님도 그렇게 믿으셨다(마 6:13, 13:39, 25:41, 막 3:23, 26, 4:15, 눅 4:8, 10:18, 11:18, 13:6, 22:3, 31, 요 8:44).

마귀(사단)의 별명은 ‘바알세블’(마 12:27), ‘벨리알’(고후 6:15), ‘악귀의 머리’(막 3:22), ‘이 세상의 왕’(요 14:30),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 ‘뱀’(고후 11:3), ‘용’(계 12:3), ‘원수’(계 11:12), ‘악한 자’(엡 6:16), ‘대적자’(벧전 5:8), ‘고소자’(계 12:10), ‘시험하는 자’(마 4:4), ‘속이는 자’(계 12:9), ‘살인자’(요 8:44), ‘거짓말쟁이’(요 8:44) 등이다. 이 외에 마귀를 표시하는 다이모니온(δαιμόνιον)은 복수로 사용되어 그 수가 많은 것을 표시하며, 사단의 부하들로 취급되고 있다.

마귀(사단)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초자연적 존재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며, 인간들을 유혹하여 타락시키는 짓을 한다(욥 1:6, 슥 3:1, 마 4:1-, 13:39, 눅 4:1-, 8:12, 요 13:2, 행 10:38, 엡 6:11, 딤전 3:6, 7:11, 딤후 2:26, 3:3, 살전 2:3, 약 4:7, 벧전 5:8). 그는 죽음의 권세를 가진(히 2:14) 이 세상의 통치자이지만, 그리스도에게 결정적으로 패배를 당하였다(마 25:31, 유 9, 계 2:10, 12:9, 12, 20:2, 10). 또한, 마귀의 모든 활동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다(고전 5:5, 고후 12:7). 한 예를 들면, 마귀는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주어(요 13:2),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팔게 했지만, 결국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에 이용된 꼴이 되고 말았다.

그와 같이 마귀의 모든 활동은 하나님의 원대하고도 심오한 섭리를 위해 허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에 의해 멸망당할 운명에 처해 있는 존재이다(계 20:10).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는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믿는 사람들을 유혹하거나 위협하거나 또는 핍박함으로써 그들로 믿음을 버리고 멸망의 길로 떨어지게 하는 마귀의 잔악한 활동을 나타내는 것이다. 클라케(A. Clarke)는 “사단은 세 가지 형태로 시험한다. (1) 간교한 뱀의 형태로 시험하는데, 이는 우리의 의식을 속이고, 우리의 판단을 왜곡시키고, 또 우리의 상상을 호리기 위한 것이다. (2) 빛의 천사의 형태로 시험하는데, 신령한 것들에 대한 그릇된 견해로 우리를 속이기 위한 것이다. (3) 우는 사자와 같은 형태로 시험하는데, 이는 맹렬한 반대와 핍박과 죽음에 의해 우리를 제압하고 멸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출처: 최세창, 야고보서․베드로전․후서(서울: 글벗사, 2001, 3판 1쇄), pp. 496-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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